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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8/31 MINBYUN [민변의 변론] 변호인 접견교통권 침해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한 판결
  4. 2010/08/31 MINBYUN 인턴 생활을 마치며 (1)
  5. 2010/08/31 MINBYUN [지부소식] 민변 대전·충청지부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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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0/08/31 MINBYUN 차별과 단속에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
  8. 2010/08/31 MINBYUN [아시아 인권모니터링 14호] 버마의 8888 민주항쟁과 총선을 앞둔 지금 이 항쟁이 갖는 의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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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0/08/25 MINBYUN [인턴 소식] 5기 인턴 선발 완료 & 4기 인턴 수료식 안내
  11. 2010/08/17 MINBYUN [민변의 변론] 국세청직원의 국세청장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무죄판결
  12. 2010/08/17 MINBYUN 이포보 고공농성장 지지 방문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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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0/08/16 MINBYUN [지부소식] 경남지부 - 뒤따라 올라 본 함안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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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10/07/28 MINBYUN [민변의 변론] 촛불집회 참여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중단은 위법
  22. 2010/07/28 MINBYUN (가)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모임 소개
  23. 2010/07/28 MINBYUN [인터뷰]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의 변호인, 최강욱 변호사 (5)
  24. 2010/07/28 MINBYUN 민변, 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문화제 참가
  25. 2010/07/28 MINBYUN [지부소식] 민변 경남지부 소식
  26. 2010/07/28 MINBYUN [회원전용] 많은 자극과 과제를 남긴 '민변 지부 대표자 회의'
  27. 2010/07/28 MINBYUN [회원소식] 이상희·이지선 변호사 책 출간 「상속 잘하는법 잘받는법」
  28. 2010/07/28 MINBYUN 청년유니온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 소장 제출
  29. 2010/07/27 MINBYUN 상지대 사태 : 김문기를 아십니까? 그의 복귀를 막아주십시오! (3)
  30. 2010/07/26 MINBYUN 타임오프제 폐기 및 노조법 개정 촉구 법률가 공동선언 개최

지난 24일, 권영국 변호사는 재판정에 섰습니다.
변호인으로서가 아니라 피고인으로서 겪는 1심 재판이었습니다.

권 변호사는 작년 6월, 일방적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현장을 찾았습니다.
민변 노동위원장의 자격으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노동법률전문가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무집행방해죄 및 상해죄의 현행범인으로 체포, 기소되었습니다.
경찰이 이유를 고지도 하지 않은 채 수 명의 노동자들을 방패로 둘러싸고 억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헌법에서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러한 사태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경찰에게 강력히 항의하면서 체포이유를 고지해줄 것과 피체포자들과의 접견을 요구했으나,
결과는 경찰을 폭행하고 공무를 방해하였다는 혐의로 ‘체포·구금’이었습니다.
작년 5월, 용산 참사 관련 기자회견장에서 연행된 이후 두 번째 체포였습니다.

촛불시위 현장, 용산 참사 현장, 쌍용차 파업 현장 등에서 시위대의 최전선에서 부딪치는
권영국 변호사를 혹자는 ‘거리의 변호사’라고 칭합니다.

권 변호사도 시위 현장의 갈등상황이 두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이나 정치적인 상황이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권침해상황이 발생했을 때,
                                      변호사라는 사람이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도 참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없는 용기를 내게 되는 겁니다.”



권영국 변호사를 재판 다음 날,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뉴스레터 독자 여러분께 띄우는 권 변호사의 메시지 또한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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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권영국 변호사입니다.
민변은 변호사 단체로서,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민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여러분께 저희의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호흡하려 하니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에서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변호사의 직분을 망각하지 않고,
변호사법 제1조에서 부여하고 있는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 작년 6월에 쌍용자동차 노조 조합원을 체포한 경찰에게 변호사 접견을 요구하다
  공무집행방해죄 및 상해죄로 고소를 당하셨는데요, 재판 과정과 경과가 궁금합니다.
  재판 결과 때문에 변호사직을 박탈당하실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 11월 달에 기소됐는데, 올 초에 인사이동 때문에 재판부가 한 번 바뀌고, 판사 사정으로 또 한 번 바뀌어서 이번 재판부가 3번째입니다. 그래서 재판이 상당히 늦어졌습니다. 공판 준비 기일을 거쳐 화요일(8월 24일)에 1회 공판이 열렸습니다.

 
당시 저는 민변 노동위원장으로서, 정리해고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노동법률전문가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하여 파업 현장에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공장에서 나온 조합원들이 이유를 고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경들에게 둘러싸인 채 체포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조합원들을 ‘고착’시켰을 뿐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신체를 잡아두는 것은 ‘체포’이고 일정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감금’이었죠. 이를 발견한 제가 체포 이유를 고지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이유도 없는 체포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한참 후 체포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퇴거불응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해서, 체포된 조합원들에 대한 접견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무조건 “막아”, “밀어내”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연행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변호사의 접견요구에 대한 최소한의 안내 절차도 생략한 채 말입니다. 몇 차례에 걸쳐 변호사 신분을 밝히며 접견 요청을 하였으나 경찰은 이를 완벽하게 묵살하였고, 접견요구에 대해 아무런 안내도 없는 경찰에 항의한다는 이유로 저를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인으로 체포·구금한 것입니다.

 변호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격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현재 재판진행상황이 썩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경찰의 공무와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에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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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정부 출범 이후 용산참사사건, 쌍용차 사건,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 사건 등
  많은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권영국 변호사님을 '거리의 변호사'라고 칭한 기사를 보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적극적인 활동은 촛불집회 때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촛불집회 당시 민변에서는 인권침해감시단을 만들어 경찰의 인권침해행위를 감시하는 활동을 했었죠. 그 과정에서 저도 열심히 참여했고, 그 결과 경찰과 시민들이 부딪히는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용산 사건에서는 검찰이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죠.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을 온전하게 행사할 수 없고, 그 결과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불의한 재판에 협조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수사기록조차 공개되지 않는 잘못된 재판 진행을 막기 위해서는 여론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쌍용자동차 파업시, 경찰의 고립전략에 의해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 갇히고 물, 의약품, 음식 등의 공장 안으로의 반입이 전면 차단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경찰과 용역들이 위험한 진압장구들을 사용하여 파업노동자들을 전면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태는 매우 위태로왔습니다. 이에 저는 민변 노동위원장으로서 파업 현장을 찾아 파업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권보장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거죠.

 
저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억압된 현실이, 특히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속되고 있는 강압적인 통치행태가 저를 비롯한 시민들로 하여금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 같습니다. 공권력이나 물리력을 동원한 폭력적 진압행태가 나타나고, 거리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외면하지 않는 이상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제가 거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웃음)




- 변호사라고 하면,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를 보거나 법정에 서는 모습을 많이 떠올립니다.
  격렬한 집회현장에 참여하실 때, 갈등은 없으셨나요?


 
기존의 변호사 상이 편안한 사무실에 앉아서 상담하고, 법정에서 재판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실제 시민들이 원하는 변호사 상은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고통을 공유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변호사들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측면이 큽니다. 저도 시위 현장에 설 때 부담을 느낍니다. 격렬히 부딪히는 현장에 있으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두렵고, 긴장되기도 하죠. 저는 강심장도 아니고 용감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피해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맞는가’하는 생각 때문에 같이 항의를 하게 됩니다. 인권침해상황이 발생했을 때 변호사인 사람이 옆에서 보고만 있다는 것도 참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없는 용기를 내게 되는 겁니다.




- 용산참사사건은 법원의 등사거부기록, 변호인단의 공판참석 거부 등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재판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나요?


 
초기의 변호인단은 수사기록 공개요구를 하면서, 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공판기일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은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재판은 공정한 재판이 되기 어렵고,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재판은 정의에 반하다고 판단해 전원 사임계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새로운 변호인단이 꾸려졌고, 현재 사건은 항소심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초 변호인단에서는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에 맞서 수사기록 열람등사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변호인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검찰의 수사기록열람등사거부행위는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올해 7월에 수사기록열람등사거부처분은 위헌 판결이 났는데, 안타깝게도 1심 재판이 끝난 후였기 때문에 실제로 재판에서 효과를 보지는 못했죠. 헌재의 결정이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현재 사건은 상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민변 회원들은 권 변호사님을 온화하고 사려깊은 '젠틀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목소리도 크시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엄청난 활동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권영국 변호사님을 바꾸어놓는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좀 야누스 적인가요? (웃음) 평소에 성격이 외향적이라거나, 목소리가 큰 것은 아닌데, 항의할 때에는 정확히 항의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항의를 점잖게 한다면, 그것은 항의로 보이지 않거든요.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이 전달하고자하는 말의 톤에 진심을 담아야 합니다.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기교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의할 때는 저의 마음이 실리기 때문에 이중적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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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시고, 2005년까지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시고 나서 계속 노동전문변호사로 활동해 오신 셈인데요,
   노동전문변호사가 되신 계기가 있으십니까?

 
저는 법대생이 아니었고, 금속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직으로 '풍산금속'(현재는 주식회사 풍산)이라는 회사에 취업을 했지요. 집이 어려웠고, 제가 맏이여서 생계를 벌며 군대문제 또한 해결해야했기 때문에 방위산업체인 풍산금속에 기술직 공채시험에 응시하여 특례보충역으로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풍산금속에서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결성된 노동조합의 초대 집행부가 매우 어용성이 강하였기 때문에 저는 노조위원장을 불신임시키기 위해 다수의 대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노력을 하다가 결국 다른 공장으로 강제전보를 당했습니다. 강제전보된 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곳에서 노동조합(지부) 설립을 준비하던 중 발각되어 해고를 당했죠. 해고된 상태에서 노동조합(지부)을 설립하는데 성공하였고, 조합원들의 단결된 투쟁으로 저도 복직했습니다. 그 후 제가 불신임을 시도했던 바로 그 위원장이 제가 전보되어 온 공장의 단체교섭 대표들을 따돌리고 회사와 몰래 단체협약서에 직권조인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요구를 배반하였고, 저는 제가 속한 지부 조합원들과 함께 위원장이 직권조인 단체협약에 대해 무효를 선언하고 재교섭을 요구하는 파업투쟁을 벌이다 구속되었고 두 번째 해고를 당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 자신이 형사피고인으로, 부당해고를 다투는 당사자로 법정에 서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법’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접하게 됐고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해고되고 나서 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노동운동을 열심히 했던 탓에 취업하기도 어려운 상태였죠.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고향의 대학선배가 사법시험을 권유해 법률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 노동 현장에서 그야말로 직업과 삶이 하나가 되신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기존의 경험이 제 진로를 결정할 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며 노동조합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직접 노동조합을 설립해보면서 노동자의 삶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인간적인 근로조건, 관리자들에 의한 부당한 대우 등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여전히 노동자는 사용자에 비해 미약한 존재이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이 변호사로서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시에 합격하고 난 후 끝까지 노동운동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부채의식 때문에 계속해서 관련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해고되고 구속되는 생활을 거치며 가족들이 힘들어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볼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정에 충실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저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결국 저를 부르는 사람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제 결정을 이해해 주었고요. 제가 연수원에 있을 때, 금속연맹 법률원에서 사회봉사를 했는데 그 활동이 결국 민주노총 법률원 설립으로 연결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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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몸소 느끼신 노동 현장은 변화는 어떠한가요? 진일보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계속 퇴보일로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희가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활동이 현장을 바꾸는데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일 때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노동조합이 활력을 가졌던 시기는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90년대 초반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이 1995년인가에 출범하여 체계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지만, 그 이후 87년 때와 같은 활력이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96년 12월에 여당이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하자 노동자들은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파업투쟁을 벌여 노동법을 재개정하는 일대 획기적인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때가 아마도 노동자들의 투쟁력이 정점에 이른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97년 연말 IMF 사태가 터지고 경제논리로 모든 것이 재단되기 시작했죠. 노동조합에 대한 규제, ‘노동의 유연성’을 명분으로 해고를 쉽게 하는 법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계속되었습니다. 파견법이 통과되고 정리해고가 법제화된 것이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그토록 반대했던 기간제법을 만들었습니다. 비정규직법 등이 우리가 말하는 ‘민주정부’에서 법제화되는 것을 보며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담보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회의가 들기도 했죠.

 
MB 정부 들어서서는 노동자들이 노동3권이 전면적으로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절차적 합법성을 갖춘다 하더라도, 대통령부터 나서서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버립니다. 정권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노동조합의 합법적 투쟁조차 설 자리를 잃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억압당하는 시대로 회귀한 것이지요. 지금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역들이 40대, 50대, 심지어 60대가 되었기 때문에 현장의 생동력이 퇴보한 면도 있고요. 근로조건,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이 세대간 순환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청년실업이나 고용문제 때문에 젊은 노동자들이 대단히 위축되어 있습니다. 현재 20-30대는 자신들에게 닥친 고용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식들이 강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저변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계신 노동관련 현안이 궁금합니다.

 
최근 문제되는 것은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문제인데, 타임오프가 노조전임자를 대폭 축소시켜 노동조합 활동을 제약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던 시도였다면, 창구단일화 문제는 노동조합의 교섭권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교섭창구단일화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섭권을 하나로 묶음으로 해서 이를 제한하겠다는 의도이지요. 때문에 저는 창구단일화 문제를 더 심각하게 봅니다. 어용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민주화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빼앗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교섭권은 노동조합의 존립문제와 연관된 것입니다. 창구단일화가 시행된다면, 교섭권을 행사하기까지의 절차가 어려워질 뿐더러 교섭도 하기 전에 노동조합의 기력이 쇠해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사업장 단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산업별노조와 사용자단체 사이의 산별교섭이 의미를 갖지 못하거나 거부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산별노조로의 노동운동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경우 ‘배타적 교섭대표제’를 두고 있는데, 소속 근로자들이 투표를 해서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노조가 교섭권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선거에 개입하여 조합원들을 매수하는 등 엄청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였고 노동조합들이 포섭됨으로써 미국노동운동이 침체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큰일입니다. 시간이 있다고 결코 그냥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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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국 변호사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요.

