검찰은 오늘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편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담당PD 4명과 작가 1명을 불구속 기소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검찰 스스로 반성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책무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지막 희망마저 무너뜨리는 검찰의 결정 앞에 우리는 검찰이 현 정부의 시녀 노릇하는 정치검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PD수첩 프로그램이 4월 29일 방영된 직후 한 동안 수사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던 검찰은 청와대와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며 대검에 수사를 의뢰하자 기다렸다는 듯 전담팀을 짜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검찰은 광우병을 지칭하는 데서 왜곡과 과장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장관 같은 고위공직자의 명예가 훼손되고 수입업체의 업무가 방해되었다고 주장하며 PD와 작가들을 체포하고 압수수색을 시도하였지만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올 1월 그 동안 수사를 지휘하던 부장검사가 ‘명예훼손 등의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사직함으로써 검찰의 수사가 명료한 법적 기준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현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곧 오늘 검찰의 기소가 법 집행이라는 이름을 빈 현 정부의 언론자유 탄압의 일환임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복리를 도모하는 것은 정부의 존재이유이고 정부의 정책과 합치되든 배치되든 국민의 의견을 새겨듣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에 따른 위험을 알리고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도리어 그 위험을 경계할 것을 알리며 국민의 눈과 귀를 밝히려는 언론을 억압하고자 혈안이고, 인권과 민주주의, 공익의 수호자여야 할 검찰은 꼭두각시마냥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반성이나 뉘우침 없는 검찰에 대해 법적 투쟁으로 명예를 지키겠다.”는 제작진의 뜻에 동참하며 이들에게 법적 조언과 변호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 정치검찰을 개혁하는 데 함께 할 것이다.

2009년   6월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  장  백 승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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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19:13 2009/06/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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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벌하라


<긴급조치 제2차 재심 청구소송관련 기자회견>

- 일시 2009. 6.16(화) 14:00
- 장소 민변 회의실

<기자회견 순서>

◈ 사회자 개회 및 참석자 소개/조영선 변호사(사회, 긴급조치사건 변호인단 간사)

◈ 긴급조치 재심등 청구경위 등 설명/이석태 변호사(긴급조치사건 변호인단 단장)
 - 긴급조치 및 유신헌법의 위헌성, 당해사건의 위헌성 등, 위헌법률심판제청의 동기, 목적
- 민변에서 긴급조치에 대한 재심 및 위헌소송의 동기

◈ 긴급조치 피해자 증언
- 백기완, 장호권, 이봉래, 박종렬, 한봉석 선생님
 
◈ 개별 청구인 변호인의 사안 설명
- 권정호, 한택근,오창훈 변호사

◈ 앞으로의 일정 (사회자)

◈ 기자들 질의응답

 
<기자 회견문>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벌하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공익.인권소송의 일환으로 유신.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법적 신원(伸寃)회복을 위하여 긴급조치변호단을 구성하고, 지난 2009.2.12 긴급조치 위반자 2명에 대한 재심청구를 비롯하여 유신헌법 제53조 및 긴급조치 제1.2호, 제9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그리고 범죄 후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때에는 면소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아울러 제기한 상태이다. 

모임은 지금까지 피해자들에 대한 설명회, 개별면담 등을 통하여 사건의 실태를 파악하였고, 이에 장준하, 백기완 등 9명(제1.2호 위반 3인, 제9호 위반자 6인)에 대해서 긴급조치 등에 대한 2차 재심 청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번 청구인 중 백기완, 장준하의 경우에는 영구집권을 위한 반민주적 유신헌법에 대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의 첫 번째 탄압사례로서, 암울한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와 다름 아니었다. 또한 간첩을 잡지 못하는 예비군은 무력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유언비어 날조.유포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도 포함되었다. (첨부자료 참조)

유신헌법은 박정희 대통령이 스스로 형성한 국가비상사태를 빌미로 국민을 강박하여 제정한 헌법으로서 국가권력 전부를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시키고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흠정헌법 내지 수권헌법에 다름 아니다. 또한, 헌법의 기본원리인 권력분립주의, 국민주권주의, 기본권 존중주의, 사법부의 재판권 등을 부인하고, 나아가 애초에 헌법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초헌법적 수준의 긴급조치를 창설하여 합헌적 국가긴급권으로 위장하는 등 근대적 헌법의 기본원리를 부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는 비판의 자유 및 죄형법정주의, 영장주의, 인신구속기간의 제한 등 헌법상 보장된 최소한의 국민의 권리와 자유 전반을 박탈 내지 제약하고, 정권안보 및 유지를 위하여 이 조치를 비판하는 경우까지 처벌하였던 것으로, 이는 헌법 개.제정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현대 입헌주의 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에 다름 아니었다. 더욱이 긴급조치라는 공포정치의 그림자는 과거뿐만 아니라 2009년 현재까지 이르고 있으며, 단지 피해자들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국민, 잘못된 교육에 의해 맹목적인 신뢰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세대 또한 그 희생자라 아니할 수 없다.

과거 법원이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선고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사법부 자체가 과거의 불법적․범죄적 공권력 행사를 확정했거나 방조함으로써 피해를 초래한 본 긴급조치사건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통한 입법적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할 것이나, 사법부 또한 기계적, 형식적 면소규정을 탈피하여 실체재판을 통하여 스스로 과거의 국가폭력을 단죄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별첨 1: 제2차 긴급조치 재심청구인 현황 (2009.6.16 현재 청구인 9명)


 

 2009년 6월 1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백 승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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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4:47 2009/06/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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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여연대, 민변, 민가협, 인권운동사랑방,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등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오늘(6/12) 외교통상부에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이하 UPR) 권고사항의 구체적인 이행방안과 일정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이들 단체는 “UPR의 권고사항은 우리나라의 인권 증진을 위해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당초 밝힌 입장과 달리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질의서를 발송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2. 지난 2006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유엔총회 직속기구인 인권이사회로 격상되면서 새롭게 도입된 UPR은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전반적인 인권의무 이행상황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4년에 한번)과 평가를 통해 인권상황의 실질적인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다. 지난해 6월 제8차 유엔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의 인권상황을 검토하고 국가보안법 및 사형제폐지,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포함한 국제인권협약의 서명 및 가입 등 33개의 권고안을 채택한 바 있다.

▣ 별첨자료

 1.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이행방안 공개 촉구 질의서

▣ 별첨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이행방안 공개 촉구 질의서
 
1. 안녕하십니까?

2. 지난해 6월에 개최된 제8차 유엔인권이사회는 한국정부에 대한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이하 UPR) 심의 후, 33개의 권고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습니다. UPR 심의결과 국제사회는 한국정부에게 국가보안법 및 사형제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이주노동자권리협약, 강제실종협약,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의 서명 및 가입,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여성․아동 인권의 개선 등을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는 이 같은 권고사항에 대해 수용여부의 입장만을 밝혔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과 계획 하에 권고사항을 이행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3. 정부가 지난해 8월에 있었던 <유엔인권이사회 한국 인권심의(UPR) 평가 및 이행방안 토론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UPR은 각국의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심의를 받은 국가들이 UPR의 권고사항을 얼마나 신의성실하게 이행하려 노력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2차 심의시까지 4년간의 다소 긴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UPR 후속이행 계획 수립 및 정기점검 방안 추진 ▶수용 입장을 표명한 UPR 권고사항을 2007-2011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반영하는 방안 추진 ▶관계부처 및 NGO 등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추진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4. UPR 심의결과 제기된 권고사항은 그동안 인권시민단체와 인권협약 감시기구(Treaty Monitoring Bodies) 등에서 대부분 제기된 바 있는 사안들로서 우리나라 인권의 증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저희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약속한 UPR 후속이행 방안의 일정과 구체적 계획들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하고, 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저희 인권시민사회단체는 UPR 권고사항의 이행방안에 대해 필요한 경우 언제든 협의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며 정부에 UPR 권고사항 이행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의하오니 답변해주시길 바랍니다.


- 다   음 -

   1) UPR 권고사항의 이행방안을 위해 소관부처 및 부처간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까?

2) ‘수용’ 입장을 표명한 권고사항의 경우, 이행의 구체적 일정과 방안이 마련되었습니까? 각각의 권고와 관련하여 담당 부처, 계획과 일정, 예산 등 실효적인 이행이 담보될 수 있는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시해주십시오.

3) ‘검토 또는 연구’ 입장을 표명한 권고사항에 대해서는 정부 스스로가 밝혔듯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검토 또는 연구의 구체적 기간은 언제까지이며, 그동안 진행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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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4:42 2009/06/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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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감시단으로 활동한 민변회원들>


6월 10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정신계승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 및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국민 문화제에 민변 35명의 회원과 9명의 인턴이 함께 참여 했습니다.
 
특히 많은 변호사님들이 늦은 시간까지 인권침해 감시단으로 활동하며 고생을 하셨고, 병력과의 대치과정에서 타박상 등의 부상을 입기도 하셨습니다.

이날 인권침해 감시단 활동은 자정이 넘어서야 정리되었으며, 이후 4개 경찰서로 이송된 연행자 25명에 대한 접견을 진행하였습니다. 같은 날 부산에서도 23명의 연행자가 발생하여 부산지부 소속 5명의 변호사님들이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글. 장연희 간사
2009/06/11 16:07 2009/06/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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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결국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이유로 26일 오늘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다.

PSI 전면 참여 선언은  대량살상무기와 그 부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이 되는 북한의 선박과 항공기를 나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위한 다국적 국제 군사훈련에도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PSI 전면 참여 선언은 북한의 또 다른 군사적 조치를 불러옴으로써 한반도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악순환을 가져올 우려가 매우 높다.

또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한의 경제, 사회적 교류는 급격히 후퇴, 중단됨으로써 남북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불안한 남북관계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고 사회적 불안의 증폭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이렇듯 남북관계의 파국적인 결과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PSI 전면 참여를 발표해 놓고서도 이번 조치가 남북관계와 직접 관련 있는 사안이 아니며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된다고 무마하는 듯한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이는 국제사회의 인식이나 국민들이 염려하는 바와 매우 동떨어진 현실 인식으로 정부당국의 무책임과 안일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매우 유감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나 이것이 PSI참여의 빌미가 될 수는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실효성 없는 대북 강경정책 이외에 어떠한 진지한 노력을 행하였는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지금부터라도 해결하기 위하여는 정책기조를 바꾸어 진지하고 실효성 있는 대화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남북사이의 신뢰 재구축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민과 정부 모두는 그러한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시기이다.  PSI전면 참여조치는 긴장의 격화 외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아니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PSI 전면 참여 선언을 철회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한 자세 전환을 촉구한다.


2009월 5월 2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  장  백 승 헌


2009/06/11 14:03 2009/06/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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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융실명법과 특정금융거래보고법 등 현행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면서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차명비자금 관리를 주도한 삼성증권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어제(3일), `기관경고`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금융위원회는 재벌 총수 일가의 세금포탈과 경영권 승계를 위해  중대 범죄를 저지른 삼성증권과 이에 연루된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들에 대해 형식적인 경징계로 면죄부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사건 형사재판의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치를 취하는  ‘눈치보기’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 변호사), 민주주의법학연구회(회장 서경석 인하대 교수 ), 참여연대(대표 임종대 청하)는 재벌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금융감독 기관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행태에 공분을 금할 수 없다.

2.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의혹 제기와 관련해 삼성특검이 삼성증권에 대한 포괄적 검사를 금융감독 당국에 요청한 것은 2008년  2월 21일이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일주일 여의 줄다리기 끝에, 당시 삼성 측이 차명계좌임을 시인한 그룹 임원 4명 명의의 10여개 계좌만을 검사하겠다고 하여 빈축을 샀다. 삼성증권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업무 및 재산상황에 대한 검사는 법(「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37조(업무) 제1호)으로 규정된 당연한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검사를 할 경우 특검 수사 이후 삼성이 금감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금감원의 해명이었다.

  이후  2008년 4월17일 발표된 삼성특검의 수사결과 차명계좌로 확정된 것만 총 486명 명의의 1,199개 계좌에 달하며 그 중 상당 수가 삼성증권 계좌로 확인되면서, 삼성증권이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차명계좌 개설⋅관리에 깊숙이 관여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수사기관에 의해 불법행위가 여실하게 드러난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이  검사결과와 제재조치를 확정해 발표하기까지 꼬박 1년 2개월여가 소요된 셈이다. 이는 관련 형사재판에서 대법원 확정판결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재판결과에 따라 제재수위를 조절하려 한 전형적인 눈치보기의 결과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위반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위법행위에 대한 검사결과 발표가 지연된 이유에 대해 금감원은 “ 워낙 계좌가 많고 방대했기 때문에 검사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직무유기와 무책임의 결과를 무능력으로 분칠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행태는 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볼 길이 없다.