 
변호사가 되면서 제 꿈은 민주노총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과, 민변에서는 노동위원장으로 일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꿈이 있다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도록 노동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우리 노동법은 헌법에서 정한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아니라 통제하고 규제하는 법률입니다. 하위 법률은 헌법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 노동법은 거꾸로 노동3권을 통제하고 규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민변에서 노동법 개정을 위한 입법청원이나 개정안을 아무리 제출하여도 잘 수용되지 않더군요. 그런데 정부입법은 그런대로 국회에서 통과가 되기에 농담삼아 노동부장관이 되어서 노동법을 제대로 개정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제 소망은 시골에 가서(어느 곳에서든)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이 시민들을 억압하고 자본이 노동자들을 착취해가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로운 삶을 꿈꾼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글  / 출판홍보팀  박초롱 인턴
사진 / 출판홍보팀  김란아 인턴



 

2010/09/01 13:24 2010/09/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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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책(번역)]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 & 이지은 회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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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들어가는 말
미국의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 판사들의 역할 | 수정헌법 1조의 의미


1. 수정헌법 1조의 탄생
    출판에 대한 사전규제와 사후처벌|식민지 미국의 언론 자유|
    언론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다|연방 헌법과 권리장전

2. 선동법과 ‘메디슨 전제’ 
    대통령선거를 위해 고안된 선동법|정치적 토론과 저항|‘매디슨 전제’|선동법의 기여와 유산

3. 간첩법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의사표현의 자유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기까지|1919년의 간첩법 사건들|홈즈 대법관이 생각을 바꾸다|
    ‘그것은 실험이다, 모든 삶이 실험이듯이’|대법원의 관점을 뒤집은 반대의견들

4.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의사표현이란… 
    수정헌법 1조를 해석하는 법|수정헌법 1조는 허위 진술도 보호하는가?|
    어떤 진술도 사전규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전통적 명예훼손법의 3대 추정|
    선동적 명예훼손에 종지부를 찍다|‘『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의 영향

5. 의사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공적 인물의 사생활|사생활이 지니는 의미|언론 노출에 저항할 수 없는 개인들|간섭받지 않을 권리|
    진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혹스런 사실들의 경우|폭로의 시대|사생활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6. 언론의 면책특권?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다|누가 언론인가?|제한적 면책특권|면책특권을 주장하는 언론의 입장|
    언론이 ‘나쁜 놈’일 수도 있다|면책특권은 헌법의 문제가 아니다|순진함에서 벗어나 이성과 경험으로

7. 공포와 억압 
    애국적 히스테리|공포에 사로잡히는 사회|누가 자유를 지키는가?|공포를 떨쳐낸 두 판결|
    제2차 세계대전과 공포의 재현|냉전과 제2차 적색공포|행정부의 반공 십자군|보다 평온한 시대|
    베트남전쟁과 테러에 대한 전쟁|용기가 필요하다

8. 성에 관한 표현 
    성적 내용에 대한 반감|무엇이 음란물인가?|성적 표현의 헌법적 보호를 둘러싼 논란|최선의 검열

9. 언론의 역할 
    깡패 같은 기자들|언론의 의무|9?11 테러 이후의 순종적인 언론|법적인 문제들에 관한 언론 자유

10.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들 
    혐오 의사표현에 대처하는 자세|나치 옹호와 이슬람 극단주의|
    의사표현 수칙|국기를 불태우는 상징적인 표현

11. 의사표현의 자유와 경쟁하는 다른 이익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언론 보도로부터 배심원단을 보호하려는 노력|공개적인 재판이 의미하는 것|
    선거운동 자금과 관련한 부패를 제한하려는 노력|사법적 판결을 심사하는 기준

12. 사상의 자유 
    자유로운 의사표현에서 얻어지는 이익|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용기


감사의 말

찾아보기





 




 

2010/08/31 14:48 2010/08/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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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접견교통권 침해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한 판결
-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는 자만 접견교통권을 가진다?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에 관한 최근 하급심 판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접견교통권의 의의를 천명한 의미 있는 판결이면 좋겠지만
이번에 소개할 판결은 그와 반대편에 있는 판결입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8. 19. 선고, 2010나10701판결, 제6민사부).

 지난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를 기억하시지요? 당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인권침해감시변호사단’ 노란 조끼를 착용하고 집회 현장에 참여하였습니다. 민변 변호사들은 집회 참여자에 대한 경찰의 강경한 대응과 무차별적 연행 과정을 목격하면서 형사소송법의 정한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절감하였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대열 속에서 촛불을 든 것 외에는 어떠한 물리력도 행사하지 않던 시민이 현장 지휘관의 지시 한 번에 잡혀가는 현실을 우리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야간미신고옥외집회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만으로는 현행범체포를 무차별적으로 할 수 없음에도 경찰은 ‘억울하면 나중에 소송을 해라’고 하거나 헬멧 뒤로 표정을 숨기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변 변호사들은 연행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변호사신분증을 제시하면서 현장 변호인 접견을 요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제12조제4항),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 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동조제5항)는 헌법 조항을 소리 높여 말해주며 변호인 접견을 요청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상 권리가 있으므로 현행범체포 당시 눈앞에 있는 변호사와의 접견을 통해 조력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도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였습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6월 10일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경찰은 몇 차례 해산명령 후에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강제해산에 나서고 미처 피하지 못한 집회 참여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습니다. 당시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고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던 민변 회원이 시민들이 연행되는 상황을 발견하고 경찰 대열 속으로 들어가서 변호사신분증을 제시하며 변호인접견을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이에 현장 변호인접견을 거부한 것은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청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1심 법원에 이어 최근 항소심 법원도 접견교통권 침해가 아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몇 가지 점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째, 헌법 제12조제4항은 ‘즉시’ 조력 받을 권리를 명문으로 정하고 있으며 ‘즉시’를 제한하는 어떠한 시기적, 절차적 제한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은 수사기관의 처분으로 제한할 수 없고, 오로지 법령의 제한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아래 보는 바와 같이 현행범체포가 완료되지 않아 접견이 불가능하였다거나,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법적 근거 없는 자의적 기준을 내세워 ‘원고에게 접견교통권의 권리가 없다’고 선언하면서 헌법 제12조제4항을 무력화시키는 위헌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법원은 체포 당시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공무원의 정당한 강제해산 조치에 대항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급박한 상황이어서 연행자를 호송차량으로 인도하여 현행범체포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즉시 접견을 허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 현장에서 몇 명의 경찰에게 체포되어 경찰의 대열 속으로 이미 들어간 상황은 체포된 자가 이미 경찰에 의해 제압된 상태로서 그 상태에서 소극적 저항을 넘어 도주하거나 경찰에 적극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호송차량에 도착하기 전이라도 이미 현행범체포는 완료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판결을 보면 법원은 변호사가 “원고는 경찰 공무원의 현행범체포를 방해하기 위하여 접견을 요청하였을 뿐”이라고 납득하기 어려운 자의적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헌법 제12조제4항에서 “즉시”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부분을 무력화시키는 해석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셋째, 법원은 “접견교통권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적어도 접견신청 당시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34조는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는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접견하고 서류 또는 물건을 수수할 수 있으며 의사로 하여금 진료하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을 뿐,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를 접견교통권 발생의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 조항은 변호인으로 선임된 자 뿐 아니라 장래 변호인이 되려는 자도 접견교통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임에도, 법원이 위 조항을 ‘진정한 의사’가 있는 자만이 접견교통권을 가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게 접견교통권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입니다. 변호사가 접견을 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당연한 활동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상황에 따라 변호인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식에 부합하므로, 이를 부정하려면 그 입증책임은 접견교통을 거부하는 수사기관이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단지 실제 접견을 나중에 다른 변호사가 했다는 결과만을 가지고 원고의 접견교통 권리를 부인하였습니다.


 최근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제한하는 여러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치소에서는 증거인멸과 담배 등 물품 제공의 우려 등을 들어 변호인 접견을 하려 하는 변호사의 가방과 몸수색을 하고 있고 위 판결과 같은 논리로 선임계 없는 구치소 변호인 접견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접견교통권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가집니다.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이 공무집행의 편의를 들어 접견교통권을 쉽게 제한하려 들고, 법원이 깊은 고민 없이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글 / 민변 변론팀  송상교 변호사


[판결문 보기 ↓]

 


 

2010/08/31 13:51 2010/08/3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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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생활을 마치며




시간이 쏜 화살처럼 지나가 버렸다, 는 흔한 말이 너무 와 닿는 요즘입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아득할 것만 같았던 6개월의 반이 훌쩍 건너가더니, 내리막 3개월은 더 쏜살같이 흘러 버렸습니다. 이 후기를 쓰다 말고, 민변 인턴 면접 본다고 사 입었던 단벌 코트를 추억 되새김용으로 꺼내 보았습니다. 요새 날씨에는 너무 덥고 습해서 서둘러 벗어버리고 말았지만은요. 흔한 말이 왜 진리라고들 하는지 알겠더라니까요.

 이 옷을 입고 처음 면접을 보러갔던 그때의 심정은, 그래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류 심사에 합격한 기쁨,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 제 얄팍한(!) 인권 의식이 바닥나는 것은 아닌가에 관한 불안 등등,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었지요. 그러한 마음은 OT를 하고, 정식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느 회사 인턴과도 분명 다를 것이고, 주변에 경험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 더더욱 감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요. 어떠한 작업을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을지, 어떤 사람들과 무엇을 하며 어울릴 수 있을지, 다소 막막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러나,
접힌 장마다 좋은 추억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위원회 소속 간사님, 변호사님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버벅거리며 모니터링 업무를 익혀갔던 첫 3월, 쭈뼛거리며 따라갔음에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4월의 위원회 엠티, 촛불백서 비실명화 작업에 모든 인턴들과 올인했던 5월, 변론상담 업무에 그야말로 땀났던 여름.

 그 밖에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과 인턴들만의 월례회, 여성 단체들과 MBC 방문 및 재판 방청 등,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지요. 리서치 작업에 허덕거리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지, 얼마나 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지를 뼛속까지(?) 깨닫기도 했고, 후견변호사님들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함께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들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처음 생각했던 그림과 달랐던 부분들도 있었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실망스러웠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느끼게 된 이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다시 한번 2월의 그 날로 돌아가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준다면, 주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00% 행복하기만 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이 곳에서 시작하고픈 마음은 200% 진짜니까요.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반년 동안 부대끼며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 모두, 이제 다들 흩어져 저마다의 삶을 열심히 꾸려 나가겠지요.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영 방향이 엇갈려 끝내 멀어져 버릴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좋은 추억은 언제까지나 살아 빛나는 것이니까요. 제 마음 속에 남게 될 그들은, 2010년 봄과 여름을 함께 했던, 영원히 젊은 그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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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 버렸는데, 그다지 많이 나아지지도, 훌륭해지지도 못한 저는 그냥 남아 있습니다. 처음 거창하게 인턴 원서에 썼던 대로 “연수원에 가기 전 유예 기간 동안 민변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그 귀한 경험들을 사회에 나누는 일”을 하기에는 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 시간이 흘러 보다 많은 것을 겪고 배운 후에 - 이번에야말로 진짜 도움 될 수 있는 몫으로, 민변에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저와 4기 인턴 모두에게, 이 곳은 배워서 떠나가는 곳이 아니라,
 끝내 돌아오고 싶은 곳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그 때까지,
잠시만 안녕히 입니다. (__)




- 글 / 여성위원회 이화진 인턴   



2010/08/31 13:50 2010/08/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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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전·충청지부 동정(2010. 8. 30.)




1.  우리 지부 제14차 정기총회 겸 단합대회를 지난 7월 23부터 1박 2일 동안 찬샘마을에서 개최하였고,
    차기 사무처장으로 이상호 회원이 선출되셨습니다. 이상호 신임 사무처장께서는 월례회의 및 번개모임의
    활성화를 통하여 회원 간의 결속력을 높이는데 힘을 쏟겠다고 밝히셨습니다.
 
     대전 동구 직동에 위치하고 있는 찬샘마을은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수변 마을인데,
    특히 마을 뒤 노고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대청호 경관이 일품입니다.
    원래 마을 이름이 노고산에서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피가 내를 이룬 골짜기라고 해 ‘피골`이었던 이곳은 마을 이름에서 오는 거부감을 줄이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찬샘마을`로 마을 이름을 바꾸고 농촌체험마을로 가꾸어 놓은 곳인데요,
    가족단위로 농촌체험을 하기에 딱 좋습니다.


2.  강신관 신입회원께서 올해 연수원을 졸업하시고 6월부터 민주노총 법률원 대전 본부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8월 26일 지부 월례회의에서 강신관 신입회원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는데요,
    전국 회원 변호사님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3.  이종명 회원께서는 주도적인 활동으로
    파산전문 무료상담기관인 ‘민생상담 네트워크 새벽’을 결성하여
    8월 15일부터 파산상담소를 열고 본격적인 업무를 개시하였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무료로 파산신청에서부터 면책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무료로 도와주는 곳은 처음인데요.
    이종명 회원은 금융피해자들의 문제를 개인적 책임의 문제에서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받아들여 주어야 한다고 밝히며
    앞으로 우리 지역사회가 금융피해자들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호소하였습니다.

     민생상담네트워크 새벽
     T. 042-255-9413, 042-285-9413
     카페 (
http://cafe.daum.net/musa0980)
     주소 : 대전 동구 정동 31-9(고려한의원 3층)    



- 글 / 대전충청지부 임태영 간사  



   

 ※ 민생상담네트워크 새벽 홍보전단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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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13:43 2010/08/3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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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과 함께한 민변 8월 월례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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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진심, 좋아한다, 인정한다, 반전, 열림, 몰 나쁜 상식, 공감,
이 단어들이 유머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강의에서 김제동은 나에게, 우리에게
어떻게 사람을 웃게 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누구는 간지럼이라고 답하고 누구는 얼굴이라고 하고
누구는 말이라고 하고 누구는 술이라고도 답했다.

  김제동은 간지럼도 언어도 술도
사람을 웃게 하는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심, 진심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웃게 하기 위한 진심 담긴 유머는
기술이 부족해도 웃긴 것이고, 눈높이를 맞추는 것,
공감을 하는 것 그것이 유머의 기본이라는 말도 했다.
김제동은 누군가를 웃게 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이고
누군가가 웃는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뜻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
사랑이 유머를 있게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한 번도 연결시켜 보지 못한 사랑과 유머가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김제동은 또 웃게 한다는 것은 반전이라고 했다.
 나쁜 상식을 깨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어린 아이들의 예를 들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정답' 대신 '가 본다'라는 답을 적는 아이,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 라는 '정답' 대신 '봄'이 된다 라는 답을 적는 아이.
 그 아이들은 나쁜 상식이 없는 몰상식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바로 본 어머니가 못 생겼다고 우는 아이는 없다는 이야기,
참석자들의 공감 가득한 박수를 받았던 '꽃미남'에 대한 성토(?) 등으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열린 사고와 마음,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열린 눈으로 보는 것, 기존의 가치와는 다른 생각을 해 보는 것,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유머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변혁과 유머는 또한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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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동은 웃는 것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 얘기했다.
지하철에서 신문 넓게 펼치고 읽는 사람 옆에서 해맑게 웃고 비좁은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보며 배시시 웃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미친 사람인 줄 알고) 떠나줄 것이라는 얘기. 농담처럼 한 이야기이지만
김제동이 하려는 말은 유머가 가진 '사람과의 소통의 힘',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머는 tv 개그콘서트나 토크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어디에나 있고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는 유효한 수단이라는 깨달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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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동은 강의를 마치면서
홀로 앞서 나가는 것보다 함께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비가 올 때 비를 같이 맞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김제동이 하고 싶었던 말은 유머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꾸는 아이 같은 마음이며,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효한 도구라는 것 아니었을까.

 오늘은 개그를 유머를 가볍게만 봤던 것을 반성할 일이다.
유머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같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고, 살면서 유머감각을 잃지 않도록 경계할 날이다.