3. 징계 수위에 있어서도 금융감독 당국은 감독기관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채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삼성증권에 대해 ‘기관경고’의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는데 그쳤다. 당연히 인가취소나 최소한 영업점 폐쇄 등 엄정한 제재조치를 통해 법령의 엄중함을 확인하고 훼손된 금융질서를 바로 잡아야 했음에도  금융감독 당국은 또 한번 삼성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존재근거를 부정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또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 등 이 사건에 연루된 다른 금융기관들이 금융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법령 준수의무를 저버리고 위법행위에 연루된 것에  대해서도 경징계에 그쳤다.   

법령에 의해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제재권한을 정당하게 부여받은 금융감독당국의 책무는 공평무사한 시장 감독을 통해 건전한 금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기본 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감독 당국은 최소한의 신뢰를 잃었고  금융선진화를 논의할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익추구를 위해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재벌 금융계열사와 금융기관들에 대해  형식적 제재조치로 사면해 준 금융감독 당국을 시장이 어떤 근거로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금융감독 당국은 이제 한국 금융산업 선진화의 걸림돌로 전락하고 말았다.


6.5 민변 공동논평

2009/06/11 14:01 2009/06/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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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산행에의 초대 및 신청자 모집

 

 

지난 1월에 많은 회원들과 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태백산 눈꽃 산행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그 때 야생화 산행의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야생화가 한창일 4월이나 5월 초에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의치 못했습니다. 많은 회원들로부터 약속을 이행하라는 질책도 있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또한 7월의 회원친목행사의 일환으로 생태산행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선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가 고삐 풀린 듯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30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역사적 교훈이 두렵게 다가옵니다. 우리 모임이 할 일이 훨씬 많아졌고, 회원들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최전선에 서길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할 일을 하는 중에도 원기를 충전할 기회를 가져보시지요. 몇 백 년을 한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우러르면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으시지요. 함박꽃나무, 층층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개쉬땅나무 등은 그 때까지 흰 꽃을 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지요.


<점봉산의 절경>

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참나리, 털중나리 등 각종 나리들과 큰까치수염, 둥근이질풀, 동자꽃, 투구꽃, 박새 등 각종 여름 야생화들이 꽃을 달고 있는지 함께 찾아보시지요. 봄에 꽃을 피웠던 얼레지, 한계령풀, 풀솜대, 삿갓나물, 바람꽃, 피나물, 제비꽃 종류들은 꽃이 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지 알아보시지요.


나무와 풀과 꽃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니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도 하루의 시간을 자연에 허여하심이 어떠신지요.


<점봉산의 야생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우리의 산행을 풍부하게 해주실 전문가를 초대할 예정입니다. 산행 코스는 가능한 한 여유롭게 하고자 합니다. 점봉산을 예정하고 있는데 자녀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생태보존의 중요성도 같이 느껴보시지요.


자연이 부르는 유혹의 손짓에 온 몸을 맡겨보시지요. 무한한 희열과 원기를 얻을 것입니다.


○ 일정

 - 7월 11일(토) 점봉산

 - 세부 일정
   07:00: 서초동 출발(시간 엄수 필요)
   11:00-11:30: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설피마을 삼거리 주차장
   11:30-16:00: 산행(주차장 - 서래굴 - 강선리계곡 - 곰배령 - 강선리계곡 - 서래굴 - 주차장, 해설가 2명 정도 동행 예정)
   16:00-17:00: 설피마을 ‘꽃님이네집’ 민박에서 석식
   17:00: 설피마을 출발
   21:0-22:00: 서초동 도착


○ 회비

 - 일반 30,000원 / 학생 15,000원 (취학전은 무료)


○ 개인준비물
   - 산행 복장, 간식거리, 카메라, 다양한 나무들과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담을 너그러운 마음


○ 신청자 모집마감

  - 7월 6일(월) 18:00까지

  - 자녀를 동반하시는 회원께서는 해설가의 조 구분 및 해설내용 준비를  위해 초․중․고등학생의 학년을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06/11 11:23 2009/06/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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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인턴 월례회 후기


어떠한 금지나 인센티브 없이도, 인간 행동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힘이자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힘 '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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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월 인턴 월례회에서는 '넛지' 를 읽고 독서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월례회 준비위원팀의 넛지 책에대한 간략한 소개를 시작으로, 넛지의 경험담 소개, 넛지에 대한 토론 으로 이어졌습니다.


제한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정도로 많은인턴분들의 넛지 경험담이 소개되었고, 수많은 경험담을 통해서  '합리적 인간' 임을 자부했던 인간의 생활이 넛지에 의해 얼마나 많이 지배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 소개된 경험담의 대부분은 우리스스로 만족할수있는 긍정적 넛지의 힘이기 보다는, '내 주머니속 돈을 강탈당했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기업의 이윤전략에 넘어간 경험담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험담 소개에서 자연스럽게 넛지에대한 찬성과 반대토론 순서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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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가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서 생각할수있는 문제인가 라는 의구심 속에서도, 우리들은 우리생활을 지배하고있는 나쁜 넛지들에대해 외부적 책임을 부여해야할 필요성들을 느꼈고, 그것은 자연히 반대의 견해로, 그리고 나쁜넛지의 발생의 불가피성은 찬성의 견해로 모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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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싶어하는 인간과, 가장 큰 이윤을 내고싶어하는 기업, 혹은 경쟁의 상대방에게 넛지는 똑똑한 무기이며 승리를 위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적 본성을 갖고있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적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넛지인만큼, 나쁜 목적으로 이용되는 넛지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능동적으로 우리자신을 알아야할 노력을 해야할 것이며, 
더 크게는 사회구조적인 정의를 실현시켜 그들의 나쁜 목적을 근절시키는 것이 ‘넛지’의 부정적측면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글. 인권 위원회 2기인턴 조정희
사진. 노동위원회 2기 인턴 박성민
2009/06/11 11:19 2009/06/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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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위원회 활동보고
 


  촛불의 트라우마에 휩싸인 정부 아래서, 지난봄은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노동계의 현실을 직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월 17일 정부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큰 불안으로 내몰고자 했으며, 민변 노동위원회는 그렇게 흐트러진 각 노동 단위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자 ‘비정규 개악법안 폐기촉구 법률,학술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근로조건 악화를 막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처럼 민변 노동위원회의 많은 활동들은 민주노총 법률원,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사회 각계의 노동,법률 단체와 연계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용자에 의해 ‘소모품’ 정도로 여겨지는 노동자들의 침해받고 있는 기본권에 대해 성명서와 의견서를 발표하고, 연계 단체와의 합동 토론회 등을 통해 소수자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개별 노동사건에 대한 변론을 맡아,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의 활동은 구체적 현안뿐만 아니라, 출판 연구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6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3번째를 맞는 ‘노동판례비평’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선고된 노동판례에 대한 체계적 분석과 비평을 수록하여 올 가을 출간을 목표로 원고 작성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변호사가 풀어주는 노동법> 시리즈의 개정판을 위한 정기모임을 통해 현장 노동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노동법을 쉽게 이해하는데 기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동위원회 인턴들은 이러한 현안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주를 이룹니다. 국회 환노위 계류 법안, 노동행정 모니터링, 노동현안 관련 기사 클리핑을 나눠 맡고 있으며,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 등의 현장 업무에 대한 지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적 출간 전 원고검토와 총회준비를 위한 자료 정리 역시 저희 인턴들이 하고 있는 업무입니다. 


 

글. 2기 노동위 인턴 박성민


2. 환경위원회 활동보고


  ‘녹색성장’, ‘친환경’ 등으로 포장된 현 정권의 환경정책은 대운하 건설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의심을 받고 있는 ‘4대강 살리기’와, ‘경인운하-아라뱃길’ 등의 구체적 실천으로 그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습니다. 여러 환경단체들의 관심이 육지의 수로에 향해 있을 때, 민변 환경위원회의 시선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태안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모아졌습니다.

  태안의 기름이 지워져가고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시작되던 올해 초 , 법원은 유조선측의 책임을 1425억원으로, 삼성중공업 책임한도를 56억원으로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수산(13764건), 비수산 (11779건) 합계 2만 5천여 건 피해내역을 고려해 볼 때, 턱없이 부족한 액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대기업의 안전조치 미비와 미숙한 후속조치로 인한 사건 태안 주민들의 고통을 피해자인 그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만드는 무책임한 결정입니다.

   환경위원회 인턴들은 태안주민들을 대신하여 수산, 비수산 합계 2300여건의 제한채권신고서 작성 , 즉시항고 신청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달 이상 진행되고 있는 작업은 타 팀 인턴의 손을 빌릴 정도로 큰 규모의 작업입니다. 피해자의 정확한 인적사항, 피해액수, 첨부서류까지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3명의 인턴이 방대한 서류를 일일이 살피는 수고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지는 2년이 가까워지지만 태안은 과거가 아닌 현재로서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글. 2기 환경위 인턴 이겨라
2009/06/11 10:58 2009/06/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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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을 찾은 지 네 번째

대한민국에서 산을 올라갔다고 말하려면, 극기의 체험을 했다고 말하려면, 산세(山勢)의 웅장함을 맛보았다고 말하려면 반드시 갔다 와야 하는 코스가 바로 지리산 종주다.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이제야 다녀왔다.

지리산은 네 번째다. 첫 번째는 사법시험 2차를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1985년 가을이다. 대학 선배 2명과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뱀사골(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한 데서 비롯된 이름)에서 시작해서 천왕봉에 오른 후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당시는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야영하였다. 그런데 둘째 날 비가 많이 와서 야영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중산리까지 내려와 버렸다.

두 번째는 2008년 7월에 무박 종주에 따라갔다. 아내도 같이 갔는데, 연하천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아내의 무릎에 이상이 와서 1시간 반이면 갈수 있는 벽소령대피소를 2시간 반 만에 갔고, 결국 제1탈출로라 할 수 있는 벽소령에서 삼정마을로 내려왔다. 택시를 불러 중산리로 가서 버스에 탑승했다.

세 번째는 2008년 11월 22일 무박으로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올라 백무동(百巫洞, 백 명의 무당이 살았다는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에 참여했다. 운 좋게도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완벽하게 보았다.

그리고 네 번째 만에 주능선 종주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무릎이 좋지 않아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마지막 몇 시간은 왼쪽 무릎의 통증으로 굽히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어쨌든 종주에 성공했다. 유명산우회 팀에 합류했다.


*다양하게 구성된 멤버

애초에 종주산행은 서어(瑞語)팀에서 기획했다. 민변에서 같이 할 사람들을 알아봤다. 의외로 지리산종주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처음 본 변호사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했더니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면서 바로 승낙했다.

중간에 변화가 있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최종 확정된 인원은 13명이었다. 당일에 한 명이 긴급한 일 때문에 불참해서 같이 출발한 인원은 12명이다. 지리산 종주를 몇 번 해본 사람은 1명이고, 나를 비롯해서 나머지는 모두 첫 번째 종주다.

전체 사진을 산에서 찍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오는 길에 신탄진휴게소에서 단체 증명사진을 찍었다. 한 명이 몸 상태에 문제가 있어 벽소령대피소에서 자고 하동으로 가서 먼저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전체 사진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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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양재동(22:20) → 반선(조식, 02:00) → 성삼재(姓三峙, 03:20) → (2.5㎞) → 노고단(老姑壇, 04:00) → 돼지령 → (4㎞) → 임걸령(林傑嶺, 05:19) → (2㎞) → 노루목(05:50) → {반야봉(般若峰)} → (2㎞) → 삼도봉(三道峰, 06:14) → (2㎞) → 화개재(6:30) → 토끼봉 → (4㎞) → 명선봉(明善峰, 총각샘) → 연하천(煙霞泉)대피소(09:00, 식사) → 삼각고지 → 형제봉(兄弟峰, 10:40) → (6㎞) → 벽소령(碧宵嶺)대피소(11:25) → 덕평봉(德平峰, 선비샘, 12:45) → 칠선봉(七仙峰, 13:55) → 영신봉(靈神峰, 14:50) → (6.3㎞) → 세석평전(細石平田, 15:20) → (3.5㎞) → 촛대봉(16:55) → 삼신봉(三神峰) → 연하봉(煙霞峰, 18:15) → 소일출봉(05:00) → (3.4㎞) → 장터목대피소(18:50, 숙박) → 출발(04:00) → 제석봉(帝釋峰) → 통천문(通天門, 04:49) → (1.7㎞) → 천왕봉(天王峰, 05:15) → 중봉(中峰, 05:55) → 써리봉(07:00) → (4.8㎞) → 치밭목대피소(08:00) → 무제치기폭포(09:15) → (1.8㎞) → 갈림길 → 한판골 → (4.4㎞) → 유평리(油坪里, 12:15) → 버스 탑승(14:30) → 양재동(18:40)


*지리산 종주코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25.5㎞의 주능선이고,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는 11.7㎞, 합계 37.2㎞의 대장정이다. 유평리에서 끝냈으므로 35.7㎞를 걸은 것이다.