 - 글 /  조현주 변호사 




 

2010/08/31 13:36 2010/08/3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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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단속에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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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0을 빌미로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단속에 항의하며 지난 7월 17일부터 명동 향린교회에서 농성을 진행하였던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MTU)은 지난 8월 28일, 40여 일간의 농성을 정리하는 해단식을 가졌다.

 이주노조의 농성과 더불어 이주노조의 미셸위원장도 30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단속에 항의하였다.

 이번 이주노조의 농성과 미셸위원장의 단식농성으로 정부의 화려한 치장과 선전 속에 가리어졌던 G20의 어두운 측면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적법절차도 지키지 않은 단속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국각지에서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불심검문, 야간과 새벽 단속, 공장과 주거지에 대한 무단침입, 심지어 출입국 직원에 의한 폭행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민변 노동위원회에서 이러한 이주노조의 농성에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7월 26일 권영국 노동위원장, 윤지영 노동위원회 이주노동팀장을 비롯한 변호사와 인턴들이 지지방문과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주문제에 관심 있는 인턴들을 중심으로 ‘단속추방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고 이주노조 위원장과 현재의 이주노동자 단속 사례 및 문제점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한편 고용허가제(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도입 6년을 맞아 지난 8월 17일에는 외노협, 이주인권연대 등 이주노동관련 각 단체에서는 ‘고용허가제 도입 6년 평가토론회’ 및 ‘고용허가제 노동권침해실태발표 및 사업장이동제한 철폐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현재 고용허가제하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침해와 이들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비판적 논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주심 윤지영 변호사)에서 진행 중이던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여 10월 14일(목)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기일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헌법소원은  ‘구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2008. 2. 29. 법률 제8852호로 개정되고, 2009. 10. 9. 법률 제979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5조 제4항 및 동법 시행령 제30조 제2항, 그리고 법 개정이후의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2009. 10. 9. 법률 제9798호) 제25조 제4항 동법 시행령 제30조 제2항이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제32조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취지에서 제기하였다.

 개정법 제25조 제4항은 ‘제1항에 따른 외국인근로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변경은  제18조 제1항에 따른 기간 중에는 원칙적으로 3회를 초과할 수 없으며, 제18조의2 제1항에 따라 연장된 기간 중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규정이다. 즉 이번 헌법소원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 횟수(3회) 제한’을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조항임을 확인하는 헌법소송이다.

 민변 노동위원회 이주노동팀에서는 이번 헌법소원 공개변론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라 판단하여, 이주노동팀 소속 변호사들도 본 소송의 대리인으로 합류하기로 결정하였고,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때까지 역할을 나누어 변론 준비를 할 예정이다. 또한 이주노동관련 제 단체들과 연대하여 고용허가제로 인해 노동권을 침해받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려 나갈 계획이다.



 

- 정리 / 민변 노동위원회 전명훈 간사



 

2010/08/31 13:32 2010/08/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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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의 8888 민주항쟁과
총선을 앞둔 지금 이 항쟁이 갖는 의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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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쟁 개요


 8888 민주항쟁은 1988년에 일어난 버마의 항쟁으로, 8월 8일에 시작하였기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1962년 네윈 (Ne Win) 장군의 쿠데타 이후 26년째 BSPP (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 버마사회주의계획당)로 대표되는 군사 정부가 중앙통제를 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업이 국영화 되어있었다. 특히 전문적 지식보다는 미신에 근거하는 통화정책이 많은 시민들의 불행을 불렀다.

 8888 민주항쟁은 랑군 (Rangoon)에서 대학생들이 벌인 반군부 평화시위로 시작하여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도 번졌고, 머지 않아 수도승, 어린 아이들, 주부, 의사 등의 시민들이 동참을 하였다. SLORC (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는 항쟁이 진행되는 와중 군사 쿠데타를 벌였고 신군부를 형성하였다. 신군부의 항쟁 진압과정에서 몇 천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결국 8888 민주항쟁은 9월 18일 막을 내렸다.

 8888 민주항쟁을 통해 아웅산 수지 (Daw Aung San Suu Kyi) 여사가 버마의 소수민족 지도자로서 떠올랐다. 항쟁 2년 후 치러진 1990 총선에서 그녀는 수상으로 선출되었고 그녀의 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민족민주동맹) 정당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군사 정부는 총선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그녀를 자택감금 하였으며 2천여 명을 정치범으로 체포하였다. 그녀는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택에 감금이 되어있고 2010년 말에 치러질 예정인 총선에 그녀를 포함한 2천여 명 정치범의 참여가 금지되어있다.




민주항쟁 배경


미신에 근거한 통화정책

 8888 항쟁이 시작할 당시 버마는 35억 달러의 빚에 시달리고 있었고, 불안정한 경제정책에 의하여 흔들리고 있었다. 경제 문제 해결과 반란 방지라는 명목 하에 군부는 1985년 11월 일부 통용지폐를 회수한다고 발표하였다. 네윈은 점술가의 말에 따라 숫자 ‘9’가 운이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 미신을 정책에 반영하였고, 1987년 9월 5일 통용지폐 중 100, 75, 35, 25 카얏 (kyat) 지폐를 회수하였으며 숫자 9의 배수인 45와 90 카얏 만 유지시켰다.

 이 정책에 의해 특히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기 위해 저축해 놓은 돈을 잃게 되었고, RIT (Rangoon Institute of Technology, 랑군 공과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이들은 시위를 하기 시작하였다. 랑군의 대학들은 문을 일시적으로 닫았고 10월 말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 이후 시위는 계속되었으며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전단지를 나눠주고, 경찰에 협박편지를 보냈으며, 폭탄까지 동원하였다.


농촌에서의 항쟁

 1987년 12월, 군부는 UN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저개발국 지위를 따낸 후 농작물을 시장가격 이하로 팔게끔 하여 정부의 이익을 챙기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농촌에서 수 차례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아웅 지 전 준장 (former General Brigadier Aung Gyi)은 네윈에게 경제 상황을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후 체포되었다.


랑군에서 전국으로

 1988년 3월 12일, 랑곤의 한 대학가 찻집에서 RIT학생들과 외부학생들과의 작은 싸움이 벌어져서 경찰에 개입하게 되었다. 외부학생들 중 한 명은 BSPP 공직자의 아들이었고, 이는 곧 풀려났다. RIT학생들은 이런 차별 대우에 맞서 경찰서에서 시위를 하였고 500명의 경찰이 동원된 진압과정에서 한 학생, 폰 마우 (Phone Maw)가 총살 당하였다. 학생들은 경찰의 무자비함, 경제 파탄과 정부 부패에 더욱 분개하여 시위를 적극적으로 진행시켰다. 이 시위들은 곧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학생뿐만 아닌 일반 시민들도 가담을 하였다.

 1988년 6월에는 시위가 일반적인 광경이 되었다. 대학들은 일시적으로 문을 닫고 랑군 뿐만 아닌 만달레이, 페구 등의 도시도 시위에 휩싸였다. 운동가들은 다당 민주제를 위해 시위를 펼쳤고 결국 1988년 7월 23일, 26년간 버마를 통치해온 네윈이 사표를 냈다. 그는 시민들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키기 위해 다당제를 약속했지만, 새 정부 대표로 “랑군의 도살자”라 불리는 세인 르윈을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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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진행 과정


본격적인 항쟁의 전개

 르윈의 임명소식이 전국에 퍼지면서 도시마다 지하 저항 운동이 생겨났다. 이 운동들은 1980년대 노동자들과 수도승들이 진행하던 지하 운동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8월 초, 랑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체계적 시위가 시작되었다. 버마학생조합 (All-Burma Students Union, ABSU)의 상징이었던 ‘싸우는 공작새 (fighting peacock)’는 항쟁의 상징이 되어 전국에 붉은 물결을 일으켰고, 동시다발적인 행진이 진행되었으며, 저항신문이 출판되었다. 특히 랑군에서는 네윈과 르윈의 석상을 태우고 이를 관에, 회수된 지폐들과 함께 넣어 땅에 묻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8월 3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5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였다.

 8월 8일, 소수민족, 불교인, 무슬림, 학생, 노동자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본격적인 항쟁에 참여하였다. 사람들은 랑군 시내로 결집하였고 그 곳에는 무대가 세워졌다. 특히 주변 농촌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본 농부들이 랑군에 모여들었다. 한 지역에서는 5000명의 인구 중 2000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군인들의 장화에 입술을 대며, 이들을 시위에 참여하게끔 설득시켰고 설득된 이들은 직접 참여하거나 다른 군인들의 주변을 돌며 이들이 시민들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였다. 랑군과 달리 만달레이에서는 변호사들이 주최하는 좀 더 체계적인 운동이 벌어졌고 이들은 다당민주제와 인권에 대하여 논하였다.


사격의 시작

 랑군에서는 얼마 있지 않아 군사들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도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던 네윈은 군인들에게 “총을 위로 쏘지 말라 (guns were not to shoot upwards)”라고 지시하였다. 시위대는 칵테일, 칼, 돌, 독을 묻힌 다트 등을 군사들에게 던졌다. 이들은 경찰서에 불을 질렀고 군사들은 시위자들이 치료받던 랑군종합병원을 향하여 총을 쏘았다. 정부에서는 시위단을 “약탈자들과 looters and disturbance makers”로 표현하였다.


르윈의 사퇴

 8월 12일 르윈은 급작스레 사퇴했다. 많은 사람들은 환희 했지만 동시에 혼란스러워했다. 군인들은 진압과정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시위단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에서는 더욱 그리했다. 군부 대신의 민간인 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의 압력에 결국 8월 19일, 네윈의 전기 작가로 활동했던 므앙므앙 (Dr. Maung Maung)이 버마의 일곱 번째 지도자로 선택되었다. 그는 BSPP에서 일한 유일한 민간인이었고, 이 결정 후 한 동안 시위는 줄어들었다.





- 글 / 국제연대위원회  김지슬 인턴 







   [ 참조 사이트 ]

http://ko.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
http://www.nldla.or.kr/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926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100808000710&subctg1=&subctg2=
http://cafe.naver.com/amnesty2n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96
http://www.istockanalyst.com/article/viewiStockNews/articleid/4387734
http://www.scottmurray.com/Burma.htm

   [ 이미지 출처 - http://www.yorkvision.co.uk/features/student-activist-to-political-prisoner ]


2010/08/31 12:51 2010/08/3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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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집행위원회 엠티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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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0일, 21일 강화도 별마당에서
민변 집행위원회 엠티가 열렸습니다.

23차년도 집행부가 꾸려지고
처음으로 가는 엠티여서 그런지,
대부분의 집행위원회 위원분들이 참석을 해주셔서
민변에 중요한 현안과 장기과제들을 중심으로
열띤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8월 20일(금) 저녁 6시, 생각보다는 막히지 않는 도로를 따라
집행위원회 위원분들이 하나둘씩 엠티 장소인 도착을 하였고,
준비된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한 후
저녁 7시 30분 부터 본격적인 안건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 첫번째 안건으로는 민변 사무처 변론팀에서 준비한 "변론자료 DB화 기획안 검토"안건을 논의하였는데,
  이에 대해 회원들의 정보제공·공유·축적을 목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그 다음 안건으로 "민변 회원회비개선안 검토"안건을 논의하였고,
   이에 대해 특별회원에 대하여 3만원과 5만원으로 하는 2가지 안으로 재논의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 가장 길게 논의가 되었던 "민변 재정 개선방향"안건에 대해서는
   후원회원제도와 재정개선 방향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이 되었는데,
   민변 재정상황에 대한 현실을 공유하고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안건이라 판단되어
   차후 집행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습니다.

- "로스쿨특별회원 관리"에 대한 안건은
   아직 특별회원제도 시행이 1년이 지나지 않는 시점이기에 평가를 유보하여 제도 시행을 더 유지하고,
   로스쿨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및 MOU 체결대학 점검을 과제로 남겼습니다.

- 마지막으로 "G20 서울정상회담 대응 준비"안건에 대해서는
  민변의 독자적인 법률지원단(인권침해감시단)을 운용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뒤풀이는 강화도 모기와 오랜 시간 함께하여
 바닷가 모기가 왜 그렇게 악명이 높은지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T.,T


 거의 3시간 30분을 넘기는 시간동안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마지막 안건을 제외하고 다른 안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각 사안에 대한 시급성과 필요성을 공유하고 각자의 의견들을 타진하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다양하고 풍성한 논의가 있었던 만큼
후반기 민변 활동 역시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정리 / 이동화 간사      


2010/08/31 11:41 2010/08/3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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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 인턴 선발 완료 & 4기 인턴 수료식 안내





 민변에서 2010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6개월간 활동할 5기 인턴 선발이 완료되었습니다.
총 20명의 인턴이 국제연대위원회, 출판홍보팀, 노동위원회, 미군문제위원회/통일위원회,
여성인권위원회, 환경위원회, 소수자인권위원회(준), 상담 및 변론지원팀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9. 3.(금)-9.4.(토), 1박 2일간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위치한
<천생연분마을 정보화센터>에서 인턴 전체 OT가 진행
될 예정입니다.


5기 인턴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동시에 2010년 3월부터 8월까지 활동한 4기 인턴의 활동이 마무리됩니다.

4기 인턴들은 활동을 마무리하며 8. 29(일)-8.30(월) 양일간 강원도 춘천으로 엠티를 떠납니다.
그 후 8. 31(화) 6시에 민변에서 4기 인턴 수료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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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 출판홍보팀  박초롱 인턴 


 

2010/08/25 14:29 2010/08/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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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직원의 국세청장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무죄판결1




 2009. 5.경 나주세무서 직원 김○○씨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국세청 내부통신망에 올렸는데, 이로 인해 조직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검찰에 고발되었습니다. 검찰은 2009. 12. 28. 김○○씨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김○○씨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때부터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변론해왔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2010. 5. 12. ‘김○○씨가 게재한 글이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고, 허위사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한 다음, ‘김○○씨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였지만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평가하여 벌금 70만원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인 광주지방법원 제6형사부(재판장 이성복 부장판사)는 2010. 8. 10. 김○○씨가 게재한 글이 허위사실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서 비방의 목적도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항소심의 무죄판결은, 전 국세청장으로서 공적 인물인 한상률씨에 대한 비판적 표현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의해 허용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리하게 고발하고 나아가 파면까지 한 국세청의 행위와 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은 검찰의 기소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와 문화방송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공소제기와 마찬가지로,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비판적 표현행위자를 수사를 통해 일정기간 겁주고 위협하는 것이 가능한 우리사회의 비민주적인 일면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해 주었습니다. 부디 검찰과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김○○씨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세청으로부터 파면처분을 받은 다음 소청심사절차(해임처분을 감경)를 거쳐 현재 광주지방법원 행정부에서 해임처분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무죄판결은 당초 국세청이 주장한 징계원인사실이 진실이 아님을 확인하여 준 것이므로 국세청은 법원의 판결이 선고되기 이전에 반성적 차원에서 스스로 김○○씨에 대한 해임처분을 취소하여야 할 것입니다.





- 글 / 민변 변론팀    




※ 판결문 보기




※ 민변 광주전남지부의 환영논평 보기





  1. 이 소개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의 환영 논평'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Back]
2010/08/17 13:36 2010/08/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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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보 고공농성장 지지 방문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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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9일, 이포보 위에서 4대강 공사 중단을 위한 고공농성중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을 지지하기 위해, 민변을 대표하여 김칠준, 서선영, 송상교, 조숙현 변호사와 어중선, 유현경 상근간사가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야당의원들은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는 플랭카드를 펼치고 이포보 위에서 8일째 농성중인 활동가들에게 부족한 식량과 물품을 전달하려고 하였으나, 경찰과 공사업체가 전혀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각 단체와 시민 200여명이 모여 ‘4대강 검증특위’와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습니다. 법정 홍수기에도 공사를 강행하면서 여론 수렴이 아닌 사업 홍보만 늘리고 있는 정부와는, 대화하는 것조차 정말 힘이 듭니다. 이포보와 함안보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무사 귀환을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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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날, 집회장소보다 10도는 더 뜨겁다는 보 위의 활동가들을, 그저 멀리서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성으로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거리행진을 하였습니다. 찬성 측 주민들이 건너편에서 귀에 담고 있기 힘든 욕설을 뿌려댔지만, 저들 역시 4대강 사업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사회를 두 동강이 내고 평생해도 못할 만큼의 욕설을 하는 것이 행복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포보 공사현장은, 활동가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지만 상관없다는 듯 공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현장을 방문하고 활동가들을 만난 원희룡 의원은 ‘공사 관계자들이 말하길, 저 보 위에 올라간 것이 별로 공사엔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는 공사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업체는, 보 위의 활동가들에게 ‘공사장퇴거및공사방해가처분신청’을 통해 하루에 5백만원씩의 비용을 청구하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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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구린 점이 있는지 대화만 하자고 해도 무시하고 억압하는 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정부가 맞는지 답답한 마음이 앞섭니다. 촛불집회 때 명박산성을 쌓았고, 촛불국면의 탈출용 사과 이후 촛불을 비난하던 모습에서 이 정권의 사오정 정치를 알아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4대강 공사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화에 응하기를 바랍니다. 공사 잠시 중단하고 대화로 풀어갑시다. 고공농성 등을 과격한 방법이라 비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화 좀 하자는데 국민의 입을 막아서고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하겠습니까.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드리는 것보다 정권에 대한 질타와 요구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4대강 공사 중단을 위한 활동들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정권은 거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포보, 함안보의 활동가들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묵살하고 나면, 또 다른 더 심한 활동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이제는 제발, 대화에 응하기를 바래봅니다.





- 글 / 환경위원회 어중선 간사       


 

2010/08/17 13:13 2010/08/1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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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에 새 집행부가 출범한지 벌써 석 달이 되어간다.
  새로운 집행부가 돋보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민변 최초로 여성사무총장이 취임했다'는 점일 것이다.

  서글서글한 외모와 부드러운 화법이 편안함을 주지만
  일처리는 깐깐하다고 알려져 있는 정연순 변호사,
  민변의 새로운 사무총장을 만나 '민변'과 '변호사'로서의 '개인사'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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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변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



- 민변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제가 연수생일 때 법무법인 ‘덕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만난 선배님들이  이돈명, 최병모 변호사님 같은 대선배님들과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변호사님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었죠.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변호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요,
그분들이 모두 민변 회원들이셨기 때문에 변호사 되는 것과 민변가입은 완전히 동일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웃음)


- 여성위원회에서도 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 여성위원회가 모범위원회로 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건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후배들이 잘해준 덕분이에요. 김진, 이상희, 이정희 변호사 등 후배들이 정말 활발하고 모범적인 활동을 해주었거든요. 저는 살아오면서 늘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운이 좋았던 거죠.


- 벌써 사무총장하신 지 두 달 반이 지났습니다. 느끼신 점이 있다면요?

 총장으로 일해 보니 민변이 정말로 사회각계각층으로부터 많은 일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 일을 다 어떻게 해내지 하면 또 회원 분들이 마다하지 않고 다 맡아서 잘 처리해줘서 총장으로 일하는 것이 처음 생각보다는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회비만으로는 지금 사업들을 적절하게 수행하기에는 좀 모자라요. 전임 집행부가 발전기금을 넉넉히 마련해줘서, 그 일부를 예산에 전용하고 있는데요, 남아있는 기금과 소진속도를 보면 제가 일하는 기간 동안은 괜찮을 것 같은데, 곳간을 비워놓고 나가면 안 되니까, 자나 깨나 돈 걱정을 하고 있는 게 하나입니다.(웃음)
 마지막으로는 여러 사정 때문에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결합 못하시는 회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가는 과제인데요,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계속 닥쳐오는 시급한 일들에 급급해서 이를 어쩌나 하고 있지요. 


- 회원들께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회원들에게 어떤 불만이나 요청이 있지는 않아요, 집행부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해드릴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회원들이 사무처에서 마련한 월례회 등의 전체 모임에 시간을 내서 꼭 참여하셨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지금 변호사 업계가 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지요. 우리 모임에는 관록 있는 선배들도 계시고, 달라진 상황에서 고생하고 있는 젊은 후배들도 많습니다. 서로가 변호사로서 공통으로 가지는 애환이랄까. 어려움도 있고 서로 다른 고민도 있는데요, 시간되면 이런 모임에 나오셔서 선후배간에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고 다독이며 힘을 얻어가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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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본부장


- 총장님 경력을 보면 2006년부터 2년 반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을 하셨는데요.

 네, ‘전무후무한 차별시정본부장’입니다.(웃음) 2006년에 차별시정본부가 만들어지면서 제가 들어갔는데, 제가 나온 뒤로 인권위가 축소되면서 차별시정본부가 없어져서 조사국으로 통합되었지요. 제가 일하는 시기에, 비록 국회에서 통과되진 못했지만 ‘차별금지법’ 안이 만들어졌고, ‘장애인 차별금지법’과 ‘연령 차별금지법’은 제정, 발효되었지요. 지금 정권에서 반차별운동이 좀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른 나중에 돌이켜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역사의 획을 그은 시기라고 평가될 그 때에 관련 기관에서 일할 수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매우 보람 있고 뜻 깊습니다.


- 민변에서도 얼마 전부터 ‘(가)소수자인권위원회’의 발족을 위한 준비모임이 만들어졌죠?

 소수자 인권의 문제는 그 바탕에 ‘사회적 차별’이라는 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민변이 전통적으로 ‘시민의 정치적 권리’ 쪽을 옹호하다 보니, 사회적 차별 시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좀 적었고, 회원들의 개별적 활동들은 있으되 조직의 활동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행부의 출범과 함께 그동안 개별적 활동을 해오시던 회원들이 모여 ‘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역시 저는 운이 좋은 편이죠, 가만있는데 이렇게 일을 하겠다고 나서주는 회원들이 있어요(웃음) 정말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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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호사 정연순


- 여성변호사의 수가 많지 않을 때에 변호사를 시작했는데요, 왜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셨나요?

 대학에 다닐 때가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이라 뭐, 데모하러 다니고 수업거부에 시험거부 하다 보니 학업에 소홀해져서 학점이 안 좋았어요.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4학년이 되었는데, 정말 졸업하면 어디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내밀 수 있는 학점도 못 되어서요, 그래서 ‘에이,  사법시험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시험을 봤는데요. 다행히 그리 늦지 않게 합격했어요. 역시 운이 좋았죠. 시험 준비 과정에서 딱 한번 왜 법조인을 하려고 했을까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사회적 이슈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일로써 공헌할 수 있는 직업이라 만족합니다.  


- 업무의 질로 평가받아야 하는 전문직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개척을 해나가고 계신 ‘언니그룹’이신데,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려요.

 대부분이 ‘가정’과 ‘사회적 평가’, 두 가지를 다 성취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데, 정말 힘들어요. 남자들은 대부분 하나를 내조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는 ‘마누라’는 없고 ‘남편’만 있으니까요.(웃음) 두 과제를 양립시키는 게 고통스럽죠. 저도 힘들게 겪어왔고, 그렇게 살아가는 후배들을 보면 안쓰럽지요. 남성들과 동등한 사회적 평가를 받기 위해서 가진 능력 100을 50:50으로 배분하는 게 아니라 더 쥐어짜서 130이나 150을 해야 겨우 동등하거나 따라가는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언니들이 그렇게 살아왔으니 후배들 너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한국사회가, 남성들 역시도 너무 ‘과잉사회화’되어 있거든요,  ‘근로시간을 줄이고 가정과 사회가 양립 가능한 사회’로 만드는 것은 남성과 여성, 우리 모두의 과제에요. 더구나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에 충실한 게 사회적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고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임을 저도 알기에, 그걸 버리고 사회적 요청에만 헌신하기를 요구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뭐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오른 여성들의 경우에는, 책임의식이나 책무를 조금 더 강하게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이 스스로 잘나서 거기까지 온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여성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 사회적 비용,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거든요. 그 여성들은 자신들이 쌓아온 자산을 그 구성원들을 위해 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장기적으로 한 개인의 삶에서 가정과 사회가 양립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것과는 별도로,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선도적이고 좀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 여성들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문제제기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하고 롤모델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후배들을 보면 그 역할을 요구받을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까, 만나면 자꾸 어떻게든 130, 150을 해보라고 닦달하니까, 후배들이 저보고 깐깐하다고 하나 봐요(웃음).. 너무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 굉장히 많은 사건들을 맡고 계시고 또 맡아 오신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사건을 말씀해주세요.

 변호사 경력이 이쯤 되면 누구나 가슴에 두는 사건들은 많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성매매 여성이 포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해서 결혼까지 해서 살다가 추적해 온 포주에 의해 차용금 사기로 고소당한 사건을 무료변론 해준 적이 있어요. 3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정말 힘겹게 재판을 해서 항소심에 가서야  무죄를 받았는데요, 처음 시작했을 때 뱃속에 있던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재판정에 데리고 오가면서 겨우 무죄를 받았지요. 나중에 후배들이 그 변론기록을 참고로 성매매여성들을 위한 변론매뉴얼도 만들었고, 그 여성분뿐만 아니라 한 아이와 남편까지 ‘한 가정’을 끝내 지켜냈다’는 점에서, 지금 생각해도 뿌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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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적인 이야기


- 남편분이 백승헌 전임회장이신데,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것에 있어 어떤 부담감이 있나요?

 총장직을 수락하기까지는 솔직히 부담스러웠어요.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전혀 그런 건 없고, 오히려 가까이에 있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그럽니다. 다만 그럴 경우 자꾸 이야기가 길어져서, 저희 집에서 ‘민변’은 ‘금칙어’ 처리된 상태입니다.(웃음)


- 저 역시도 정연순 변호사님의 차기 총장 내정 소식을 듣고,  세습 의혹을 제기한 사람인데요.
  의혹을 해소해주십시오.(웃음)

 
민변의 회장직은 선출직입니다. 그러나 하시겠다고 적극 나서시는 분들이 없어서 경선을 한번도 못해보고 전임회장이 회장후보자를 섭외해두고 나가긴 하지만, 나머지 집행부 임원은 전적으로 신임회장이 결정하지요. 그런데 김선수 회장님이요, 딱 던져 놓고서는 다른 가능성도 전혀 타진해 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시는 그 수에 결국 성질 급한 제가 말려서 그만 수락을 하게 되었는데요(웃음). 회장직이면 모를까, 총장직은 전임회장이 관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점은 세간의 오해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많은 기혼 여성분들이 ‘여성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로 취급받는 일이 많습니다. 
  정연순 총장님은 특히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시다보니 특히 그런 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남편이 저보다 8년 선배예요. 출발할 때부터 그 사무실의 선배였고, 민변에 들어와 봤더니 또 민변의 창립멤버였습니다. 관계 자체가, 좀 불리했죠(웃음). 사회적 명망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정연순 변호사’보다 ‘백승헌의 아내’로 불린 경우가 꽤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8년 선배랑 맞먹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이상했던 거죠. 반대로 제가 8년 선배였으면 ‘백승헌 변호사’가 ‘정연순의 남편’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게 그때에는 ‘여성적 문제의식’과 결합되어서 잘 극복이 안 되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은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이 아닌데도 상처를 받은 적이 꽤 있었어요. 이제는 후덕한 아줌마가 되었고, 유학도 가서 좀 떨어져도 지내고 3년 가까이 인권위 활동을 하며, 다른 커리어와 네트워크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었지요. 


- 지난번에 백 변호사님이 인터뷰에서 “대부분은 제가 정 변호사에게 도움을 줬다고들
  생각하는데, 역으로 저는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었죠. 저희 부부는 변호사로서도 오랜 기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 왔는데요, 그래서 서로가 지루해 하지 않을까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둘 다 지적 탐구욕이 많아서요. 변호사라는 직업과 그런 특성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잡지에서 ‘공명’에 관한 글을 봤는데, 사람마다 특정 주파수가 있고, 그 주파수가 잘 맞는 사람끼리는 인간관계가 굉장히 편안하다고 해요. 남편과 저는 주파수가 비교적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이해력이 빠르고, 쟁점을 정확히 보고자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논리적 사고방식에서요.


- 변호사 업무에, 민변 총장직에, 그리고 얼마 전까지 학업도 같이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많은 일들을 소화해내고 계시는 동력이 뭔가요?

 글쎄요. 아마도 첫 번째는 제가 호기심에, 유약한 마음에 여러 일을 맡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구요. 다만 그 일들을 어찌 해나가느냐는 질문에는 꼭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범생이로 자라며 한 번도 부모님을 실망시켜본 적이 없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부모님의 기대와 어긋난 일을 하고 심지어 부모님을 속이고 다녔거든요. 그때부터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은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힘이 부칠 때가 없지는 않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라도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해요. 이왕이면 재밌게, 즐겁게..  이런 마음자세를 아침마다 외워 보곤 합니다.