성삼재까지 도로가 난 1988년 이전에는 구례 화엄사에서 종주를 시작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는 7.0㎞의 거리에 오르는 시간이 4시간으로 소개되어 있다.

한편 지리산 태극종주는 성삼재 이전에 인월-덕두봉-바래봉-팔랑치-부운치-세동치-세걸산-고리봉-정령치휴게소-만복대-묘봉치-작은고리봉-성삼재의 24㎞ 구간이 추가되고, 중봉 이후에 천왕봉-중봉-하봉-국골사거리-청미당고개-쑥밭재-새재-서왕등재-동왕등재-도토리봉-밤머리재-853봉-웅석봉(熊石峰)-어천․청계고개의 26㎞구간이 추가되어 장장 75.5㎞에 이르는 대구간이다.

주능선 종주코스는 태극종주코스의 절반이다. 군대생활을 할 때 유격훈련 끝나고 100㎞를 24시간에 주파는 행군도 몇 번 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겠지?


*지리산(智異山)의 의미

지리산(智異山)은 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이다. 신라 5악 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롭게 달라진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많은 은자(隱者)들이 도를 닦으며 정진하여 왔으며, 골짜기에 꼭꼭 숨어든 은자가 그 수를 추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으로 적기도 한다. 지리산의 전체적인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두루뭉술하며 또 사방으로 산들이 첩첩이 둘러 있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 ‘두루’, ‘두리’, ‘둘러’가 한자로 표기, 정착되는 과정에서 ‘두류’로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지(智)’자와 ‘리(利)’자를 따와 지리산이었다고도 한다. 여기서 무수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갖가지 다른 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계시는 산’이란 뜻으로 지리산으로 적는다고 한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민족적 숭앙을 받아 온 민족 신앙의 영지(靈地)였다. 지리산의 영봉인 천왕봉에는 1,000여 년 전에 성모사란 사당이 세워져 성모석상이 봉안되었으며, 노고단에는 신라시대부터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반야봉, 종석대, 영신대, 노고단과 같은 이름들도 신앙을 상징한다.


*지리산의 개요

지리산은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3개 도와 1개 시, 4개 군, 15개 읍․면에 걸쳐 있다. 1967년 12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은 472㎢이고, 둘레는 320㎞이다.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이 3대 주봉이고, 해발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 개 있다.

계곡도 20여 개가 있는데 동쪽의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과 서쪽의 피아골, 뱀사골, 심원계곡이 특히 유명하다. 특히 칠선계곡은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 중의 하나다. 지금은 출입통제이고, 별도로 허가를 얻어야만 갈 수 있는 난(難)코스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에서 자라는 식물은 137과 536속 1500여 종인데, 지리산에서만 자라거나 지리산에서 발견된 종에 ‘지리’ 혹은 ‘지리산’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다. 지리대극, 지리대사초, 지리괴불나무, 지리산싸리, 지리산하늘말나리, 지리개별꽃, 지리고들빼기, 지리오리방풀, 지리바꽃, 지리말발도리, 지리터리풀 등등

지리산은 10경으로 유명하다. 제1경 천왕일출(天王日出), 제2경 노고운해(老姑雲海), 제3경 반야낙조(般若落照), 제4경 직전단풍(稷田丹楓), 제5경 벽소명월(碧宵明月), 제6경 세석철쭉(細石철쭉), 제7경 불일현폭(佛日懸瀑), 제8경 연하선경(煙霞仙境), 제9경 칠선계곡(七仙溪谷), 제10경 섬진청류(蟾津淸流)가 그것이다. 지리 10경 중 무엇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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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지리산 산행

지리산은 일찍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았고 기행문을 남기고 있다. 조선 초기 김종직(金宗直)이 『유두유산록(遊頭游山錄)』을 지은 이래, 남효온(南孝溫)이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를, 김일손(金馹孫)이 『속두류록(續頭流錄)』을,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주세붕(周世鵬)은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에서 선비가 즐겨 찾는 이유로 지리산의 웅축(雄畜), 금강산의 청절(淸絶), 박연폭포와 가야산의 기승(奇勝), 청량산의 단엄상개(端嚴爽价, 단정하고 엄숙하며 시원하고 크다)를 꼽았다. 지리산은 함축미(含蓄美)로 선비들의 발길을 끌었다는 해석이다.

남명은 지리산 자락에 거처하면서 지리산을 여러 번 찾았다. 『유두류록(遊頭流錄)』은 명종 13년(1558년) 4월에 열흘 정도 지리산 유람을 마치고 쓴 기행문이다.


*설렘을 안고

새로운 산행을 하기 전에는 항상 설렌다. 생애 처음 하는 지리산종주이니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나 작년 7월에 무박종주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코스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금요일 저녁 10시 20분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버스에 탑승했다. 한 명씩 두 명씩 끔직한 배낭을 멘 일행들이 속속 도착했다. 다들 나와 같이 설렘 반 걱정 반의 표정들이다. 거기서 고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인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학 후배를 만났다. 다른 일행과 함께 종주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뱀사골 입구인 반선에 02:00경 도착했다. 된장찌개로 식사를 했다. 산행 도중의 식사는 라면이나 햇반을 준비해서 각자 해결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삼 만원을 부담해서 네 끼 식사를 제공받는 옵션을 선택했다. 아침은 반선 식당에서 제공받고, 그 식당에서 토요일 도시락을 받으며, 세석대피소에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도시락을 추진받는 것이다. 도시락 자체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지만, 별도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리고 식당에서 세석대피소까지 가져다 줘야 하기 때문에 비용은 감당할 만하다.


*헤드랜턴을 끼고 임걸령까지

아침을 먹은 후 버스가 우리를 성삼재에 내려놓은 시간은 3시 20분쯤. 칠흑 같은 어둠이다. 성삼재는 어둠 속에서만 지나게 된다. 노고단, 돼지령도 마찬가지다. 임걸령에 가서야 날이 밝기 시작했다.

성삼재(姓三峙, 1090m)는 성이 다른 세 명의 장수가 방어했던 곳이라는 의미다. 마한의 어느 왕이 진한의 난리를 피해 지리산에 숨어 있으면서 각 능선마다 장수를 파견해 지키게 했다. 정령치(鄭嶺峙)는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이 지킨 능선이고, 황령치(黃嶺峙)는 황씨 성을 가진 장군이 지킨 능선이며, 팔랑치(八郞峙)는 여덟 명의 병사가 수비한 능선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산행로가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왼 쪽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 선배는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좌우에 함박꽃나무가 많다고 했다. 헤드랜턴에 황벽나무가 팻말이 보였다. 황벽나무를 만나면 안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무껍질도 푹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감촉을 못 보지 않고 그냥 지날 수가 없다.

노고단(老姑壇, 1507m)은 ‘늙은 시어머니를 위한 제사 터’라는 의미며, ‘할미단’이라고도 한다. 노(老)는 존칭의 의미이고, 고(姑)는 인류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여인을 의미하는 마고(麻姑)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마고할매를 위한 제사 터’로 해석하기도 한다.

노고운해는 지리10경 중 제2경이나, 깜깜한 밤에 지나니 볼 수 있기를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정상도 오르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방향만 짐작하고 지났다.

돼지령(1380m) 또는 돼지평전(平田)은 멧돼지가 자주 출몰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어둠 속에 지나면서 어디가 돼지령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났다. 멧돼지를 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임걸령((林傑嶺, 1320m)은 조선 선조 때의 의적 임걸년(林傑年)의 본거지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작년 7월에 왔을 때도 여기에 이르러 날이 밝았었다. 당시는 둥근이질풀, 동자꽃 등이 무성하게 피었었는데, 지금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꽃이 없다.

어둠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그 시점. 그 시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야간산행을 하게 된다. 아무리 집중하고 신경을 써도 그 시점을 잡아낼 수가 없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이르다.”고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경계지점을 지나버린다.

날이 밝아오는 것은 새들이 먼저 알려주었다. 아직 어두운데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저마다 청아한 소리로 울었다. 새들이 자연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새들도 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그저 새가 울었다고만 표현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다.

환하게 밝아오면서 모습을 드러낸 지리산. 굽이굽이 펼쳐진 산세가 입을 벌어지게 한다. 웅축(雄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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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찍지 못하고 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에서 찍었다. 한 명은 먼저 서울로 올라갔다.>


*말이 씨가 되어 내리기 시작한 비

날이 완전히 밝았다. 구름이 잔뜩 끼었다. 해를 볼 수가 없다. 산 중턱에 구름이 걸려 있기도 하고, 안개도 잔뜩 끼었다. 그래도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아서 산행하기에는 비교적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한 총장이 초장부터 힘든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이 씨가 되었나? 우비를 꺼내 입고, 배낭커버를 씌웠다.

임걸령에서 30분 정도 가면 노루목(1500m)이다. 노루를 몰아넣는 주둥이처럼 잘록한 지형이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지형이 노루목을 닮아서, 또는 노루가 다니는 길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노루목이라는 이름은 전국의 산 여러 곳에 붙어 있다.

노루목에서 반야봉(般若峰, 1732m)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반야봉은 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로 반야낙조는 지리10경 중 제3경이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 ‘프라냐(prajna)’를 음역한 것으로 ‘절대 변하지 않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한다. 반야봉은 지혜를 얻는 봉우리란 의미다. 어느 쪽에서든 멀리서 보면 ‘아기 궁둥이’(혹자는 ‘여자 궁둥이’라고 한다)를 닮았다. 산의 곡선미가 우아하고 여성스럽다. 천왕봉의 마고할매가 반야도사와 결혼하였는데, 반야도사가 반야봉으로 가서 도를 닦고 마고할매를 찾아 되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갈 길이 바쁜 우리로서는 반야봉에 들를 여유가 없다. 다음에 오르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도봉과 화개재

노루목에서 조금 가다보면 삼도봉(三道峰, 1499m)이 나온다. 경남, 전북, 전남 3도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삼도봉이다. 민주지산에도 삼도봉이 있는데, 거기는 전북․충북․경북의 삼도가 만난다. 과거에는 봉우리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낫날봉’으로 불리다가 ‘날라리봉’으로 바뀌었다. 삼도봉에서는 불무장등 능선과 피아골이 내려다보이고 건너편에 토끼봉이 복스럽게 걸려있다. 우리가 온 길 쪽을 뒤돌아보면 저 멀리 노고단이 높게 내려다보고 있다.

삼도봉에서 15분 정도 가면 화개재(花開峙, 1320m)에 닿는다. 화개재는 옛날 하동의 화개장터와 남원의 산내장터 봇짐장수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갯마루이다. 화개재에서 북쪽으로 200여 미터 내려가면 뱀사골대피소가 있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나무와 꽃

화개재 이후 나무와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쭉이 꽃을 피웠다. 지대가 높기 때문인지 철쭉이 이제야 제 철이다. 산행로 좌우로 병꽃나무가 꽃들을 달고 있다.

사슴의 녹각처럼 줄기가 매끈하여 녹각나무라고 하다가 변한 이름의 노각나무는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나무 한 그루가 부러져 넘어지면서 살아있는 다른 나무의 줄기에 기댔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살아있는 나무줄기가 넘어진 나무로 인해 움푹 파인 채 굵어가고 있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야생화는 풀솜대(지장나물)이다. 흰 꽃을 달고 군락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현호색 또한 이제야 꽃을 피웠다. 얼레지는 꽃잎이 지고 열매를 달고 있다. 더 높은 지대로 가니까 꽃잎을 닫고 변색된 마지막 단계의 얼레지들도 보였다.

하나의 줄기에 2층의 돌려난 잎을 가지고 있고(밑층은 7개, 위층은 4개), 7개의 노란 꽃술이 돌려있고 가운데 암술이 있는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꽃인지? 삿갓나물이다.

개별꽃으로 보이는 자잘한 흰 꽃들을 피운 풀들이 있다. 개별꽃을 닮았는데, 뭔가 약간 다른 것 같다. 개별꽃 종류에 지리산개별꽃도 있다. 지리산꽃줄기는 큰개별꽃과 비슷하나 꽃줄기에 한두 줄의 털이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개별꽃과 큰개별꽃은 꽃잎이 5장인가 7장인가로 구분한다고 한다. 그러면 꽃잎이 5장인 이것은 개별꽃인 모양이다.

여러 개의 타원형 모양의 큰 잎이 땅 위에 있고, 가운데로 꽃대가 하나 솟아나 그 끝에 작은 흰 꽃이 적게는 1개에서 많게는 예닐곱 개까지 뭉쳐 피어 있는 야생화를 만났다. 청초한 기품이 한 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장터목에서 만난 장 변호사도 이심전심으로 오늘의 꽃으로 꼽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나도옥잠화이다. 꽃잎과 수술이 6개씩이다.


*오로지 간족하(看足下)

연일 마신 술기운도 남아있고, 제대로 자지 못한 피로도 풀리지 않은 탓에 화개재를 지나면서부터는 졸림과 피곤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연하천대피소에 빨리 닿아 발을 쉬게 하고 허기를 채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2시간 30분에 걸쳐 토끼봉, 명선봉 등을 지나게 되는데, 표지판도 없어서 어디가 어딘지 확인도 못하고 스쳐 지나게 된다.

토끼봉(1533.7m)은 반야봉에서 볼 때 24방위 중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토끼가 많이 살거나 또는 봉우리가 토끼같이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명선봉(明善峰, 1586.3m)은 밝은 선(善)의 봉우리라는 의미다. 직전에 총각샘이 있었으나 현재는 말라붙어 찾을 수 없다.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도 간산간수(看山看水, 산을 보고 물을 본다)만 한 것이 아니라 간인간세(看人看世,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했다. 지나는 산수를 통해 과거 현인의 아름다운 행적을 보고 현재와 미래의 권력을 잡은 자들의 행실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유람하면서 간인간세하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만 한다. 발걸음 옮기는 것마저 힘든 상황에서는 간인간세는 고사하고 간산간수도 무리이며 간목간화(看木看花)조차도 쉽지 않다. 오로지 무념무상으로 머리 처박고 간족하(看足下, 발밑을 보다)할 따름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식사

선발팀이 먼저 연하천으로 앞서갔다. 연하천(烟霞泉, 1440m)은 연기와 노을의 샘이란 의미다. 연하천은 오래된 이름이 아니고 구례의 연하반산악회에서 명명한 이름이란다. 연하봉은 따로 있다. 연하천대피소는 수용인원 50명 정도라고 한다. 대피소 바로 앞에 있는 샘은 물이 풍부하다. 식수를 받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아서 좋다. 피곤할 때 물 뜨러 상당한 거리를 가야 한다는 것은 곤욕이다.

우리는 반선 식당에서 점심으로 받아온 도시락을 연하천대피소에서 먹기로 했다. 나와 우리 사무실의 고 변호사는 9시경에 도착했다. 종주산행의 거의 전 구간을 고 변호사와 함께 진도를 맞췄다. 앞선 팀은 거의 1시간 전에 도착해서 라면까지 끓여 먹었다. 선발팀은 세석대피소에서 보기로 하고 먼저 떠났다. 4명이 나보다 30여분 뒤에 왔다. 라면과 도시락으로 그런대로 풍족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맞은편 산자락을 보니 흰색의 나무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자작나무과로 고산지역에 자생하는 사스레나무다. 줄기의 흰색은 자작나무보다도 더 맑다. 종주를 하면서 자주 만나기 때문에 종주를 마칠 때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대피소 주변에는 습지식물인 노란 꽃이 핀 동의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옆에 큰 하트 모양의 두꺼운 잎에 흰 꽃을 피운 풀도 뭉쳐 있다.


*쉬운 구간이 하나도 없는 지리산 코스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지도상에는 1시간 20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작년 7월에 아내와 함께 가면서 2시간 30분 걸렸었다. 그래도 무난한 코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바닥은 돌덩어리 너덜이어서 만만치 않다. 이 구간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리산의 전체 종주 구간 중에 마음 놓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구간이 하나도 없다. 아주 짧은 흙길이라도 만나면 왜 그리 반갑던지.

연하천대피소와 벽소령대피소 중간에는 삼각봉(삼각고지)과 형제봉이 있다. 명선봉, 삼각고지, 형제봉,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피의 능선’이라 불릴 만큼 6․25동란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삼각봉(三角峰, 1462m)은 연하천대피소에서 700m 떨어져 있고, 음정마을 방향의 벽소령 작전도로로 떨어지는 갈림길이 있다. 산내면, 마천면, 화개면이 만나는 지점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형제봉(兄弟峰, 1452m)은 높이 10m 가량의 두 바위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옛날에 불도를 닦던 두 형제가 지리산 여인의 유혹을 받고 수도의 길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가 그만 몸이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유혹에 넘어가 인간답게 살면 안 되는 것인가?

고 변호사가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벽소령 쪽으로 가면서 형제봉 근처에서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에 벽소령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더니 다 왔다고 했단다. 그 말만 믿고 가다가 다 지쳐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도 45분이나 걸렸다.

산행을 하면서 급한 마음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묻곤 한다. 그럴 경우 사실대로 정확하게 답변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의 태도가 옳은가 하는 문제는 산행객들 사이에 해묵은 논쟁거리다.


*벽소령에서는 명월이 뜨는 곳만 확인하고

인고와 기다림 후에 벽소령에 닿았다. 벽소령(碧宵嶺, 1340m)은 ‘푸른 밤 고개’, 즉 달빛이 너무 희고 맑아서 푸른빛으로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리10경 중 제5경이 벽소명월(碧宵明月) 또는 벽소한월(碧宵寒月, 푸른 밤 찬 달빛)이다. 역시 달은 찬 겨울 흰 눈을 배경으로 해야 제 맛이다. 대낮이니 명월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명월이 떠오르는 산봉우리만 확인했다.

벽소령대피소는 1996년 12월에 새로 지었고,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로 수용인원은 250명이다. 2001년 7월에 빨간 우체통을 설치하였고, 실제로 편지를 전달해준다.

다리를 좀 풀고, 물을 보충했다. 식수는 대피소 밑 약 100m 지점에 있다. 물의 양이 많았고, 식용적합이라는 안내표지가 붙어 있었다.

나에게 벽소령은 뼈아픈 추억의 장소다. 작년 7월에 종주를 포기하고 삼정마을로 내려갔던 곳이기 때문이다.

화산 이현상(火山 李鉉相)이 최후를 맞은 빗점골도 벽소령 밑에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어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주류에 끼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인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가다가 결국 죽음을 맞았다.

군사작전도로가 아직도 남아있다. 벽소령 북쪽의 음정마을 쪽으로는 작전도로의 전체 모습이 남아있지만, 삼정마을 쪽은 일부 구간만 남아있다.


*물 맛 좋은 선비샘

벽소령을 지나고부터는 처음 가는 길이다. 평탄하다는 말도 있고, 주능선코스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 있다는 설명도 있다.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벽소령에서 덕평봉․선비샘까지는 길이 넓고 평탄해서 부담이 없으나 그 이후 칠선봉, 영신봉 구간은 힘들다.

일행 중 한 명이 벽소령에서 세석으로 오다가 중간에 되돌아가 벽소령대피소에서 자게 되었다는 것을 장터목대피소에서 확인했다.

벽소령에서 세석평전까지는 산행지도상으로는 2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실제로는 4시간 가량 걸렸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가기도 했지만, 산행을 시작하고 8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지나 피곤이 누적된 시점이기도 하다.

덕평봉((德坪峰, 1521.9m) 바로 밑 산행로 상에 선비샘이 있다. 옛날 덕평골 아랫마을에 화전민으로 살아온 이씨 노인이 평생에 한 번이라도 선비 대접을 받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형제에게 자신이 죽거든 그 시체를 상덕평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들이 그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위에 매장했는데, 훗날 지리산을 찾는 양반들이 샘터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노인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했다. 결국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 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샘물을 먹기 위해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물맛이 시원하고 좋았다. 물병을 채워서 다음날 오전까지 그 물을 마셨다.


저 봉우리 위로 명월이 떠오른다.

*다시 인내를 요하는 세석평전까지

선비샘에서 기운을 보충한 후 세석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어려운 코스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각오는 했지만, 참으로 인내를 요구했다.

선비샘을 지나 한참을 가다 보면 칠선봉(七仙峰, 1558m)에 닿는다.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위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남쪽으로 대성골과 북쪽으로 한신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칠선봉 가는 길에 단풍나무의 일종인 시닥나무가 붉은색이 도는 잎자루에 작은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힘이 들어 누워서 나무를 올려 보기도 하고, 말라 삭은 나무줄기의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우리가 칠선봉에 도착했을 때 젊은 남녀 한 무리가 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였는데, 산을 찾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몹시 반가웠다.

칠선봉을 지난 다음부터는 언제나 세석에 도착하나 하는 한 가지 생각만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이제나 저제나 기대하는데 앞에 정상부가 기암괴석으로 된 암봉이 나타났다. 영신봉(靈神峰, 1652m)이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이 시작되는 곳으로 물길이 낙동강, 섬진강, 금강의 세 갈래로 나뉘어 흘러드는 삼파수(三波水)다. 혹자는 칠선봉에서 영신봉 오르는 코스를 지리산 종주에서 가장 힘든 코스로 꼽는다. 급경사의 철계단 구간도 있다.

해발 1600m가 넘어서 그런지 얼레지가 아직 피어 있다. 길쭉하고 두꺼운 잎 서너 장 위로 꽃대 하나가 솟아 있고 꽃대 끝에 작고 흰색의 꽃 한 개 내지 대여섯 개가 핀 풀이 기품을 자랑한다. 오늘의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장 변호사도 역시 이 꽃이 오늘의 꽃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가 손쉽게 오늘의 꽃으로 의견일치를 본 이 꽃은 무엇인가? 가지 끝에 냄새 나는 노란 꽃을 피운 나무는?

힘들게 철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자잘한 연녹색 꽃을 밑으로 향해 달고 있는 나무가 자주 눈에 띄었다. 뒤에 어디선가 나래회나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긴 철계단을 천천히 오르다보니 오기가 났다. 그래서 속도를 확 내서 오르막을 올랐다. 봉우리를 돌아가니 철쭉 군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나아가니 세석대피소에 닿았다.


*지리10경 중 제대로 본 세석철쭉

그렇게 기다리던 세석대피소에 출발 이후 12시간이 지난 오후 3시 20분경 도착했다. 세석평전(細石平田, 1600m)은 우리말 이름이 ‘잔돌고원’으로 잔돌밖에 없는 고원지대라는 뜻이다. 세석평전은 촛대봉과 영신봉을 좌우에 거느리고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이다. 세석대피소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3억 원을 투입하여 1996년 1월 1일 개장한 통나무식 대피소로 수용 인원이 240명이다.

지리10경 중 제6경이 세석철쭉이다. 철쭉은 제철을 맞고 있었다. 영신봉과 촛대봉 쪽 너른 지대에 철쭉나무 뭉치들이 듬성듬성 분홍색 물감을 뿌렸다. 지리10경 중에 제대로 본 것은 이것이다. 대피소 주변에 심어놓은 야광나무도 흰 꽃을 활짝 피웠다. 꽃이 밤에 빛나서 야광나무다.

선발팀은 우리보다 1시간 이상 전에 도착했고, 뒤에 처진 팀은 4시 30분경에나 도착했다. 산악대장으로부터 저녁과 다음날 아침 도시락을 받고 장터목대피소 예약 서류를 받았다.

선발팀은 술을 몇 잔 마셨는지 취기들이 있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밥과 함께 소주와 오미자주를 마셨다고 했다. 장 변호사는 오른 무릎에 이상이 있다면서 테이프를 감았고, 황 변호사는 출발할 때부터 발목에 테이프를 감고 있었다.

선발팀 일부는 먼저 출발했다. 뒤에 처진 다섯 명 중 한 명인 이 변호사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나와 고 변호사 그리고 이 변호사가 출발했다. 이 변호사는 벽소령에서부터 오른쪽 무릎에 이상이 느껴진다면서 탈출로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세석까지만 가보자고 해서 세석까지 왔던 것이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도시락도 먹질 못했다. 내가 둘째 날 먹으려고 가지고 있던 사과를 하나를 건네니 그것은 먹었다. 장터목까지 갈 것인지 고민하는 이 변호사에게 고 변호사가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평탄하고 경치가 좋아 힘들지 않을 것이라면서 장터목까지 갈 것을 권했다. 이 변호사는 이 말을 듣고 따라 나섰다.