- 두 아이의 엄마시라고 들었습니다.
  아이들, 혹은 인생의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제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마치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유치하게도, 동일한 시험을 치르고 비슷한 성적으로 들어와 대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 뒤에도 비슷한 인생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25년이 지나 보니 너무들 달라져 있더군요. 심지어는 19년 전에 사법연수원에 같이 들어간 동기들도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요. 무엇이, 어디서 그 차이가 벌어졌을까, 곰곰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딸과 아들이 있는데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를 늘 성찰할 수 있고, 주체적으로 결정해 나가면서 나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 이상은 없어요. 지금 아이들을 보면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라서 그게 안타깝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삶이 가능한 사회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인터뷰 / 출판홍보팀 김란아 인턴  




 

2010/08/17 13:09 2010/08/1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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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라 올라 본 함안보




 부끄럽게도 이 사건 전에는 4대강 공사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게 말 많고 탈 많은 ‘함안보’가 제가 사는 곳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창원-그래도 지방 도시치고는 큰 편에 속하는 곳입니다-, ‘함안보’는 함안 어디쯤 아주 시골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지난 7월 마지막 날 가본 함안보는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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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은 원래, 함안보에 올라가 있는 활동가 2분(이환문, 최수영)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있어, 의사선생님 2분이 인도적 차원의 진료활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활동가 두 분의 변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의사선생님들과 함께 경찰의 인도(?)에 따라 함안보 공사 현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함안보 공사 현장은 마치 요새 같았습니다. 공사 현장은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높은 펜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반인들이 다니는 길가에서는 활동가 2분이 올라가 있는 크레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그 높은 철책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규모의 함안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공사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섬처럼 서있는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활동가 두 분은 사실상 감금상태였습니다. 크레인 주변으로는 언제든지 연행이나 작전이 가능할 정도의 경찰력이 대기상태로 있었습니다. 가물막이 공사가 끝난 위로 경찰 지휘 본부가 있었습니다. 차로 가물막이 위를 달려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도 저는 제가 밟고 지나가는 그 넓은 곳이 가물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얼핏 대학 때 가본 춘천댐 위를 지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사현장의 규모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경찰과 실랑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과 저의 안전을 위해 경찰이 함께 크레인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 경찰이 내건 진료 조건이었습니다. 크레인 위에 계신 분들은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경찰이 올라온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활동가분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크레인은 겨우 한명이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사다리로 40여 미터를 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을 의사 선생님 2분과 저 그리고 경찰이 오르게 되면 그것이 더 위험한 것 아닌가, 경찰이 대동한다고 해서 더 확보되는 안전이 무엇이 있는가, 변호인과의 접견 교통권을 침해하는 것인가 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경찰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고 크레인 위의 활동가 2명이 저희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저와 의사 선생님들이 크레인에 오르는 것까지 경찰이 감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날은 너무 더운 날이었습니다. 그늘 하나 없는 공사장 한가운데에서 경찰과 1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의사선생님 2분이 진료를 하시는 동안은 경찰이 함께하는 것으로 하고, 제가 활동가분들을 만나는 동안은 경찰이 크레인 아래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절충이 되어, 먼저 의사 선생님들이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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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인 아래에 도착해서 위를 올려다보니 크레인은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이어진 것처럼 높아보였습니다. 저희는 사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꼭대기까지 오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활동가 두 분이 크레인 중간지점까지 내려오신 덕에 수월하게 진료와 접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의 진료가 끝나기까지 내리쬐는 여름 볕 아래서 기다리기를 40여분. 막상 제가 올라갈 때가 되자 저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활동가 두 분이 그날까지 10일 동안 어떻게 그곳에서 버티신 건지(그동안 심한 폭우와 비바람도 지나갔었습니다) 경이로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래도 크레인에 올라 이환문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님을 만나 민사 가처분(건설회사 측에서 활동가 2분을 상대로 크레인에서 내려올 것을 청구하면서 1일 2,000만원의 간접강제금을 신청하였음)과 형사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위에서 보니 주위의 고즈넉한 풍광과 함안보 공사 현장이 너무도 대비를 이루어 절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결국 몸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것이 많았습니다. 그 곳을 몰랐던 것도 부끄러웠고, 말이 아닌 행색으로 10일 동안 공사장 밖에서 천막을 치고 크레인 위의 분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계시던 시민단체 분들을 보기도 부끄러웠고,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그 곳에 있는 동안 찾기도 어려운 시민단체의 천막 농성장을 직접 찾아와 격려를 해 주신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천막 아래로 그 분들을 모시면서 어떻게 오신 것이냐고 물으니 그냥 평범한 시민이고 와 봐야할 것 같아 왔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대목에서도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두 분의 활동가를 위해서 크레인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해 올라야만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뒤로 크레인 명도 단행 가처분 심문이 있었고, 두 분이 크레인에서 내려오신 후 체포되어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있었습니다. 민변 경남지부 변호사님들과 부산의 강동규, 변영철 변호사님과 함께 열심히 변론을 하였습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구속영장은 기각되어 지난 8월 13일 두 분 모두 풀려나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유한한 권력은 언젠가 그 끝을 볼 것이며, 오늘의 이 현장도 모두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심판에서 조금은 떳떳하고자 오늘도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 글 / 박미혜 변호사      




 

2010/08/16 11:28 2010/08/1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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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천안함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이자 前 민관합동 조사단 조사위원의 강연을 듣던 중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지난 8월 10일(수) 저녁 민변에서는 약 2시간 30분에 걸쳐 신상철대표의 "천안함의 진실"이라는 초청강연회를 열었다. 이 강연회의 취지는 지난 5월 20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민군합동조사단의 진상조사결과 발표가 있었고, 6월 10일에는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가 있었으나, 정부의 발표는 천안함 사건에 관한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켰을 뿐이다. 많은 국민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정부는 정부의 발표를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들을 친북좌파, 비(非)국민으로 매도하며 동해와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진행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최고도로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민변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정보공개청구 소송, 검찰의 부당한 수사와 기소에 대응한 변론을 하고 있으며, 그 활동의 일환으로 천안함 침몰이후 민군합동조사단 일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신상철대표에 의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견을 경청하기 위하여 자리를 마련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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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대표는 준비된 PPT를 통하여 약 1시간 30분가량 강연을 진행하였고, 내용마다 기존에 발표된 조사단의 발표와 국방부의 추가발표등과 정면으로 배치되거나 시작부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용을 듣는 내내 다소 충격적이지만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다만 신상철대표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지만 이 역시 또 하나의 추정이기에 이에 증명할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은 주장의 한계이자 이 천안함 사건이 가지고 있는 해결의 열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신상철대표의 강연은 그 자체로 완결되었다기 보다는 민변에게 하나의 중요한 논리와 주장을 제시한 것이고 천안함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민변이 계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신상철 대표의 강연내용은
첨부된 자료를 통하여 알 수 있다.
 
2010/08/16 11:22 2010/08/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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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2009 노동판례비평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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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노동판례비평』, 민변 노동위원회 편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간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서 『2009 노동판례비평』(제14호, 가격 15,000원)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번 노동판례비평에서는 2009년 노동판결례에 대한 분석 및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방법」등
    총 10개의 주요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결례에 대한 평석이 실렸습니다.

○ 노동판례비평은 노동법을 연구하는 학자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노동법 실무를 진행하는 변호사, 노무사, 노동조합 및
    단체의 노동법규 담당자 등 실무 활동가들이 최근 대법원의 노동판결례 동향 및 문제점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해설되어 있습니다.

○ 『2009 노동판례비평』의 구입에 관련된 문의는 민변 사무처(T. 02-522-7284)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정부의 사용자 편향적인 노동정책과
노조전임자 타임오프제 시행을 계기로 한 사용자들의 노동조합 개입 증대 등으로
노동권 신장과 올바른 노동법 판례를 형성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한순간 수포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희망도 봅니다…지난 6. 2. 지방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이 ‘막가파식’ 독점권력에 대해서
견제를 선택하듯이 언제까지나 일부 계층에 경도된 친기업 노동정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자 제안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시대를 위한 희망을 다시 꿈꾸자고 말입니다.”

                                   - 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 권영국, 『2009 노동판례비평 발간사』중에서.



        ▶ 2009 노동판례비평 목차 ◀
 

제1부  2009년 노동판례 분석
․ 2009년 대법원 노동판결례 모음            
․ 2009년 대법원 노동판결례 개괄 / 강기탁

제2부  주요 판례 평석
․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방법 / 강성태
․ 인사고과와 부당노동행위 / 김태욱
․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과 집단적 동의 / 박수근
․ 노동조합 전임운용권과 권리남용 / 전형배
․ 특수경비원 쟁의행위 금지의 위헌성 / 강호민
․ 경영상 휴직의 정당성 여부 / 정병욱
․ 산별노조지회의 쟁의행위와 찬반투표 대상범위 / 김기덕․이학준
․ 당연퇴직 사례 : ‘관리용역계약 해지’가 당연퇴직사유인지 여부와 당연퇴직사유 발생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 / 서보열
․ 사용자의 징계권의 범위 / 송강직


부록
 노동판례비평 총 목차(제1호~제13호)


■ 집필에 참여해 주신 분들

강기탁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강성태 교  수(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강호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이학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김태욱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박수근 교  수(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보열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
송강직 교  수(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형배 교  수(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베스트)

(가나다 순)





 

- 정리 / 민변 노동위원회 전명훈 간사    



 

2010/08/16 11:09 2010/08/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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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 2009년 합의이행, 구속자 석방, 해고자 복지 실현,
졸속매각을 반대하는 사회 각계 86인 선언’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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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출처 - 노동과 세계 ]


 지난 8. 5.(목) 국회 정론관에서 노동계․정치인․법조인․학계․인권단체 등 사회각계인사 86인은 쌍용자동차 노사타협 1년에 즈음하여 77일 간의 파업을 마치며 합의한 노사합의사항을 이행할 것과 구속자 석방, 해고자 복직을 촉구, 쌍용자동차의 졸속매각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김선수 회장을 비롯하여 권영국 노동위원장, 권두섭, 송영섭 변호사가 기자회견에 참석하였습니다.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이 날 기자회견에서, “파업노동자들을 52:48로 나눠 52%를 복직시킨다고 약속했지만 그들은 아직 무급휴직자로 남아있고, 정부가 밝힌 고용안정특별지구 혜택은 누가 받았는지 아무도 모르며, 노사합의내용 이행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또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상급단체를 거짓으로 바꾸는 노조탄압이 일관되게 진행됐고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본질이었다”면서 “우리는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가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권영국 변호사는 “노사협약이 바위보다 무겁게 지켜지는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법치국가”라고 말하고 “복직약속 이행, 구속자 석방, 120억에 달하는 손배 철회 등 2009년 8월6일 노사합의를 즉각 이행하고, 정부와 쌍용차 사용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이 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하여 ▲2009년 8월6일 노사합의 정신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가혹한 탄압조치를 철회할 것, ▲2009년 8월6일 합의에 대한 성실한 이행 촉구, ▲쌍용차 매각작업이 또 다른 졸속매각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우리 사회 통합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쌍용자동차 사태 후속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한편 이 날 기자회견에는 우리 민변뿐만 아니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김봉윤  금속노조 부위원장, 김병일 진보신당 노동위원장, 허영구 투기자본센터 대표, 정영철 교수노조 위원장, 김한성 교수노조 합법화특위위원장 등 사회 각계에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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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 9.(월)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인욱)는 항소심에서 작년 정리해고에 반발해 77일 옥쇄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전 한상균 지부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조 임원이었던 한일동 전 사무장, 김선영 전 수석부지부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노조 실장 및 부장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조합원은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해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해고 조합원의 생계와 조합 활동비 마련을 위하여 ‘전국행복대리운전’(1600-9408)회사를 만들어 직접 운영도 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술 한잔 하시고 귀가하시는 많은 민변 회원여러분께서 쌍용자동차지부의 ‘전국행복대리운전’을 찾아주시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정리 / 민변 노동위원회 전명훈 간사     



 

2010/08/16 11:02 2010/08/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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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인턴월례회 후기 : 끝이 곧 시작이다.





 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 인턴 박지수입니다.
‘모두 잘 계시나요?’ 하며 다른 인턴들처럼 인사를 하고 싶지만 제가 못 뵌 분들도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쉽진 않네요(웃음).

 갑작스런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분들이 많아 죄송스럽지만, 어느덧 빗줄기로 인해 더위가 좀 물러난 것 같아 다행입니다.
2주 전에는 날씨가 너무 더웠는지 월례회의에 8분밖에 참석을 안 하셨어요. 좀 더 많은 분들을 뵙고 싶었는데 못 뵙게 되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더워서 그런 것이겠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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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월례회도 지난 월례회처럼 전체교육과 연계되었습니다.
이번엔 여성위원회 소속의 남성 변호사인 이한본 변호사님이 ‘공익과 변호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원체 관심이 있던 내용이라 모두들 질문보다는 변호사님의 ‘변호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것 같네요. 내용을 요약해보면, 예전에는 변호사의 공익활동이 일종의 의무감에서였다면 현재에는 의무감만으로는 할 수 없고 그 안에서 '보람'을 비롯하여 '얻는 것'이 있을 때 오랫동안 공익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본인의 국선변호인 경험을 통해 공익활동과 자신의 커리어를 병행하는 것도 가능함을 피력하셨는데, 소위 흉악범들의 국선 변호 역시 '재판의 정당성'과 '사회 체계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 강조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여성위원회에서 몇 안 되는 남성 변호사로서의 삶과 변호사로서의 본인의 인생경험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 변호사가 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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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여의 열띤 강연을 끝으로 월례회가 시작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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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할 때 비디오 자료를 보고 시작하면 좋겠다고 하여, 제가 미국에서 공수해 온 “It’s Elementary”라는 다큐멘터리를 30분가량 보고 이것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공교육 내에서 ‘동성애’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내용입니다. 미국 전국 곳곳에서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졌고 이를 카메라에 담았으며 지역사회 내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었는데 게이이슈를 언제 교육하고 과연 그 교육이 동성애를 조장하는가가 가장 큰 쟁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3-4학년 정도 밖에 안 된 아이들이 동성애에 대하여 수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교육을 통해서 이런 편견이 조금은 완화되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였습니다.

 미국은 이민사회로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다원화 이론이 없이도 이미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다양성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의 소수자 인권의 시각과는 시작지점 자체가 다르지만 동성애를 ‘다른’것으로 인정하고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자 하는 운동 자체는 우리의 인권교육과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선생님과 단체, 그리고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어야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성적지향을 갖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자신이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있지 않나 싶네요.
 
 저로서는 좋은 자료를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지만, 열악한 음향과 자막 없이 봐야 하는 상황에서 열심히 경청해 주신 다른 참석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영화를 보고 질문이 끝난 후, 월례회의 화두였던 인턴 수료식과 엠티 날짜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27일, 30일 설이 나왔지만 겨우 8명의 인원으로서는 수료식과 엠티 날짜를 결정지기가 매우 어려워 이 부분은 보류되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인턴을 시작한지 겨우 한 달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뭔가가 끝나가니 많이 아쉽더군요.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여러분이 무사히 인턴 생활을 마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도전하시는 여러분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월례회였지만 다음번에 뵐 때에는 모르는 분들 얼굴도 볼 수 있었으면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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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글 / 국제연대위원회 박지수 인턴    

  

2010/08/15 15:04 2010/08/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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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지키기 긴급행동




 8. 9.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가 상지대 정이사에
김문기 측에서 추천한 네 사람을 포함하여 8명의 정이사와 1명의 임시이사를 선임함에 따라
상지대 사태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사분위는 애초 7. 21.에 상지대의 새로운 정이사를 선임하기로 하였다가 김문기 복귀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하자 그 선임시기를 8. 9.로 연기하고는 이사진의 비율을 4(옛 재단):2(학교 구성원):2(교과부):1(임시이사)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결론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이 결정이 갖는 문제는 다른 곳에서 짚기로 하고, 핵심만 요약하면 2007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더구나 사분위 스스로 설정한 "비리 도덕성, 학교경영능력 등 사회상규와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추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때는 예외로 한다"는 내부지침에도 반하여, 김문기 측에게 학교를 돌려주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이 스스로 생각해도 면구스러웠는지 1명의 임시이사를 선임하여 김문기 측이 학교 운영을 독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애초 사분위의 7. 21. 결정을 앞두고 김문기 체제의 복귀를 저지하기 위하여
제 시민사회 단체들은 “상지대 지키기 긴급행동”이라는 비대위를 결성하고 공동대응에 나섰고,
민변 또한
7. 14. 참여연대에서 열린 회의에 송상교 변호사가 참여한 것을 시발로 하여
7. 20. 17:30 회장이신 김선수 변호사, 총장이신 정연순 변호사, 사무차장인 송상교 변호사, 어중선 상근간사 등이
                정부종합청사 후문의 상지대 농성장을 지지방문하고,
7. 26. 10:30 상지대 사태해결을 위한 전국 법학교수 및 변호사 공동선언에 101명의 민변 회원이 참여하였고,
                 이 공동선언의 기자회견에 김선수 회장님과 송상교 변호사, 이광철 변호사가 참여하는 등으로
                 상지대 문제에 적극 결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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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상지대 문제는 사분위의 정이사 선임의 법적인 효력을 다투는 문제로 국면이 바뀌었습니다.
사분위의 설치근거가 되는 사립학교법 제24조의2 제4항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사분위의 심의결과에 따라야 하고,
다만, 심의결과에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분위에 재심을 요청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 하여금 사분위에 재심을 요청하도록 하는 것이 당면한 투쟁의 현안입니다.