이 부장이 남아서 맨 뒤에 오는 사람들을 만나 설득해서 장터목까지 오기로 했다. 항상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것은 이 부장이 맡는다. 맨 뒤에 있던 네 명 중 권 변호사는 벽소령에서 자기로 했고, 세 명이 뒤늦게 세석에 도착해서 술 한 잔 권하면서 장터목까지 같이 왔다.


*세석에서 자지 않고 장터목에서 자게 된 사연

원래 처음에는 세석대피소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다. 처음 예약할 때도 세석대피소로 했다. 그런데 출발 며칠 전에 예약자 1명을 변경해야 사정이 생겨서 유명산우회에 연락을 했다가 장터목대피소에서 숙박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석대피소에서 숙박을 하면 천왕봉 일출을 보기 어렵다. 일출시간이 05:20경인데,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3시간 걸리기 때문에 밤 2시에 떠나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원래는 3시쯤 출발해서 장터목 직전에 있는 소일출봉에서 일출을 맞을 계획을 세웠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자면 새벽 4시에 출발하면 천왕봉 일출에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으므로 첫날 좀 무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장터목대피소에서 자는 것으로 바꿨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너무 무리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숙박장소를 세석으로 변경할 수 없는지 산악대장에 물어봤다.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세석까지 같으면 첫날 장터목까지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달리 길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뒤에 처진 몇몇은 세석에서 잘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결국 이 부장과 함께 장터목까지 왔다.


*반야낙조(般若落照)는 결국 보지 못하고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을 거친다. 촛대봉에서 연하봉 가는 길은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널널한 능선길과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설명도 있다. 산행지도상에는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우리는 2시간 넘게 걸렸다. 평탄한 것은 고사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 변호사는 속으로 욕하면서 왔다고 했다.

세석평전 동쪽에 있는 봉우리가 촛대봉(1704m)이다. 촛대봉은 봉우리의 모양이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음양수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 처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 밭을 가꾸고 밤에는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리던 장소라 하여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도 있다. 연진은 후에 바위로 바뀌었다. 촛대봉은 세석평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등의 봉우리와 한신계곡과 도장골 등의 주변 계곡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장터목으로 가는 구간에서 지리10경 중 하나인 반야낙조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껴서 해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바람도 스산하게 불어 춥기까지 했다. 어쩌다 해가 구름 사이로 나왔는데 지려면 한참 남았다. 일목시간이 7시가 넘었으니 아직 이른 시간이긴 했다.

삼신봉(三神峰, 1680m)은 구분하지도 못한 채 가다보니 연하봉(烟霞峰, 1730m)이 나왔다. 연하선경(煙霞仙境)이 지리10경의 하나인데, 안개와 구름에 쌓인 이 모습을 선경이라 말하는 것인가? 시계가 좋지 않으니 경치를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다. 속세와 떠나 운무 속에 있다는 의미로 선경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연하봉에서 본 반야낙조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서 서쪽을 바라보았으나 반야봉을 찾을 수조차 없다.

연하봉을 지나 평탄한 길을 가는데 품위 있는 고사목(枯死木) 한그루가 서 있다. 그곳에 다른 일행 대여섯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저 고사목이 방송에도 나왔고, 저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운이 좋다고 귀뜸해 주었다. 이번 산행에서 만난 고사목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

소일출봉(小日出峰)은 장터목대피소 직전에 있는 작은 평지이다. 천왕봉일출을 놓친 사람들을 배려해서 생긴 지명이다. 천왕봉과 제석봉 능선을 비롯해서 연하봉과 촛대봉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빨리 대피소로 가서 쉬어야겠다는 일념이었기 때문에 이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장터를 방불케 하는 장터목대피소에서의 숙박

장터목에 저녁 6시 50분경에야 도착했다. 장터목대피소(1750m)는 남쪽의 산청군 시천 사람들과 북쪽의 함양군 마천 사람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는 장이 서던 곳이다. 마천장과 덕산장을 보려가는 길목의 의미이가도 하다.

장터목대피소는 새 산장을 건축한 후 구 산장도 통나무로 새로이 장식하고 1997년 11월 3일 준공했다. 수용인원은 170여 명 정도 된다. 숙소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각 층마다 또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대피소는 장터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의 선발팀은 자리를 배정받고 두 명은 잠들어 있었다. 선발팀 두 명이 모포를 받아왔다. 몸을 씻을 수는 없고, 옷만 갈아입었다. 뒤에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한 쪽 구석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 한 잔씩 했다.

여기서 작은 해프닝이 하나 발생했다. 일명 '장터목 곰취 사건'. 표 변호사가 예의 그 능력을 발휘하여 취나물를 뜯어와서 된장에 찍어 먹었다. 그런데 곰취가 딱 하나뿐인 모양이었다. 고 변호사가 처음에 잡은 것이 그 곰취였다. 표 변호사가 못내 아쉬움을 표하면서 고 변호사에게 눈썰미 좋다고 몇 차례 말을 했고, 고 변호사는 곰취인지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잡은 것에 불과했다고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피소는 소란스러웠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올라와서 밖에서 비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대피소에 잘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쌀쌀하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밖에서 자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노인이나 아동을 동반한 여성 등에게 우선권을 부여하여 취소된 자리나 복도 등을 배정했다. 마이크로 안내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렇게 한참을 북적대다가 저녁 9시에 불을 껐다.

세면도 못하고 이도 닦지 못하고 소주 한 잔으로 피로를 풀고 잠들었다. 무리한 무릎이 원상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우리 자리는 지하층의 윗층 한 쪽면이었는데, 장소와 모포는 충분했다. 밤에는 난방을 해서 후덥지근했다. 도시락이 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갈 때마다 천왕일출을 볼 수야 없지

둘째 날 일정은 두 팀으로 나누었다. 천왕봉일출을 보고 대원사로 가는 팀과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빠지는 팀이다. 천왕봉일출을 보려면 새벽 4시에 장터목을 출발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3시 20분경 주위가 소란스러워 잠을 깼다. 우리 맞은 편 라인에서 잔 사람들이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일어나 준비를 하고 4시경에 출발했다. 동작 빠른 표 변호사는 먼저 나가서 도시락을 먹었다. 중산리로 빠지는 사람도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볼 예정이었으나 날씨가 흐린 것으로 보이자 일출 보러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이 부장은 헤드랜턴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날이 밝아진 후 출발해서 대원사 쪽으로 가겠다면서 남았다. 그렇게 해서 4시에 천왕봉으로 출발한 사람은 박 선배, 표 변호사, 고 변호사 그리고 나 네 명이다.

제석봉(帝釋峰, 1808m)을 언제 지났는지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을 올랐다. 제석봉은 고사목과 초원지대의 봉우리다. 제석은 불교에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임금을 말한다. 무속에서 제석신은 집안의 무사태평을 관장하는 신으로 무당달의 신이다. 제석봉 북쪽 기슭에 있는 제석단은 조선시대부터 이름 남 무당들의 산신제 장소였다. 제석봉의 고사목지대는 6․25 이후에도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였는데, 자유당 말기 제석봉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부터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고 도벌사건이 여론화되고 말썽이 나자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들마저 지금과 같이 고사목이 되었다. 고사목은 어둠 속에서 잠자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짐작만 한 채 지나갔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통천문(通天門)에 닿았다. 하늘로 통하는 문, 즉 천왕봉에 이르는 문이다. 거대한 바위덩이 사이로 홈처럼 구멍이 난 것이다. 어둠속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바위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도 새가 아침노래를 활기차게 불렀다. 이 높은 곳에도 새가 있었구나?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지?

천왕봉(天王峰, 1915m)에 오르니 5시 10분이 조금 지났다. 일출시간에는 맞추었는데, 운무에 휩싸인 천왕봉은 우리에게 일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리10경 중 제1경인 천왕일출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된다는 속설이 있다. 올 때마다 일출을 볼 수 있으면 천왕봉 일출이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았겠지.

우리는 좀 기다렸다가 지리산 최고봉의 표지석을 끼고 증명사진을 한 장 찍었다. 높이 1.5m의 표지석 앞면에는 “知異山 天王峯 1,915m”, 뒷면에는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예로부터 천왕봉의 거대한 바위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로 불렸는지 천왕봉 서쪽암벽(장터목방향)에 “천주(天柱)”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남명이 덕산 앞개울에 정자(후대에 지어진 洗心亭이 이곳일 것으로 추정된다)를 짓고 그 기둥에 시를 써 붙였다. 제목은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 덕산 계정 기둥에 쓰다)>

청간천석종(請看千石鍾)/ 비대구무성(非大扣無聲)
쟁사두루산(爭似頭流山)/ 천명유불명(天鳴猶不鳴)

천 석들이 종을 보게나,/ 큰 것으로 아니 치면 소리 나지 않는다네.
어찌 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천왕봉의 웅장함을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것으로 표현했다.





세석평전에서

중봉 가는 길에 잠시 얼굴을 내민 해

아쉬움을 남기고 대원사로 하산을 시작했다. 전날 대원사로 내려갈 것인가 중산리로 내려갈 것인가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대원사 하산길이 지루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도 직접 가봐야 얼마나 지루한지를 알 수 있을 것 아니냐면서 우리는 대원사 코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중봉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좋았다. 날이 밝기 시작하면서 새소리가 청아하고, 물기를 머금은 녹색의 나뭇잎들이 반짝였다. 산행로 상에 주목도 보였다. 구상나무는 거의 모든 구간에 걸쳐 있었는데, 주목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원래의 주목줄기 가운데 사이에 새로운 줄기가 자란 모습의 주목이 눈길을 잡았다. 이미 지평선 위로 많이 올라온 해가 잠시 구름 사이에서 나와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왕봉에서 중봉까지는 40분 정도 걸렸다. 산행지도 상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중봉(中峰, 1874m)은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천왕봉 바로 옆에 있으면서 천왕봉에 감탄하고 하산하는 길에 거쳐 가는 경우가 많아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전문사진작가인지 사진동호회원들인지 몇몇이 삼발이까지 들고 촬영위치를 물색하고 있었다.

최고의 사진, 써리봉 전망대 바위에서 잡은 천왕봉과 중봉

아침에 일어날 때 왼쪽 무릎이 뻐근했다. 가능한 한 왼발에 힘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내려왔다. 어제 오후부터 물파스를 발라주기 시작했는데,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중봉을 지나 적당한 장소에서 쉬면서 고 변호사와 나는 아침 도시락을 먹었다. 표 변호사와 박 선배는 먼저 치밭목대피소로 가서 라면을 끓이는 등 먹을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어딘가에서 중봉과 써리봉의 구간은 전문산악인만이 탈 수 있는 힘든 코스라고 본 것 같아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외길로 보이는 산행로로 가다 보니 전망 좋은 바위에 닿았다. 써리봉(1602m)이라는 표지목이 서 있다. 산행로 자체는 그다지 험한 편이 아니어서 여느 구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전망바위에서 우리가 내려온 쪽을 바라보니 천왕봉과 중봉이 아주 가까이 있다. 날씨도 확 개어 시계가 깨끗했다. 하얀 구름 한 조각이 천왕봉과 중봉 정상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통천문 쪽으로 오르면서 보는 천왕봉 모습도 좋겠지만, 써리봉에서 보는 천왕봉과 중봉의 모습은 대원사 코스로 선택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민간대피소에서 공단 임대대피소로 바뀐 치밭목대피소

써리봉을 지난 다음부터는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했다. 치밭목대피소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오르락내리락 만만치가 않다. 왼쪽 무릎에서는 조금씩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8시경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선발팀은 우리보다 20분 정도 먼저 도착했고, 우리가 도착한 직후에 장터목에서 5시 10분에 출발했다는 이 부장이 도착했다.

치밭목대피소는 취나물이 많이 산출되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치밭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가 본 책에는 치밭목대피소가 설악산 소청산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립공원에 남겨진 마지막 민간산장으로 나와 있었는데, 얼마 전에 공단이 인수하여 임대 형태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막걸리 한 잔 마실까 하여 달라고 하니 임대로 바뀐 후에는 막걸리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치밭목대피소는 샘물 뜨러 가는 길이 걷기 좋다. 경사가 심한 것도 아니고 거리도 적당하다. 울창한 숲 속에 길이 나 있어 조금 들어가면 시원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물을 떠온 후 “길이 참 좋다”고 하자 대피소지기가 한 마디 한다. “몸 상태가 좋은 모양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을 떠온 후 그게 어떻게 100m밖에 안 되냐고 항의합니다.” 진입로 입구에 ‘식수 100m’라는 표지가 있는데, 생각보다 길다고 느끼기 때문에 푸념을 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동쪽을 향해 있는 치밭목대피소는 전망과 뒤 배경 그리고 주위의 평탄한 지형 등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런 대피소를 임대해서 살면 어떨까 행복한 상상의 날개를 펴보았다. 산을 내려와 세상으로 돌아오기가 정말 싫었다.


*보지 않고 지나치면 후회하는 무제치기폭포

치밭목대피소에서 유평리․대원사 쪽으로 내려왔다. 유평리까지 산행지도 상에는 3시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고, 치밭목대피소에서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은 빨리 내려가면 2시간만에도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치밭목대피소를 출발했다.

그런데 치밭목대피소를 출발하여 상당한 거리까지 산행로가 바로 물길이었다. 너덜인 것은 물론이다. 비가 많이 오면 물길로 바뀌어 산행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개울이 시작되는 상류라 산행로가 물길에 잠기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 이곳의 산행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내려가서 급경사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무제치기폭포 100m라는 팻말이 나온다. 정상적인 산행로에서 벗어나 급경사의 산행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피로감이 막바지로 몰려오는 시점이어서 일행들은 지나치고 지나가 버렸다. 지리산에 있는 몇 안 되는 폭포인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혼자 내려갔다.

그런데 거대한 3단 암벽의 폭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물의 양도 많은 편이다. 스스로 무지개를 만드는 폭포라 하여 무지개폭포의 준말로 무제치기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지개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냥 지나쳐 지나갔더라면 크게 후회했을 것 같다.


*층층나무 흰 꽃으로 얼룩진 웅장한 계곡

무제치기폭포에서 700m 가량 내려가면 윗새재(3.0㎞)와 유평리(4.4㎞) 갈림길이 나온다. 윗새재로 빠지면 택시를 불러 타고 나올 수 있으며, 버스정류장은 유평리 쪽에 있다. 우리는 유평리(油坪里) 마을 쪽의 길을 선택했다.

장당골 계곡을 끼고 내려오다가 치밭목능선을 넘어 한판골 계곡을 타고 내려온다. 치밭목능선 미치지 못한 지점에 전망바위가 있다. 아래로는 장당골 깊은 계곡이 눈 아래 끝없이 전개되어 있고, 위로는 저 멀리 무제치기폭포도 보인다. 산등성이 곳곳에는 층층나무가 흰 꽃을 뒤집어쓰고 있다. 전망바위에 암자를 하나 짓고 며칠 머문다면 그것이 곧 신선이지 않을까?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넓은 바위 위에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푸른 잎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이 한가롭기만 했다.


*하산길의 고통

왼쪽 무릎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아우성이다. 유평리 2.6㎞라는 팻말을 본 지점부터 왼 무릎을 굽히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길은 돌길이고, 또 평탄하지도 않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내를 시험했다. 앞에 가던 고 변호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기다려주기까지 했다. 왼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내려왔다. 산행지도 상에 표시된 시간보다도 1시간 정도 더 걸려 4시간 만에 유평리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도 몇몇 나무와 꽃들이 눈길을 잡았다. 노란 꽃을 피운 피나물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계곡가라 연하천대피소 근처에서 본 동의나물로 착각했는데, 뿌리잎이 동의나물의 경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둥근 신장형이고 피나물의 경우 잎자루가 길고 5장의 작은 잎으로 된 깃꼴겹잎이다.

찔레의 순백색 꽃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찔레꽃은 어릴 때부터 보았고, 최근에도 여러 번 보았지만 이렇게 크고 또 순결한 흰 색인 줄은 깨닫지 못했었다.

땅바닥에 많은 꽃들이 떨어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알고 있는 나무의 꽃인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쪽동백나무 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짓고, 내려오다 보니 때죽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꽃이 보였다. 때죽나무의 꽃이었다. 나무 밑 땅바닥을 수놓았다.

남명은 지장암을 거쳐 쌍계사로 가면서 고대 중국 전국시대의 역사서인 『국어(國語)』에 나오는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선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을 좇는 것은 산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을 떠올렸다.

“당초 위쪽으로 오를 적에는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기가 어렵더니,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올 때는 단지 발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흘러내려가는 형국이었다(初登上面 一步更難一步 及趨下面 徒自擧足 而身自流下).”

남명이 유람할 때의 나이가 58세였다. 그 나이에도 무릎이 아주 튼튼했던 모양이다. 나같이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은 급경사를 내려오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 힘들다.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오는 것은 무릎이 아주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무릎 나쁜 사람이 산을 내려오기 힘들 듯이 사람에 따라서는 종악(從惡)도 힘들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나이 칠십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에 도달하였는데, 그 경지에 이르면 종악(從惡)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단히 “끊고 갈고 쪼고 문지를(切磋琢磨)” 일이다.


*대장정 마무리

도저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유평리 마을에 도착했다. 산행로에서 벗어나자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민박집도 나왔다. 민박집 앞에 붉은 열매를 빽빽하게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줄기를 보면 틀림없는 벚나무다. 버찌가 이렇게 붉은색의 과정을 거쳐 거멓게 변하는 것이었구나.

선발팀이 먼저 내려가서 식당을 잡았다. 유평리 마을 앞으로 꽤 넓은 시내가 흐른다. 대원사계곡이다. 커다란 바위들이 시내 가운데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물도 많고 맑다.

식당에서 닭도리탕에 소맥으로 피로를 풀었다. 한 시간 정도 기분을 푸니 무릎도 굽힐 수 있고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간단하게 냉수마찰을 하고, 식당 주변을 둘러보니 크지 않은 화단에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있다. 안주인께서 설명도 해주었다. 작약, 서양채송화(포테리카, 비름채송화), 제라늄, 두견화, 안주인도 이름을 모르는 노란 꽃을 핀 풀과 또 꽃이 진 원예화 등등. 안주인은 우리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중산리로 내려간 팀과는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합류했다. 전체가 증명사진을 촬영하지 못해서 신탄진휴게소에서 촬영을 했다. 그리고 서울 양재동에 와서 뒤풀이를 하고, 다들 드디어 해냈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안고 귀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봉 근처에서 해가 잠시 구름을 뚫고 나와 일출의 모습을 선사했다.


 써리봉 전망대에서 천왕봉과 중봉을 배경으로



 

 글. 김선수 변호사
2009/06/11 10:51 2009/06/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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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8일 한나라당과 정부는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비정규직법’) 적용을 유예하기로 잠정 결정하였다.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려는 정부 개정안이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조삼모사’ 식으로 이제는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비정규직법 시행유예 방침을 국민을 기망하는 졸속․땜질 처방의 전형으로 규정하면서, 이 방침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려는 정부의 개정안은 그동안 비정규직 양산과 고착화를 통해 전체 근로자를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시행유예 방침도 이름만 바뀌었지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예기간 동안이라도 정규직 전환의무가 면제되는 반면,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해고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해고 자유 기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행 유예와 함께 기간제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은 사실상 원천 봉쇄되고, 사용자는 정규직 채용을 회피할 것이며, 유예기간이 지나면 비정규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 대량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고용불안에 있다. 전체 근로자 중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다보니 내수경기가 진작될 리 없고, 우리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비정규직의 대량양산과 고착화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의 창출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시행유예 방침처럼 졸속․땜질식 처방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부당한 차별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채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차별적 처우 시정방안을 현실화함과 동시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기업에게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이를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당정의 이번 비정규직법 시행유예 방침이 정부의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고착화와 대량양산을 초래하여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지적하면서, 당정이 이제라도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헤아려 비정규직 해소를 위한 올바른 대책을 수립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9년 6월 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2009/06/11 00:52 2009/06/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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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그의 국민장이 거행되는 날이다. 지금 경복궁 장례식장에서는 국민들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기 위하여 국민장이 거행되고 있다.

  생각하여보면, 그는 자기자신만을 살아온 치열한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죽음을 보니 더욱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사람을 쟁취하여 왔던 인물이다. 주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만을 기다리지 아니하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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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3일 새벽, 그가 일찍 집을 나섰을 때 그는 짧은 유서를 작성하고 난 이후였다. 아내에게 따로 말을 하였던 것 같지 않다. 경호원과 함께 묵묵히 집을 나서 정토원을 돌아 본 후 부엉이바위 위에 섰다. 집에서 가까운 바위로는 매우 우람하고 4-50미터되는 벼랑을 지녔다. 일찍 떠오르는 햇살은 이미 봉화산을 비치기 시작하였다.

  그가 태어난 마을, 그가 어렸을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깊은 골짜기였던 곳이었다. 지금은 봉화마을이 보이는 지점까지 창원공단의 협력업체들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아직 봉하마을까지 공장이 서 있지는 아니하다. 그의 생가는 봉화산을 등진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이곳을 생태마을로 가꾸는데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자그마한 생태마을을 만들기에는 그런대로 덜 침해된 조건을 갖춘 곳이다, 그는 함께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하며, 수확을 하였다. 대통령직을 마친 이후 그는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 나라의 진정한 정치발전을 위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제2의 노무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던지게 만드는 역풍이 불기 시작하였고, 그는 무명(無明)의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가 지향하고 선포하였던 정의와 청렴의 가치가 자신과 가족과 동지들에 의하여 무너져 내린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외의 다른 누구를 먼저 원망하거나 질책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표방하는 가치 앞에 자신도 똑같이 냉정하게 비판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실정법은 그를 구속하여야할지 말지를, 나아가 그가 유죄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말하고 있듯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며,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여생이었을 줄 모른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와 같은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계속 살아가면서 활로를 개척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연대의식도 그를 지탱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으면 가슴이 환하게 열리면서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장렬하게 산화하기도 한다. 끝없는 예술혼을 추구하다가 벽에 부딪쳐 죽음의 나락에 떨어져 가기도 한다. 그에게도 사느냐 죽느냐 하는 자문이 처절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는 깊은 자괴감을 느꼈고, 자신이 구심점이 되어 이룩할 수 있는 사람다운 세상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하여 좌절하기 시작하였다.

  죽음을 결심하고 나선 새벽길에 그는 혼자일 수 있었다. 그의 꿈과 고통과 소망이 배어 있던 부엉이바위 위에 홀로 서 있을 수 있었다. 혼자 산책길을 떠나버린 그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을 사저가 가까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죽음의 결심을 유보하고 산을 내려가면 그의 삶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신의 섭리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고통과 불안을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는 거의 첫 번째 시도에서 자진(自盡)을 성공시켰다. 그가 치열한 삶을 살아왔듯이 마지막 순간도 치열하게 정리하고 만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결정으로 이 세상에서 훌쩍 떠나버렸다. 살아 있는 자에게 가장 궁금한 죽음 이후의 미지의 그곳으로 가 버렸다. 불안은 오직 살아 있는 자만의 그림자요, 실정법은 살아 있는 자들을 기속할 뿐이다. 그는 비상(飛翔)하는 마음으로 부엉이바위를 뛰어 내렸을 것이다. 육신은 비록 추락하여 참혹하게 부숴졌을 지라도 그의 영혼은 새롭게 비상하였을 것이다. 입관시 그의 얼굴이 평온하였다 전해 옴은 그가 뛰어 내렸을 때 육신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진심으로 기원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과격한 투신(投身)이 슬픔과 아픔으로 우리를 전율하게 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한 조각이요 신의 뜻에 따르는 한 모습으로 신의 면전에 바쳐지기를 기원한다.

  (부)우연 새벽 어슴푸레 열리고/ (엉)겅퀴 자주빛 꽃망울 맺히고 있네/ (이)솝의 우화 한편 끄집어 내어/(바)보들의 행진에 기쁨을 터뜨리고/ (위)태로운 절벽도 비껴가게 하네.

  그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밝게 빛나는 영혼으로 제2의 노무현으로서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동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글. 박연철 변호사 

 

2009/06/10 17:35 2009/06/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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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9. 6. 10.(수) 10시30분

■ 장소: 서초동 서울변호사회관 1층 세미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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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경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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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진배경


우리는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헌정사상 전대미문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고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비단 고인에 대한 개인적 애도의 심정뿐만 아니라 검찰권을 비롯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가 그 원인이었다는 것과 아울러 지금 우리 사회가 애써 쌓아온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진정한 반성 없이 막연히 화해와 통합만을 주장하며 지금껏 인권과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무시한 일방적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꿀 어떤 기미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가르치며 연구하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하는 우리 변호사들과 법학교수들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여 이 번 시국선언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은 정치적 입장이나 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가치를 위해서는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으며 함께 해야 한다고 믿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전국의 변호사와 법학교수가 이처럼 연대하여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지금껏 유례가 없던 일로 그 만큼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하여 깊은 우려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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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추진경과


지난 6월5일 원로 변호사이신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 이돈명, 서태영, 최병모 변호사와 양승규 서울대 명예교수, 국순옥 인하대 명예교수,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및 김승환 전북대 교수가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각각 전국 변호사들과 법학교수들에게 시국선언 동참을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발송하였습니다.