이에 상지대 지키기 긴급행동은 8. 11. 긴급회의를 통하여 새로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주호 예정자로 하여금
재심을 청구하도록 장관청문회 등을 통하여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는 한편으로 상지대 구성원측 이사로 선임된
한이헌 전 경제수석과 임지현 서울대 교수에게는 사퇴를 권고하기로 하는 등의 현안대응책을 마련하였습니다.

 8. 9. 사분위 결정이 이대로 굳어져버리면,
김문기를 주축으로 하는 구 재단이 복귀하게 됨은 물론,
상지대 이후 광운대, 대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기타 많은 사립재단에서 구 재단이 복귀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 점에서도 상지대는 매우 큰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 사무처는 앞으로도 상지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며,
차제에 민변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투쟁에의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 글 / 이광철 변호사    







[ 관련 글 ] "상지대 사태 : 김문기를 아십니까? 그의 복귀를 막아주십시오."  ->  http://minbyun.org/blog/429 





2010/08/15 14:53 2010/08/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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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리’ 를 아시나요?
사전적 의미로는 ‘나루, 내’ 라는 옛말이라는 뜻이 있구요, 요즈음에 쓰는 말로는 '저보다 지체 높은 사람'을 불러 이르는 존칭이라고 쓰이네요. 그런데 그런 호칭이나 옛말보다 훨씬 예쁜 얼굴을 가진 나리가, 백두대간 속 익숙지 않은 한 산 속에 화사한 얼굴로 피어 있는 것은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늘말나리, '변치 않는 귀여움과 순결'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 주황색의 아름다운 꽃이 강원도의 금대봉-대덕산에는 산길을 따라 지천으로 피어있더군요.

 여느 때와 같이 날로 더워져만 가는 여름 날씨에 헉헉대면서 사무실에
기어오곤 하던(!) 6월 말, ‘탁 트인 전망과 맑은 공기가 함께하는 금대봉-대덕산 생태산행’ 의 공지가 인턴 카페에 올라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산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평소에 산을 오를 때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던 우리 산천의 야생화와 풀꽃들을 보며 가는 생태산행이라고 하기에 마음이 동했던 것이지요. 다만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던데, 친구 없이 혼자 따라가면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중에 마침 출판홍보팀의 김모 인턴이 흔쾌히 같이 가신다기에 걱정도 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컸던 산행입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하필 그날 미팅에 나가자는 친구들의 유혹과 약속된 산행사이에서 꽤나 많이 갈등을 했으니까요.


 산행일 당일 아침에 잠도 거의 못잔 채로 부리나케 집에서 튀어나왔지만, 약속장소와는 거리가 꽤 먼 곳에 사는 덕분에 조금 늦었습니다. ‘코리안 타임도 있고 하니 10~15분 정도는 괜찮겠지?’하는 기대감이 버스에 들어서자 당혹감으로 바뀌더군요. 전부 다 와계시는 산행참가자분들을 보면서 ‘아, 정각 이전에 다 와줘야 민변의 시간개념이지~’하는 생각이 들어, 저 하나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분들께 죄송해졌습니다.

 기대감이 당혹감으로, 당혹감이 죄송함으로 바뀌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죄송함이 다시 당혹감으로 바뀌는 데에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분명 인턴들 중에서는 김모 인턴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버스 자리에 앉으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앞자리의 간사님이 이르시길, 이제야 일어났다고.......... 그 순간 저를 때리고 간 당혹감은 분명 그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힙합듀오 ‘듀스’의 <우리는>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정도로는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큰 것이었다 할까요.

 민변 구성원들의 여러 지인들과 가족 여러분, 인턴, 그리고 실무수습중인 로스쿨 학생분들,
또 김선수 회장님의 ‘강압 같은 권유’에 이끌려 산행에 끌려오신 두 여기자 분들까지,
서로간의 유쾌한 소개로 산행을 떠나는 버스 안은 활기찬 분위기였습니다.

 개성이 넘치는 자기소개 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한 가지는, 이정택 변호사님의 아들분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싸게 지은 초등학교인 일원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며 가장 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 변호사님이 먼저 본인 소개 하시고 아드님을 소개하시면서 서울에서 가장 싼 초등학교라고 운을 띄우시고는 아드님이 받아서 일원초등학교라고 하는 모습에서는, 산행에 동행하는 부자의 정겨움이 모두의 유쾌함과 어우러져 분위기를 띄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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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입구에서는 이 산의 생태적 중요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산행의 주의점을 간단히 듣고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등산로의 초입부터 아주 산들한 산바람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산책길과 같은 느낌의 산길이 오롯이 잔잔하게 이어가고 있었고, 길 양쪽에는 사람의 손길로부터 때 묻지 않은 산천 고유의 야생화와 풀잎들이 자신들의 속을 수줍게 몸말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불과 반나절,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자연풍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거대한 도시 열섬의 벽속에 갇혀 생활하던 내 몸이, 이렇게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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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덕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더불어 길을 가고 있던 도중, 우리 야생화를 많이 알고 계시는 김선수 회장님 옆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잘 말려진 순대 옆에 푹 삶아져 맛이 좋은 간을 더하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강조하셨던 야생화는 서두에 언급했던 ‘나리’였습니다. 말나리, 하늘나리, 하늘말나리와 같은 나리의 종류들이 지천에 피어있었는데, 시중의 꽃집에서 파는 만들어진 꽃의 압도적인 화려함과는 달리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차분한 느낌에, 문득 꽃차를 만들어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먹는 것으로만 비유하고 있나요? 시각 말고는 가장 즐거운 느낌을 주는 게 미각이다 보니까요.

 대덕산의 전경과 느낌을 이렇게 글과 사진의 시각적 이미지로만 전하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후기란 것이 본래 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대덕산의 느낌을 독자분들께 전할 수 있으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더위가 조금 가라앉으면,
대덕산으로 생태산행을 한번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친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어머니의 대자연이 우리를 맞아줄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아참, 산행의 시작단계에서는 분명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민변의 성격상
산행코스가 A코스와 B코스로 나눠져 있었습니다만, 의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신 회장님 덕택에
전부 다 B코스로 산행을 완주했다는 사실은 - 독자 여러분, 모두 엠바고입니다.
제가 인턴 말년이긴 하지만, 회장님이 아신다면 파면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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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변론상담팀 장덕규 인턴  






[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같은 곳을 다녀오신 기자분의 글이 있어 링크를 겁니다.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81101032930024002 ]

2010/08/12 14:28 2010/08/1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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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참여단체에 대한 보조금지급중단은 위법

- 한국여성노동자회 사건의 서울고등법원 판결 -

 

 

1.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의 기록과 사진을 담은 책의 제목입니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웠던 촛불의 행렬은 2년이 지난 지금 사진으로 보아도 너무나 장관입니다. 광장의 어둠을 몰아냈던 촛불시민들은 모두들 일상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 중 일부는 난생 처음 벌금을 내라는 약식명령을 받았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던 PD들은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해 카메라 앞이 아닌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촛불집회는 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사실상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것은 어둠과 빛의 대결입니다. ‘법치주의와 질서’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무리한 법적용을 고집하는 세력이 ‘어둠’이라면, ‘무죄’, ‘위헌’, ‘위법’이라는 판결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단 하나의 촛불만으로도 어둠을 몰아내고야 마는 ‘빛’의 승리입니다.

 
2010년 7. 21. 서울고등법원(제5행정부, 재판장 조용구)은 촛불집회 관련 사건에서 정부의 법적용이 ‘위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행정안전부장관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단체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노동자회(이하 ‘한국여성노동자회’)가 행정안전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 글은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의미와, 촛불집회 이후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반복되고 있는 촛불집회 참여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확인서 제출 요청이 위법한 이유를 살펴보기 위한 것입니다.



2.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의미


(1) 2009년 2월 중순 경찰청장은 행정안전부를 포함하여 정부 각 부처로 공문을 발송합니다. 그 공문의 제목은 ‘08년 불법폭력시위 관련단체 현황통보’인데, 그 공문에는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 의사를 표시했던 1,840여개 단체 모두가 ‘불법・폭력 시위 관련 단체’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공문에는 심지어 전, 현직 국회의원실, 정당, 참여연대, 경실련, 민변, 한국기자협회는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후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중앙관서, 지방자치단체는 바로 이 경찰청 공문에 나와 있는 단체들이 신청한 보조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이미 지급하기로 했던 보조금을 중단하는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여성부 등 일부 부서는 단체들로부터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거나 보조금 지급에 앞서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였는데, 그 확인서의 내용은 “불법 폭력 집회에 참여한 사실이 없고, 앞으로도 불법 폭력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인서 제출을 거부하는 단체에 대하여는 역시 보조금 지급이 거부되었습니다.


(2) 위와 같은 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 지급거부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대표적 단체가 바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한국여성의전화입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08년 행정안전부로부터 이미 3년 동안(2008년부터 2010년까지) 보조금 지급 이 결정된 단체였는데, 행정안전부장관은 2009년도 보조금 지원대상 단체를 발표하면서 한국여성노동자회를 제외하였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 3월 여성부로부터 보조금 지원 단체로 선정되지만, 이후 앞서 본 것과 같은 확인서 제출을 요구받게 되자 제출을 거부하였고, 여성부장관은 한국여성의전화를 지원 단체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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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각각 행정안전부장관과 여성부장관을 피고로 하여 “보조금지급을 중단한(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 12. 10. 제1심(서울행정법원 제14행정부 재판장 성지용)에서 승소판결, 여성부장관이 항소한 서울고등법원에서도 2010. 6. 9.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여성부는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의 승소가 확정되었습니다.

 
반면 한국여성노동자회 사건의 제1심(서울행정법원 제6행정부 재판장 김홍도)은 “원고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패소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패소 판결의 이유는 사실 이 글에서 상세히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습니다만, 한 마디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불법폭력 집회·시위를 주도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하여 그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으므로 불법폭력 집회·시위 참여단체에 해당하고, 이런 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은 적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3)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즉시 항소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마침내 위 서울행정법원이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며, 한국여성노동자회에 승소판결을 선고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확인하여 주고 있는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첫째, 행정안전부가 2008년도에 이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3년 계획을 세워 신청한
                 사업에 대하여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없이
                 2년차 사업연도에 해당하는 2009년도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것은 위법하다.
     ② 둘째, 행정안전부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결정을 하면서도 한국여성노동자회에게
                 사전통지를 하거나 의견 제출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
     ③ 셋째, 행정안전부로서는 보조금 지원 대상 단체나 그 구성원이 민주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불법・폭력 집회, 시위를 개최하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의 사유로 보조금을
                 계속 지원하는 것이 관련 법령의 목적이나 보조금 지원의 취지 등 공익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보조금의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④ 넷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에 참여의사를 표시한
                 1,842개 단체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와 같은 사실 이외에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불법・폭력 집회, 시위를 개최하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3. 마치며 : 영화 ‘꽃다운’을 위하여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진행 중이던 지난 6월 9일 홍대 앞 시네마 상상마당에서는 “꽃다운”이라는 제목의 영화 상영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1979년 8월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철야농성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노동자 김경숙의 삶과 죽음”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 번 사건 원고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행정안전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추진하고자 했던 주된 사업이 바로 이 영화의 제작이었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08년도부터 기획하였던 이 영화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2009년도에 갑자기 중단되면서 영화 제작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30여 년 만에 마련된 ‘새로 쓰는 여성노동자 인권이야기’(한국여성노동자회가 행정안전부에 보조금지원 신청을 한 사업명)는 경찰청장의 어이없는 공문 하나와 행정안전부장관의 보조금 중단결정으로 다시 한 번 벽에 부딪힌 셈입니다.

 
바라건대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계기로,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집회,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위법사례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법원의 판결에 반하는 행위를 반복한다면, 이는 그들이 내세우는 ‘법치주의’가 단지 가면에 불과함을 자인하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무모한 시도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 글 / 좌세준 변호사  

 

 



< 판 결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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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8 21:14 2010/07/2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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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모임 소개



 한 사람의 인생은 그의 전 우주이다. 그런 전 우주들이 모여서 사회가 구성되기도 하고,
국가라는 체제를 만들기도 한다. 각각의 전 우주들은 그만큼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 어떤 모습은 사회적으로 주류화 되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모습은 그 존재만으로 없는 사람 취급되거나 귀찮은 존재 또는 위협적인 존재로 배척을 당한다.


 
최근 한 방송사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룬 것을 두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단체에서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라는 지면광고를 낸 적이 있다. 결혼이 기본적으로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이 광고에서 찾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을 ‘며느리’라는 단어로 전형화 된 가족관계 속으로 배치시키고, 연속하여 그 다음 동성애를 배치시킴으로써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사회를 위협하는 ‘이물질 ’같은 것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입법과정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거쳐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그러나 법무부 원안에 차별금지사유로서 성적지향이 포함된 것에 대해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반대를 표명하자 성적지향, 출신국가, 학력, 가족 형태, 가족상황, 병력 등 7가지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되었다. 성문법이 문서화된 형식을 통해 한 사회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면 7가지 사유가 삭제된 차별금지법은 그 자체로 ‘성적지향’등에 의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내지는 성적지향이 다른 존재를 비가시화 하는 방식을 통한 ‘차별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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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성적 소수자 외에도 장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감염인, 이주민 등 다름으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거나 위협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제도나 법의 설계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우주들이 많이 존재한다. 민변의 (가) 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은 이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준비모임은 급하게 어떤 사업을 추진하기 보다는 모임 성원들의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법의 적용과정과 입법과정에서 뿌리박혀있는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법제도들에 대한 연구를 차분히 진행할 예정이다. 가끔씩은 소수자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도 무심코 던지는 말 속에서 기존의 언어를 답습하고, 차별적인 언어를 내뱉은 경우를 발견할 때도 있다. 이런 면에서 준비모임은 성원들의 ‘감수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소수자 인권위원회'가 적합한 명칭인가에 대한 논의도 아직 진행 중이다. 1, 2차 준비모임에서 성원만큼이나 명칭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소수자위원회’ ‘평등위원회’ ‘반차별 위원회’ ‘사회적 약자 위원회’ ‘마이너리티 위원회’ ‘인권위원회’등)가 나왔다. 이는 차별 또는 소수자의 문제를 명확하고 깔끔한 언어로 정리하려는 방식이 주는 위험성과 무게감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현상일 것이다.

 
준비모임은 법무부가 올해 다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검토하고 있는 것에 대응해 우선 차별금지법의 쟁점 등에 대한 공부를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2차 준비모임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쟁점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하고 이후 8월 진행될 3차 회의에서는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에 대한 발제와, 차별반대활동에 대한 단체들의 논의들에 대해 공부를 해 볼 것이다.

 
인권과 차별의 문제가 법률제정의 영역으로 오는 순간 맥락이 사라진 열거나 예시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고민이 필요한가, ‘법률가들의 언어’가 소통에서 어떤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는지 등도 논의의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모임’은 여전히 조직의 정비나 구체적인 활동방향의 측면에서 모호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런 모호함을 긍정하면서, 그리고 답답하고 모호한 해답 속에서도 활동은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현해보고자 한다.



 

- 글 / 서선영 변호사  


 

2010/07/28 20:24 2010/07/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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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대학생 유시민이 항소이유서에 인용한 러시아 시의 한 구절이 가슴에 박혔다. 이후 그는 조국의 불합리한 국가권력, 기득권의 부정부패에 슬퍼하고 노여워했다. 사랑하는 이에게도 슬퍼하고, 노여워해야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육군 장성 진급 비리 사건, 한미연합부사령관 횡령 사건, 기무사 민간인 사찰, 불온서적 사건 등은 ‘최강욱 변호사’를 키워드로 치면 나오는 사건들이다. 뒤틀린 ‘권력’에 노여워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스스로를 ‘평범한 일상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이런 그에게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자꾸 다가오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평범하지 않은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강욱 변호사에게 또 하나의 ‘평범하지 않은 일’이 다가온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몇 년 전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함께 한 김종익 씨가 국가기관의 사찰을 받고 있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이야기 내용에 자체에 ‘법률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최강욱 변호사가 본 김종익 씨는 절대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김종익 씨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한다며 답답해했다. 국가기관의 개인에 대한 권력 남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7일, 최강욱 변호사를 만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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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피해자인 김종익 씨의 변호를 맡고 계십니다.
  현재 어떤 상황인지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국무총리실은 자체조사를 거친 후 사찰을 지시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을 포함해 3명을 직위해제했고, 사건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입니다. 일부는 구속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김종익 씨가 당한 사찰의 내용과 피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을 했는가, 사찰을 당한 사람이 김종익 씨 뿐인가, 누가 지시했는가를 밝히는 일 같습니다. 관련자 처벌과 손해배상 문제 또한 남아있고요.


- 직장까지 잃게 만든 외부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당한 사찰의 내용을 언론에 밝히기까지
  순탄한 길이 아니었을 덴데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종익 씨가 사찰을 당한 것은 시일이 조금 지난 일입니다. 2008년 9월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시 국무총리실에서 김종익 씨를 반정부적인 인물로 지목하고는, KB한마음(현 NS한마음) 대표이사직을 사퇴하고 지분을 모두 내놓으라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김종익 씨는 더 이상 봉변을 안당하기 위해 국내에 대리인을 선임해놓고 잠시 일본으로 떠납니다. 그간 총리실에서는 김종익 씨의 카드 사용내역 등을 샅샅이 뒤지고 탈세, 공금횡령 여부를 조사하는 등 내사를 벌였지만 흠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2008년 11월에 국무총리실장명의로 동작경찰서장에 수사 의뢰 공문을 보냅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였습니다.

 처음에 김종익 씨를 수사한 경찰관은 무혐의 의견을 냈지만 결재 과정에서 묵살되었고, 동작경찰서는 수사진을 교체한 후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합니다. 검찰에서는 2009년 10월이 다 되도록 시간을 끌다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어요. 김종익 씨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경찰관이 자리를 자꾸 비우는 사이에 기록을 들춰보다가 총리실에서 보낸 공문서를 봤습니다. 제 생각에 그 기록만 확보하면 사건의 실체가 분명해지고, 손해배상 소송 역시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김종익 씨는 피의자로 입건돼 기소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방법이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검찰이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는 헌법소원을 제안했습니다. 헌법소원을 하면 수사기록을 송부해주는데, 그 수사기록에 김종익 씨가 본 총리실 문건이 포함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09년 12월에 헌법소원을 내고, 헌재에서 기록이 제출됐다고 연락이 와서 복사를 해보니 진짜 총리실 문서가 있지 뭡니까! 저로서는 반가운 일이었습니다만, 한 사람을 사찰한 흔적이 공문서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참 황당하고 분했었죠.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기록이 손 안에 들어왔는데도 김종익 씨는 한참동안이나 기록을 못 보셨어요. 사찰을 받던 일이 생각나서 두려웠기 때문이겠지요. 또 힘든 일을 당하시다 보니 그간 많이 아프셨습니다. 지난 5월 달 쯤에야 저에게 연락을 하셔서 이 일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결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셈이죠. 김종익 씨가 1년 넘게 고민한 것의 상당 부분이 ‘피해가 여기에서 끝날까’하는 공포였어요.


- 김종익 씨가 노사모의 핵심 인물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해가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쓰는 동일한 수법이 ‘물타기’입니다. 본질을 흐리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나, 사회적․집단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나 그 기제가 같습니다. 이는 진실을 가리고자 하는 권력계층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사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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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실은 왜 그렇게 집요히 민간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것일까요?

 수사기록을 보면 촛불집회 자금 지원 여부, 동향인 이광재 강원도지사와의 친분, 노사모와의 관련성을 집요하게 묻습니다. 왜 사찰을 했을까는 수사기록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조사할 때 김종익 씨가 확인되지 않은 어떤 경로로 걸려들었다는 개연성이 높습니다. 누가 김종익 씨가 평창 사람이고, 이광재 도지사와 가까울 수 있으니 조사해보라는 제보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과 관련해서는 지난 정권과 가까운 사람을 손봐주겠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의미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고, 법치주의를 완전히 파괴한 사건입니다. 그간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술했고, 권력자가 말하는 법치주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무총리실이 자체 조사를 하기 이전에도 얼마든지 다른 국가기관들이 진실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치되었습니다. 국가기관들이 권력자의 의중만 살필 뿐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관의 기본적인 사명을 망각한 겁니다. 권력의 잘못된 지시가 있었을 때, 공직자들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언로가 모두 막혀버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달성했다는 민주주의의 수준과 공직자들의 복무자세에 대한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 사건과 관련된 향후계획이 궁금합니다. 또 김종익씨께서 직장을 잃으시는 실질적 피해를
  당하셨고, 정신적 고통 또한 호소하셨는데요, 사건 해결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일단 손해배상과 관련자 처벌을 통해 김종익 씨가 받은 피해가 회복되어야 하겠죠. 수사 결과를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수사 과정에서 흠집내기를 하는 정치인과 일부 언론에도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계획입니다.

  이번 사건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은 이유는 누구나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종익 씨는 배상에 앞서 사찰에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도와 절차가 정비되길 바라십니다.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보도나 의견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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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욱 변호사님께서는 군법무관 생활을 8년 하시고 2005년 전역하셨습니다. 군법무관 생활을 하시던 중
  2001년 군법무관임용법에 대한 헌법소원, 2004년 신일순 한미연합부사령관 공금횡령사건 수사, 육군장성
  진급비리 수사 등을 진행하셨는데요, 전역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현역 대장을 구속한 사건 이후 바로 이어진 육군장성 진급비리 사건 때문에, 군에서는 제가 전역을 안 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죠. (웃음) 군법무관으로 있는 동안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항해 지긋지긋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역 당시는 참여정부 사법개혁위원회가 군사법제도개혁을 논의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어 전역했는데,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죠.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논의한 주제 중 첫 번째로 위원회 의결을 통과했던 주제가 '군 사법제도'입니다. 너무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유일하게 개선되지 않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법개혁의 주제 중 검경수사권조정, 국민참여재판, 공판중심주의 등 민감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통과가 됐어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군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고, 이 세력이 사력을 통해 개혁을 막았는데 정작 개혁하는 쪽에서는 본질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또 방치되어버리고 말았고요.


- 現 군사법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애초에 군사재판제도는 식민지를 경영하는 나라에서 필요에 의해 만든 것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시초라고 할 수 있죠. 인도에서 식민지를 경영해야 하는데, 인도 법원에서 자국민을 재판하면 불리하니까 군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재판권을 갖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국은 EU에 가입할 때 군사재판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유럽인권규약에 반한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효과적으로 군사재판 제도를 운영하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우리나라의 군사법제도는 해방공간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한국현대사의 불행한 사건은 대부분 군사재판에서 이뤄졌습니다. 제도가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합리합니다. 군사재판에서, 판사가 아닌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재판장을 맡습니다. 예를 들어, 합참의장을 처벌하고자 하면 그 사람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야 하는데 군에 합참의장보다 높은 직위는 없습니다. 처벌할 구조가 아예 없는 셈입니다. 지휘관은 경찰부터 검사, 판사, 재판장을 모두 임명할 수 있고, 형량을 마음대로 깎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아직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비밀주의가 강한 우리 군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거나, 비리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일례로, 불온도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 두 명이 파면되시지
  않았습니까. 그 중 한 명이 민변 박지웅 회원이시고요.

 우리가 이룬 민주화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는 군대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군대가 민주화되어야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민주화를 저해하는 대표적인 집단과 세력이 군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50년을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 아닌 것, 군인 출신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민주화라고 생각했지 군의 본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군을 사고에서 배제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은 지금도 제 맘대로 입니다.
 
 이는 천안함 사태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소통, 투명성, 토론과 전혀 무관한 조직이 바로 군 아닙니까. 불온서적 지정 등과 같은 전근대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군대니까 그렇다’고 하는데, 군대는 왜 그래야 할까요? 군대가 그래야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문제를 식별해서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사법제도개혁을 이야기 할 때도 법원, 검찰만을 논하지 군사법제도는 빼놓습니다. 군법무관으로서 군의 문제점들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나왔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는 소중한 경험이고, 이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 ‘평화군사법학회’에서 활동 중이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하시나요?

 군인의 인권문제, 군사법제도 개혁문제, 또 평화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살펴보려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이나 고통의 뿌리가 군사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성학을 하시는 분들도 점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학진에도 등록되었으니, 정식 학술단체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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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에 가입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현재 민변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군 전역 후 참석한 군사법학회 모임에서 이정희 의원을 만났는데, 아직 민변에 가입하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이정희 의원도 군사법학회의 회원입니다. 저도 가입을 위해 민변 홈페이지를 찾아가 봤지만 절차가 좀 어려운 것 같아 시간을 끌고 있던 차에, 이 의원을 통해 민변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올해 5월까지 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지금도 사법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요즘은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위원장을 맡아서 민변에 피해를 끼친 사실을 자성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웃음)


- 작년에 「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집시법, 용산참사, 삼성특검 등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법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인데요,
  제목이 주제들과 참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목을 어떻게 결정하게 되셨고,
  책 출간 계기는 무엇인가요? 향후 준비하고 계신 책이 있으신지요.

 책은 KBS1 라디오의 ‘라디오 정보센터 왕상한입니다’에서 제가 진행했던 뉴스 해석 코너를 묶은 것입니다. 출간이 제 의지는 아니었고요, 출판사에서 기획 한 후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제목도 출판사에서 정해주셨는데,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했습니다. 저는 ‘불온’이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어서, 거기에 편승하는 것도 싫었고요. 책이 많이 안 팔려서 출판사 분들이 손해 보셨을 겁니다. (웃음)

 저는 김두식 교수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 같은 책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좌절했어요. 저는 그 이상 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군대와 관련된 인권 문제,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책을 써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지만 아직은 능력이 부족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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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출판홍보팀 박초롱 인턴
 사진 / 출판홍보팀 김란아 인턴



 

2010/07/28 20:23 2010/07/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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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문화제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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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신공양'이라는 낯선 말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스님이 있다. 그 스님은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말을 남기고 스스로의 육신을 불태웠다.  

 
7월 17일 서울광장에서는 문수스님의 49제 국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가 시작될 때 비가 그쳤나 싶더니 이내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촛불도 빗물에 맞아 꺼지곤 했다. 민변에서는 김선수, 박주민, 정연순, 최은순, 이영기, 서선영 변호사가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한여름에 비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계속 내리는 비는 몸에 한기를 느끼게 했다. 사회를 보던 도종환 시인은 비도 끈질기지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도 참 끈질기다는 말로 참석한 분들에 대한 연대를 표했다.   

 
4대강 사업은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 7월 22일부터는 이포보와 함안보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고공시위도 진행되고 있다. 몸을 불태우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한여름 내리쬐는 땡볕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않았고, 그래서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분들은 4대강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다.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많은 분들이 가진 저마다의 생각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 속에 있는 부채의식이 계속되는 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게 했을 거라 생각한다.  

 
추모문화제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에 눈과 귀를 열고, 4대강 공사 중단과 국민 합의라는 용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그렇지만 오늘도 4대강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용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결국은 우리가 4대강 공사를 중단시키는 길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포보에서 함안보의 고공농성장에서 그리고 4대강 현장에서의 미사와 기도, ‘문수스님의 유지를 잇자’는 불자와 스님들의 선언을 통해서 그 길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다.

 
 

- 글 / 서선영 변호사  



2010/07/28 17:59 2010/07/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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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경남지부 소식
 



 회원 여러분, 이 푹푹찌는 더위에 다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이 뉴스레터가 발송될 쯤엔 아마도 대부분 휴가를 즐기고 계실 것 같은데요...
저도 빨리 이 원고를 넘기고 휴가를 떠나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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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라는 제목에 걸맞게 ‘뉴스’를 전해 드려야 하는데 경남 지부는 운영과 활동이 너무도 안정적인지라(?)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하던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있는 것 외에 큰 변화가 없어 과연 새로운 소식이 뭘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역시 지난 5월 제가 신임 총무로 선출이 된 것이 가장 큰 이슈라는 결론을 임의로 내렸습니다! 경남 지부는 현재 회원 수가 10명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라 사무국장이라는 호칭보다는 총무라는 호칭이 훨씬 잘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제가 경남 지부에 가입을 한 때가, 서울에서의 로펌 생활을 접고 2세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으로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온 2007년입니다. 가입 당시에 제가 최연소이자 가장 후배 기수였는데 2010년 현재도 역시 막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젊은 피 수혈이 경남 지부의 최대 현안 사업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2004년 부산지부로부터 독립하여 따로 떨어져 나온 뒤 회원 수가 정체 상태에 있다가 최근 2명 정도가 줄어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특별한 현안 사업이 없어 단결된 힘을 보일 기회가 없었던 탓이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대전에서 열린 민변 지부자 대표회의에 가보니 다른 지부들은 크든 작든 사업들을 하고 계신 것을 보고 신임 총무로서 반성과 함께 조직 활성화에 대한 굳은 결의를 다지고 왔습니다. 우선 회원들끼리의 만남을 정례화 해서 내부 결속을 다지고, 다른 전문가 단체들과 연대해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사업(예를 들면 대중 강연)을 진행할 계획에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국민소송과는 별개로 함안보 등 낙동강 유역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고소, 고발 사건과 변론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 지부 차원에서 공동 변론을 하는 것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 시각 현재 함안보 크레인 위에서 활동가 2분이 농성 중에 있고 일부 다른 현장 활동가 분에 대해서는 이미 건설회사 측에서 고소장을 접수해 놓은 상황입니다. 우선 지부 선배님들에게 현장 상황을 설명 드리기 위해 제가 의사분들과 함께 함안보 크레인 위에 올라가 볼 계획입니다. 앗,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크레인 아래에 진압을 위한 경력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비 미납 회원이 생기지 않도록 악착같이 회비를 걷어서 본부의 재정난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생각입니다.