이에 6월 10일 오전까지 변호사 682명, 법학교수 195명, 총 877명이 참여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오늘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6.10 오전 기자회견 및 언론보도이후 메일 및 구두로 참여의사를 전달한 사람까지 반영한 결과(홈페이지 계속 수정)

- 6/12 현재: 변호사 693명, 법학교수 197명, 총 890명



시국선언문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는 막아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전국방방곡곡에서 국민들의 애도와 장탄식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는 단지 불행하게 죽음을 맞은 고인에 대한 애도의 심정만이 아니라, 검찰권을 비롯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분노와 우리 사회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위기의식의 공감대가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변호사들과 법학교수들은 먼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직접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로서 민주주의적 통제를 벗어난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와 남용을 지적하고자 한다. 검찰은 그 동안 노 전 대통령에 대하여 검찰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는 중수부를 통하여 ‘표적수사’, ‘죽은 권력에 대한 편파수사’를 자행하여 왔으며, 이는 선정적이고 가학적인 언론과 결부되어 노 전 대통령 측에 견디기 힘든 인격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검찰의 상궤를 벗어난 수사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형법상 피의사실공표 금지의무, 그리고 형사소송법상 비밀엄수의무 및 인권보장의무에 반하는 것임은 물론이려니와, 결국 전직대통령의 자살이라는 헌정사상 전대미문의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의 독선과 횡포는 단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권의 오․남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우리 헌정질서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와 같은 민주헌정질서의 기본적 인권은 심각하게 축소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한 법치주의는 정부의 권력유지와 기득권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집권한 정부가 고용창출과 사회안전망 확충 같은 다수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는커녕 부유층에 대한 감세,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등 소수만을 위한 경제 정책을 취하여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해치고 국민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게다가 어렵게 쌓아온 남북 간의 신뢰와 긴장완화도 물거품으로 만들어 한반도의 상황은 극한 긴장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그간 국민들의 희생으로 쟁취하고 지켜온 인권과 민주주의를 경시해 온 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그 원인과 책임이 있다. 정부와 국민들 사이의 소통은 끊어진 지 오래고, 오로지 일방적 독주와 아집만 남아있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이제라도 노 전 대통령이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수백만이 넘는 국민들이 왜 추모와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지 깊이 성찰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와 여당은 그와 같은 성찰 없이 용서와 화해, 국민 화합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엄정한 책임소재 규명과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국민화합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여당이 소통과 통합을 무시하는 독선과 아집, 이해와 공존보다는 배제와 힘의 논리에 휩싸인 채 일방통행을 계속할 경우 더 큰 국민적 저항이 뒤따를 것임을 경고하고자 한다.

 이에 우리는 정부와 여당에 대하여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의 잘못을 국민에게 사죄하고 책임자를 엄중히 문책하라.


1. 정부는 잘못된 수사관행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검찰권 행사의 남용을 방지할 근본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라.


1.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과 행동을 중지하고, 일방적인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어 민주주의를 회복하라.


 

1. 정부는 소수만을 위한 각종 경제정책과 무모한 개발 사업을 중지하고 대다수 국민의 생존과 생활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경제정책을 시행하라.


1.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대응만을 탓하지 말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남북관계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변호사.법학교수 선언

변호사 박재승, 서태영, 이돈명, 최병모 외 693명

법학교수 국순옥, 김승환, 양승규, 이장희 외 197명



시국선언 참가 변호사․법학교수 명단

변호사(693명)


강기언  강기탁  강대성  강동구  강동우  강명득  강문대  강신하  강애란

강영구  강영신  강영신  강영진  강율리  강태현  강하영  고경단  고영구

고영신  고유창  고윤덕  고은아  고재환  고준승  고지환  곽용석  곽용섭

구민회  구본권  구인호  권기일  권두섭  권문상  권미혜  권미희  권성중 

권세헌  권숙권  권영국  권영규  권영빈  권정순  권정호  권철호  권혁근 

금태섭  길영민  김갑배  김경지  김경진  김경태  김경호  김광삼  김광성

김광중  김귀덕  김규동  김기덕  김기중  김기창  김기천  김기현  김남근 

김남준  김다섭  김덕은  김도영  김도형  김도형  김동균  김동섭  김동아 

김동호  김두헌  김린    김명희  김미경  김미정  김민석  김병재  김병주 

김보라미  김상은  김상하  김상훈  김석곤  김석연  김선수  김성모  김성수 

김성식  김성우  김성진  김성훈  김수정  김수환  김승석  김승호  김양환

김연수  김영    김영곤  김영기  김영민  김영복  김영수  김영식  김영심

김영준  김영중  김영진  김영희  김완수  김외숙  김용규  김용규  김용명 

김용민  김용재  김용채  김우진  김운의  김원일  김은진  김은철  김의종 

김인숙  김장식  김재덕  김재영  김재용  김점동  김정범  김정진  김정호 

김정희  김종욱  김좌진  김주관  김주원  김주현  김준기  김준현  김지미 

김진    김진국  김진석  김철    김철홍  김춘희  김탁환  김태근  김태선 

김태우  김태욱  김태운  김태원  김태현  김택수  김하연  김학수  김학웅 

김한규  김한수  김한주  김향훈  김헌우  김현    김현성  김현주  김현호 

김형렬  김형중  김형태  김호민  김호철  김화섭  김화철  김흥준  김희수 

김희정  김희창  김희철  나승철  나양명  나윤주  남상철  남성렬  남현우 

남호진  노성환  노정윤  도형욱  류경렬  류송    류신환  류제성  류혜정 

맹주환  문광명  문덕현  문병규  문유식  문종욱  문현웅  문현주  민경한 

민병덕  박가림  박경신  박경환  박근하  박기민  박기억  박대욱  박동범 

박미혜  박민수  박범계  박상훈  박서진  박석민  박선아  박성민  박성하 

박성호  박세경  박세길  박세웅  박숙란  박순덕  박승진  박연철  박영립 

박영만  박영식  박오순  박용일 박재승   박재오  박재형  박정식  박정은 

박종문  박종우  박종욱  박종운  박종일  박주명  박주민  박주현  박준규 

박지웅  박진일  박철    박철수  박태원  박태현  박형상  박홍기  반정섭 

방정환  배병창  배삼희  배영근  배영철  배태연  백상필  백승헌  변영철

서기원  서동용  서보열  서상범  서상연  서선영  서성환  서순성  서정욱 

서채란  서태영  석근배  설창일  설창환  성상희  성종규  소라미  소순장 

소윤수  손계룡  손난주  손영호  손창완  송기오  송기호  송동호  송병춘 

송상교  송서재  송영섭  송인욱  송재섭  송지민  송찬근  송해익  송현순 

송호창  송흥식  신계열  신영욱  신용락  신인수  신지현  신진욱  신현석 

신현호  심봉석  심요섭  심재환  심종신  안병용  안봉진  안상운  안영도 

안준석  안혁    안호영  양규응  양동운  양려원  양 범   양성태  양태훈 

여연심  여영학  여운철  염형국  오수용  오윤식  오재창  오정민  오창훈 

오해칠  우수정  우지연  원민경  위대영  위석현  위은진  유병일  유상순 

유선영  유완석  유정동  유지선  유진범  유충권  유 택   유효석  윤기원 

윤기창  윤대기  윤승희  윤영석  윤영환  윤인섭  윤주호  윤중현  윤지영 

윤지혜  윤천우  윤철호  윤치환  음장복  이강만  이강훈  이강훈  이건영 

이경우  이경환  이광수  이광욱  이광진  이광철  이근우  이근창  이기문 

이기숙  이기욱  이남진  이덕민  이덕우  이돈명  이동주  이동준  이동호 

이동환  이만덕  이명선  이명헌  이미화  이민열  이민원  이민종  이병군 

이병일  이병주  이병창  이봉재  이상갑  이상호  이상호  이상훈  이상희 

이석태  이성우  이성재  이성환  이세영  이세호  이소아  이소영  이순명 

이승문  이승민  이승훈  이영기  이영미  이영직  이영진  이예모  이오영 

이원구  이원영  이원재  이윤희  이은숙  이은우  이인호  이재균  이재동 

이재명 이재정  이재호  이재호  이재화  이정근  이정민  이정택  이정희 

이정희 이종명  이종호  이주관  이주연  이준형  이지선  이지훈  이진호 

이찬진 이창록  이철원  이철원  이  충  이치선  이한본  이행규  이헌묵 

이헌욱  이 혁  이현규  이현성   이현용  이현웅  이현주  이형근  이형범 

이홍훈  이흥엽  임선숙  임선영  임성택  임신원  임영화  임재인  임정은 

임종인  임창주  임치영  임태호  임헌규  장경수  장경수  장경욱  장경진 

장달영  장덕천  장동환  장서연  장석대  장석재  장성관  장영석  장영화 

장유식  장종필  장주봉  장주영  장중식  장철우  장철호  장홍록  장효정 

장훈열  전경능  전병남  전성배  전성배  전성제  전영식  전종민  전종원 

전해철  전형배  정경선  정경수  정관영  정기호  정남순  정대출  정대화 

정미화  정범성  정병욱  정보건  정보근  정상권  정석윤  정성재  정성호 

정소홍  정수인  정양현  정연기  정연순  정영원  정영훈  정왕재   정 운   

정은아  정응기  정인희  정재성  정정훈  정종원  정주식  정지석  정지웅 

정진형  정채웅  정춘식  정태상  정한중  정현우  정혜선  정호석  정홍철 

제옥평  조경임  조광희  조규훈  조동환  조범석  조병규  조상호  조석만 

조성오  조성오  조성찬  조수진  조영보  조영선  조자룡  조정래  조재현 

조정희  조주영  조지훈  조철기  조하영  조형수  좌세준  주강원  지관엽 

진선미  진현숙  진현종  진형혜  차지훈  차혜령  채성희  채영호  천낙붕 

천창현  최강욱  최건섭  최경섭  최낙건  최낙준  최명준  최변기  최병모 

최봉태  최상종  최석진  최성식  최성주  최성호  최영도  최영동  최영수 

최영효  최용근  최용석  최용성  최원식  최윤상  최윤수  최은정  최일숙 

최재천  최정규  최정인   최종민  최지희  최진환  최현오  최현우  최효종 

탁경국  표재진  하귀남  하승수  하영석  하은정  하인호   한경수  한기찬

한명옥  한상복  한석종  한성준  한승헌  한연규  한은석   한정화  한창완

한택근  허양윤  허장협  허진민  허진영  현근택  현지원   형장우  홍석조

홍요셉  홍용호  황규표  황민철  황병각  황상현  황선기   황선영  황선철

황은영  황인상  황재선  황정렬  황정화  황필규  황희석   김정일  김용국

박원순  이수정 정수인  조정래  이원효  조함찬  원창연   강판천  차병직

최정은  전휴정  조두연  이정환 



법학교수(197명)


강경선(방송대)  강성태(한양대)  강영철(단국대)  고봉진(제주대)  고영남(인제대) 

곽노현(방송대)  국순옥(인하대명예교수)  김광수(서강대)  김기진(경상대)  김대원(서울시립대)

김도균(서울대)  김도현(동국대)  김동호(전남대)  김두식(경북대)  김명식(조선대)

김명연(상지대)  김병록(조선대)  김민배(인하대)  김상용(중앙대)  김석호(인천대)

김선광(원광대)  김성돈(성관관대)  김성진(전북대)  김승환(전북대)  김엘림(방송대)

김영두(충남대)  김영희(상지대)  김영희(연세대)  김욱(서남대)  김원준(전남대)

김은진(원광대)  김인재(인하대)  김인회(인하대)  김재형(조선대)  김제완(고려대)

김종서(배재대)  김종철(연세대)  김주영(상지대)  김주환(홍익대)  김창록(경북대)

김천수(성균관대)  김홍영(성균관대)  김효신(경북대)  김희성(강원대)  남궁술(경상대)

남복현(호원대)  류권홍(충남대)  류창호(아주대)  문병효(강원대)  문준영(부산대)

민병로(전남대)  박강우(충북대)  박규용(제주대)  박병도(건국대)  박병섭(상지대)

박상식(경상대)  박선아(제주대)  박성호(한양대)  박승룡(방송대)  박승호(숙명여대)

박정희(성화대)  박준석(전북대)  박지현(인제대)  박진완(경북대)  박찬운(한양대)

박홍규(영남대)  박희호(한국외대)  방승주(한양대)  백좌흠(경상대)  서경석(인하대)

서보학(경희대)  석인선(이화여대)  선정원(명지대)  소병천(아주대)  소삼영(청주대)

송강직(동아대)  송기춘(전북대)  송동수(단국대)  송문호(전북대)  송석윤(서울대)

신동룡(강원대)  신봉기(경북대)  신영수(경북대)  심영희(한양대)  안진(전남대)

양승규(서울대명예교수)  양천수(영남대)  엄순영(경상대)  여치헌(강원대)  오동석(아주대)

오병두(홍익대)  오세혁(중앙대)  오승진(단국대)  오승철(성신여대)  오승환(아주대)

오정진(부산대)  오종근(이하여대)  원혜욱(인하대)  유종락(광주대)  윤영철(한남대)

윤진숙(숭실대)  윤효영(한림대)  이경주(인하대)  이계수(건국대)  이계일(원광대)

이국운(한동대)  이금옥(순천대)  이동승(상지대)  이민영(가톨릭대)  이상덕(계명대)

이상명(순천향대)  이상수(서강대)  이석우(인하대)  이승욱(이화여대)  이영록(조선대)

이영무(조선대)  이원우(서울대)  이원희(아주대)  이유정(인하대)  이은희(충북대)

이장희(한국외대)  이재승(건국대)  이종수(연세대)  이준형(중앙대)  이창호(경상대)

이철남(충남대)  이철호(남부대)  이헌석(서원대)  이호근(전북대)  이호용(단국대)

이호중(서강대)  이흥용(건국대)  임상순(원광대)  임상혁(숭실대)  임성권(인하대)

임재홍(영남대)  임지봉(서강대)  장경원(명지대)  장덕조(서강대)  장복희(선문대)

장용근(홍익대)  장철준(한동대)  전윤구(경기대)  전종익(서울대)  정경수(숙명여대)

정대익(경북대)  정병덕(한림대)  정병호(서울시립대)  정승재(문화스포츠법연구소)  

정영선(전북대)  정인섭(숭실대)  정진석(국민대)  정태욱(인하대)  정태호(경희대)

정회철(충남대)  정훈(전남대)  정희철(대구카톨릭대)  제철웅(한양대)  조경배(순천향대)

조국(서울대)  조상균(전남대)  조승현(방송대)  조시현(건국대)  조용만(건국대)

조우영(경상대)  조임영(영남대)  조지만(아주대)  조현래(부산대)  차성민(한남대)

차정인(부산대)  채형복(경북대)  최명구(부경대)  최봉석(동국대)  최영규(경남대)

최우정(계명대)  최윤철(건국대)  최정학(방송대)  최철영(대구대)  최홍엽(조선대)

최흥섭(인하대)  최희수(강원대)  하승수(제주대)  하태훈(고려대)  한만주(강원대)

한상돈(아주대)  한상훈(연세대)  한상희(건국대)  한지영(조선대)  허일태(동아대)

홍명수(명지대)  홍승희(원광대)  홍완식(건국대)  홍영기(가톨릭대)  황성기(한양대)

황창용(원광대)  최진섭(인천대)  정성숙(영산대)

 

 

 

 

 

 

 

2009/06/10 17:26 2009/06/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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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7일부터 민변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비정규법‧최저임금법 올바른 개정을 위한 법률가 공동행동' 은 국회 계류 중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한 법률가들의 하루 릴레이 단식과 국회 앞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6월 1일부터 5일까지 권영국 위원장, 강기탁, 강문대, 김진, 서보열 변호사가 1인 시위에 참여했고, 노동위원회 인턴(김현지, 문현기, 박성민)이 현장 기록과 진행을 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김진 변호사>


 

  월요일 첫 1인 시위를 촬영하던 과정에서는 배경에 국회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전경들과 실랑이를 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 순간 정문 너머로는 견학을 온 듯한 학생들이 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는 우리의 목소리가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그들이 그렇게나 가리고 싶고, 또 지켜야 하는 국회 앞에서, 무더위의 시작을 몸소 느끼며 노동위원회 변호사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 이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소수에 이롭고 다수에 해로운 약탈적 체제’위에 놓여있다. 비정규법 개악은 이러한 체제를 공고히 할 것임에 틀림없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일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으면 민주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되는 역사적 사례는 없다”고 단언했다지만, 작금의 현실은 학자들의 그러한 확신을 무색케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긴 마라톤” 이라는 말처럼, 노동위원회 변호사들의 짧은 경주만으로 정부의 비민주적 접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단식과 1인 시위 체험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라는 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한 작지만 소중한 몸짓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박성민 인턴







2009/06/10 17:18 2009/06/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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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차 정기총회가 6.27(토)~6.28(일) 경북 간디문화센터에서 열립니다.
참석여부, 교통편, 식사 및, 가족 동반 여부를 6. 12(금)까지 다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위임장도 다시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를 참조하세요
 



                                        <민변 제22차 정기총회 안내>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알려드린바와 같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제 22차 민변 정기총회 일정을 아래와 같이 변경합니다. 갑작스런 변경에도 불구하고 양해하여 주신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총회 장소 및 세부 일정등은 변경사항 없습니다.

다만, 일정이 변경되었으므로,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우셨던 회원들께서도 참석 가능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참석여부, 교통편, 식사 및, 가족 동반 여부를 6. 12. 금요일까지, 다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위임장도 다시 부탁드립니다.

경북 군위 ‘간디문화센터’에서 대구지부와 함께 준비하여, 개최되는 이번 총회에 모든 회원께서 참여하시어, 앞으로 민변의 진로에 대한 회원 여러분의 의견과 뜻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총회장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1. 일시 : 2009. 6. 27. 토. 17:00 ~ 2009. 6. 28. 일. 10:00

2. 장 소 : 경북 군위 간디문화센터 (전화 054-382-8745)

3. 제22차 정기총회 안건

  ▪ 제21차년도 사업보고 및 승인의 건
  ▪ 제21차년도 결산보고 및 승인의 건
  ▪ 감사보고
  ▪ 회칙개정의 건 (개정안 내용은 별도 안내 및 의견 수렴하였습니다)
  ▪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 고문 위촉의 건
  ▪ 제22차년도 사업계획안 승인의 건
  ▪ 제22차년도 예산안 승인의 건
  ▪ 기타 안건

4. 준비물 : 세면도구 등  (화장실, 욕실 등이 공용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5. 참석여부 회신 요청 :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한번 회신 부탁드립니다.

  * 참가하실 경우, 왕복 교통편(버스 또는 개별) 선택, 토요일 저녁식사, 일요일 아침식사, 가족동반(가족방 신청) 등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가족방은 9개까지 가능합니다. 방이 조금 커서, 2가족 공동사용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착순 접수 받도록 하겠습니다.^^

6. 위임장 요청 :

   * 불참시, 아래 첨부된 위임장을 메일, 팩스 등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안건 중 회칙개정이 있습니다. 재적과반수 출석이 필요하오니,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하시더라도, 꼭 위임장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7. 제22차 정기총회 전체 일정은 아래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30일 토요일

  09:00             서초동 정곡빌딩 앞 집결 및 출발

  12:00 - 14:00    단양 도착, 점심식사 및 간단한 관광

  14:00 - 16:00    총회장소 도착 (군위, 간디문화센터)

  16:00 - 17:00    숙소 정리 및 휴식

  17:00 - 18:00    제22차 정기총회 : 보고안건

  18:00 - 19:00    저녁식사

  19:00 - 22:00    제 22차 정기총회 : 논의안건

  22:00 -          캠프파이어를 동반한 뒷풀이

▪ 31일 일요일 

  08:00 - 09:30    기상 및 아침식사

  09:30 - 12:00    부석사 도착

  12:00 - 14:00    점심식사 및 부석사 관광

  14:00 - 17:00    서울 도착 및 귀가

* 일정은 본부 기준입니다. 지부에서는 일정 관련하여 의견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참가신청서 및 위임장 양식은 첨부파일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9/06/10 17:01 2009/06/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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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제성 변호사님께서 6월1일부터 민변 사무국 새 가족이 되셨습니다.
그동안 송상교, 서선영 변호사님 두분이 상근변호사로 계셨는데, 류제성 변호사님의 합류로 민변 사무실이 더 든든해진 느낌입니다.

 류제성 변호사님의 인사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6월 1일부터 민변 사무국에서 근무하게 된 류제성 변호사입니다. 꽤나 먼 길을 돌아 다시 민변으로, 그것도 상근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습니다. 촛불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 연행과 기소, 인권위 무력화, PD수첩 사건, 광고불매운동 사건, 미네르바 사건, YTN 사태, 용산참사, 서울광장 봉쇄,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까지...


지금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 정도가 아니라 ‘사망’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심각한 의문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어렵게 쌓아왔던 남북간의 신뢰와 평화도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저를 다시 민변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민변의 상근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하는 지금,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류제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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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6:47 2009/06/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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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6월입니다. 국제빌딩 주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 내의 세입자 등 6명의 삶을 앗아간 용산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 덧 5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 사고로 희생된 세입자 등의 유족들은 아직까지도 희생된 분들의 장례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희생자들과 함께 망루에 올랐던 세입자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 중 일부는 구속되어 있으며, 구속된 사람 중에는 위 사고로 부친을 잃은 유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형사재판은 한 달 이상 진행되지 않았고, 공판기일이 추정된 상황입니다. 물론, 조만간에 재판이 진행되겠지요. 이하에서는 용산사건의 진행상황을 일자별로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2. 진행상황


2009. 1. 20.  사건 발생(세입자 등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 각 사망)

2009. 2. 8.  구속자 5명에 대한 공소제기(이후 추가 기소 계속됨)

2009. 2. 9.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 최종 수사결과 발표

2009. 3. 10.  (수사)기록목록 교부됨

2009. 3. 25.  변호인, 검사 보관의 수사기록 중 일부(200여개)에 대한 열람․등사 신청

2009. 3. 26.  법원, 국민참여재판 배제결정(2회 공판준비기일)

2009. 3. 27.  검찰, 열람․등사 거부 또는 범위제한 통지서 교부(전부 불허)

2009. 3. 31.  변호인, 법원에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신청(형사소송법 제266조의4)

2009. 4. 14.  법원,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 결정

            변호인, 법원의 열람․등사 허용결정에 따라 검찰에 기록 열람․등사 재신청

2009. 4. 16.  검찰, 법원의 열람등사허용 결정에도 불구하고 열람․등사 거부

2009. 4. 17.  변호인, 열람등사 거부된 수사기록에 대한 압수․수색 신청

2009. 4. 22.  법원, 수사기록에 대한 압수․수색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

            변호인, 법정에서 압수․수색 신청에 대한 재판부의 미결정 고지에 이의 제기

2009. 4. 23.  검찰, 검찰이 신청할 증인의 진술조서 등 수사서류 일부만을 추가로 교부.

2009. 4. 30.   변호인, 공판기일 변경신청
                   (요지 : 법원의 소송지휘권 행사를 통해, 검사가 법원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  결정을 ‘온전하게’ 이행하고 그에 따라 변호인이 열람․등사한 수사 기록을
                   검토하여 피고인들의 방어 준비를 위해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적정한 시점까지
                   공판기일을 중지하고, 그 이후 이 사건  공판기일을 변경하여 줄 것을 신청)

2009. 5. 1.   변호인, 불출석

            법원, 변호인 불출석을 이유로 공판 연기

2009. 5. 4.   변호인, 공판기일 변경신청

2009. 5. 6.   변호인, 법정에서 수사기록 열람․등사의 필요성 및 공판기일 변경신청의 이유 설명

            법원, 변호인단의 공판기일 중지신청에 대해 불허하고, 2009. 5. 15. 공판기일 지정

2009. 5. 8.  법원,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

2009. 5. 12  헌법소원심판청구(검찰의 수사기록 열람등사불허처분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등 형사고소(수사기록 열람등사불허처분에 대하여)

2009. 5. 13.  변호인, 공판기일변경신청

2009. 5. 14.  재판부 기피신청

2009. 5. 26.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에 대해 재판부 회부결정

2009. 6. 1.  재판부 기피신청 기각결정

2009. 6. 4.   변호인, 재판부 기피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3. 맺음말

   현재, 용산 사건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법원의 수사기록열람등사허용결정이 있음에도 검찰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수사기록은 이 사건의 실체진실의 발견을 위해서, 그리고 피고인들의 주효한 방어권 행사를 위해서 당연히 제공되어야 할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수사기록이 제공되기를 희망합니다.


글. 이재호 변호사


 

2009/06/10 16:31 2009/06/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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