 
모든 민변 회원들이 받아 보는 뉴스 레터에 이렇게 저희 경남 지부의 계획을 말씀드렸으니 이제는 꼼짝없이 지켜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과 책임감을 저희 경남 지부 선배님들과 제 스스로에게 심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 지면을 이용하였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고, 앞으로 경남 지부의 왕성한 활동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라며 신임 총무의 편지를 끝맺을까 합니다. 즐거운 휴가들 보내세요~



- 글 / 박미혜 변호사 (경남지부 사무국장)

2010/07/28 17:01 2010/07/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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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자극과 과제를 남긴 ‘민변 지부 대표자회의’



 민변에는 7개의 지부가 있습니다. 대전충청지부, 광주전남지부, 전주전북지부, 경남지부, 부산지부, 울산지부, 대구지부가 그것입니다. 회원들은 평소 지부별로 별도의 조직과 사업계획을 가지고 지역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1일 오후 5시부터 대전역사 회의실에서 민변의 각 지부 대표자들 17명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종래 전국 지부 대표들이 친목모임을 가진 적은 있지만 공식적인 회의를 열어 현안과 과제를 논의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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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모인 참가자들은 민변의 여러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본부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민변 좌파’ 발언 등에 대한 본부 차원의 대응 등 5월 총회 이후 활동을 보고하고 23차년도 본부의 주요 사업 계획을 발제하였습니다.

 
지부별로 현황과 사업계획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지부별로 처지에 맞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별도 사무실을 두고 있는 광주전남지부는 경술국치 100년 과거사 문제 해결 활동의 일환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에 대한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요구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 매주 1인 시위도 진행중이고 지부 창립 11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모임이 활성화되어 광주지방변호사회와 연계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에 다들 놀라워했습니다. 별도 사무실을 운영하는 대전충청지부도 법률상담과 구조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른 지부들도 별도 정례모임과 계획을 진행중이고 수도권을 제외한 지부들의 교류사업과 공동행사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한편 지부의 공통적인 고민과 과제도 확인하였습니다. 지부별로 회원 수가 정체되거나 지부 자체의 독자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내외적 조건에 대한 고민이 공통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이날 핵심적인 논의 주제는 본부와 지부의 소통을 강화하고 지부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소통을 강화할 방안으로 민변 뉴스레터에 지부소식 지속적으로 싣는 것, 총회에 지부활동을 별도로 보고하는 것, 격주로 열리는 집행위원회 회의록을 각 지부장과 사무국장에게 이메일로 공유하는 것, 지부대표자회의를 적절한 기간별로 여는 것 등이 제안되어 앞으로 이를 반영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부를 강화할 방안으로는 지부 상근간사에 대한 4대 보험 지원 등 재정적 지원 방안, 지부활동 강화를 위한 전국적인 사업계획 검토와 지원, 지부별로 회원사업 차원에서 로스쿨실무수습 진행하고 본부에서는 이를 위해 실무매뉴얼 등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로스쿨 사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또한 지부 재정과 본부 분담금 현황을 검토하였습니다. 여러 논의가 있었는데 지부별로 지부 회원의 회비 실납부율을 반영한 지부분담금 내역을 다시 정비하는 한편 지부별로 회비를 CMS로 전환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5월 발간된 촛불백서에 대해서는 지부 활동을 반영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어 지부에서 촛불 활동을 정리하면 이를 향후 적절한 방식으로 반영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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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인 대표자들은 회의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를 하였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도 풍성한 먹거리, 막걸리와 함께 기억할만한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대전충청지부 장동환 사무국장은 공부모임을 대전충청지역에서 열어 전국 회원이 공기 좋은 곳에서 함께 공부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대구지부 차기 지부장 정재형 변호사, 차기 사무국장 이승익 변호사, 경남지부 신임 사무국장 박미혜 변호사, 전주전북지부 신임 사무국장 박긍태 변호사는 지부 발전을 위한 당찬 포부를 밝혀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집행부가 새롭게 시도한 이날 회의는 각자에게 큰 자극을, 그리고 많은 과제를 남겼습니다.

                                                                                                                             
 

- 글 / 송상교 변호사    
  

2010/07/28 14:06 2010/07/2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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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이지선 회원의 책 출간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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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추천사 1 / 웰 다잉(well-dying)하려는 사람들의 필독서 -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추천사 2 / 유산을 향기롭게 물려주는 지혜가 담긴 책 -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책을 내며 / 상속설계, 행복한 재산을 위한 처방
서장 / '상속 전쟁'이 아닌 '상속 평화' 만들기



1부 : 웰 다잉(well-dying)의 필수정보, 유언과 상속

01. 유언,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 - 뒤끝 없는 재산 분배 노하우
1. 내가 죽어도, 내 재산은 남아있다 - 자신 뜻대로 재산 남기는 유언
2. '냇가에 묻어 달라'는 청개구리 엄마의 유언이 효력 없는 이유 -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 만들기
3. 컴퓨터로 작성한 유언장은 유효할까 - 법대로 유언장 작성하기
4. 미성년자 손주의 유언장 - 17세 이상이면 유언은 가능하다
5. 취소하고 싶은 유언, - 유언 철회법
》01장 요점 정리

02. 희비가 엇갈린 유언장 - 유언 집행
1. 유언장 발견한 사람이 할 일 - 유언 집행 준비절차
2. 죽은 뒤 내 뜻을 잘 지켜줄 사람 선택하기 - 유언집행자 선임
3. 유언 이후 체크사항 - 유언집행자 어붐, 비용, 사퇴와 해임
》02장 요점 정리

03. 빚이 많은 사람도 상속을 준비해야 한다 - 빚과 상속
1. 누가, 얼만큼 상속받을까 - 상속인과 상속분 계산법
2. 물려받은 빚이 더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 -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03장 요점 정리

04. 초상 끝에 싸움난다? - 싸우지 않고 유산 분배하기
1. 부모님께 효도한 양만큼 상속을 받지 못하는 이유 - 상속분 계산하기
2. 싸우지 않고 나누기 - 상속재산 협의해서 나누기
3. 현명해네의 마지막 이야기

05. 채무자의 상속은 채권자의 상속과 연관되어 있다
1. 피상속인의 채권자가 할 수 있는 것
2. 상속인의 채권자가 할 수 있는 것

06. 다국적 시대의 유언과 상속
1. 국내 거주 외국인이 죽을 때 어느 나라 말로 유언을 남겨야 하나
2. 이민 간 한국인의 재산상속은 어떻게 되나
》쉬어가는 페이지 1 - 내 재산을 전남편이 받는다고요?
》이것만은 기억하자 - 상속인이 되었을 때 꼭 해야 할 일


제2부 : 웰 다잉(well-dying)의 세테크, 상속세

01. 상속 세태크의 비법 - 상속세 절세 방법
1. 갑자기 닥친 죽음, 그러나 냉정을 찾어야 하는 이유 - 갑작스런 죽음에서도 발생하는 상속세
2. 원리를 알면 돈이 보인다 - 상속세 계산 구조
3. 숨은 재산을 체크하라 - 생명보험금ㆍ퇴직금ㆍ신탁재산
4. 숨은 재산 찾는 서비스를 이요하라 - 상속재산 조회 서비스 이용법
5. 바늘구멍도 구멍이다 - 공과금과 채무 공제받기
6. 장례 영수증을 잘 챙겨라 - 영수증 절세
7. 배우자는 죽을 때까지 도움이 된다 - 배우자 공제 활용법
8. 상속세는 6개월이 중요하다 - 상속세 6개월 신고 시 10% 감면
9. 재산을 모을 때 배우자와 함께 나눠라 - 재산은 배우자 명의로 분산시켜라
10. 세금도 분할납부가 가능하다 - 상속세 1,000만원 초과 시 분납 가능하다
》쉬어가는 페이지 1 - 상속세 세금 계산 구조
》쉬어가는 페이지 2 - 조선시대에도 상속ㆍ증여세가 있었을까?

02. 미리미리 준비할수록 세금은 줄어든다 - 상속 설계 세테크 10가지 노하우
1. 저평가 재산을 먼저 사전 증여하라
2. 누진제의 의미를 이해하자
3. 월세는 증여가 유리하고 전세는 상속이 유리하다
4. 사위ㆍ며느리ㆍ손자손녀에게 증여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
5. 10년 내 증여재산은 상속재산에 합산된다
6. 사망 1~2년 전 재산 처분은 증빙을 잘 갖추어야 한다
7. 무주택자에게 가장 오래된 주택을 상속하라
8. 조상묘가 있는 임야는 상속이 유리하다
9. 상속재산을 공익법인에게 기부하려면 미리 상의하라
10. 상속 공제 중 다양한 물적 공제 항목을 꼼꼼하게 챙기자
》상속세 절세 10계명


3부 : Q&A로 상세히 알아보기

01. 유언
1. 유언 일반
2. 유언장 쓰기
3. 유언자격
4. 유언철회
5. 유언 집행과 관련하여

02. 상속인과 상속재산
1. 상속인
2. 상속재산

03. 협의해서 상속재산 나누기
1. 상속재산 분할 협의의 방법
2. 돈 받을 권리, 돈 갚을 의무
3. 예전 분할 협의를 없던 것으로 하고 다시 한 분할 협의
4. 상속재산 분할 후 인지되어 공동상속인이 추가된 경우
5. 상속분보다 더 받은 상속인의 세금

04. 법대로 상속재산 나누기
1. 상속분의 계산 - 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
2. 기여분
3. 유류분
4. 금양임야(종산)와 묘토인 농지의 승계

05. 한정승인, 상속포기

06. 상속세
1. 상속세 과세대상
2. 상속세의 납세의무
3. 합산 대상 증여재산
4. 의제 상속재산
5. 상속 개시 전 처분재산 및 부담채무
6. 상속세 비과세재사
7. 과세가액 불산입
8. 공과금
9. 채무
10. 기타


제4부 : 나 홀로 하는 상속업무

1. 상속포기 따라하기
2. 한정승인 따라하기
3.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소송 따라하기
4. 상속회복청구 소송 따라하기
5.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따라하기
6. 기여분심판청구 소송 따라하기
7. 상속세 신고 따라하기


부록
용어 해설
여기서 잠깐!
상속 세테크 포인트
서식

2010/07/28 13:49 2010/07/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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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 소장 제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민변 노동위원회)와 청년유니온은 지난 7. 13.(화) 오전 11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청년유니온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 소장 제출 기자회견’을 개최한 후 서울행정법원에 해당 소장을 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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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유니온은 2010. 3. 18.에 1차 노동조합설립신고를 하였으나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3. 23. 청년유니온 규약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2조 제4호 마목 및 제2조 제4호 라목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여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통보를 한 바 있었다. 이에 청년유니온은 임시총회에서 규약의 일부 개정 후 4. 13. 노동조합설립신고서를 다시 제출하였다. 그러나 노동부는 4. 15.자로 보완요구를 하였고, 이에 5. 11. 일부 사항을 보완하여 신고하였으나 노동부는 5. 14. 2차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처분을 하였다.  

 
민변 노동위원회와 청년유니온은 소장에서 “노동부는 청년유니온의 ‘조합원 자격 및 조직대상의 적합성’ 여부를 문제삼아 노동조합설립신고를 반려하였으나…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 중인 노동자도 노동3권을 보장될 필요성이 있으며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노동부의 근로계약서 또는 재직증명서 등의 제출요구는 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적인 것”이므로 이를 이유로 한 반려처분 반려처분은 위법․부당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이 현재 청년유니온의 활동 등에 대하여 설명하였으며,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위원장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는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의 문제점 및 대안’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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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청년유니온 ‘노동조합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은 민변 변론심사위원회에서 민변 변론사건으로 지정되어 민변 차원의 변론사건으로 진행되며, 이번 소송은 민변의 정병욱 변호사가 주심으로, 권영국, 김진, 권숙권, 설창일 변호사 등이 공동소송대리인단으로 참여하였다.




- 정리 / 민변 노동위원회 전명훈 간사 


 

2010/07/28 11:02 2010/07/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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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사태 : 김문기를 아십니까? 그의 복귀를 막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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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기’ 교육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대한민국 사학부패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전설적인 비리로 상지대 이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난지 20년이 넘은 지금, 그가 현재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부당한 결정을 통하여 상지대에 복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문기는 1993년 4월 공금횡령과 부정입학혐의로 구속되었고, 그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은 그를 일컬어 '사학부패 종합선물세트'라고 했습니다. 김문기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는 단 한번도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이사장이 모든 결정을 하면서 마치 이사회를 연 것처럼 꾸몄고, 하나의 설계도로 다섯채의 건물을 지은 다음 건물 각각에 책정된 설계비를 착복하는 방식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등 (그래서 상지대에는 지금도 똑같은 모양의 부실 건물이 다섯 채가 서 있어서 경관을 망치고 있는데, 그후 지어진 번듯한 건물들과 대비되고 있습니다.) 기상천외한 수법을 동원하여 각종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1994년 그는 대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아 1년 6개월간 실형을 살고, 교육인적자원부는 상지대에 임시이사를 파견합니다. 이후 상지대에는 김찬국, 한완상, 강만길, 김성훈 같은 분들이 총장을 역임하면서 재단전입금이 충실화되고 모범적으로 학교가 운영됩니다. 그러나 김문기는 1994년 재단반환소송을 제기하는 등 상지대를 되찾으려고 갖은 수단을 다 씁니다. 1999년 김문기의 재단반환소송은 대법원에서 상고기각되고, 2002년 행정법원은 상지대에게 임시이사체제를 끝내도 좋다고 판결을 내려서 2003년 상지대 임시이사회는 변형윤 이사장과 최장집 교수, 박원순 변호사 등으로 공익적인 정이사를 구성하고, 교육부의 승인을 받습니다. 하지만 김문기는 정이사 구성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5월 대법원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잘못이라는 뜻밖의 판결을 하면서, 새로 선임된 공익적인 정이사의 무효를 결정합니다.

 
이 판결로 변형윤 이사장 등 양심적인 정이사들이 물러나고 이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가 구성되어 임시이사 파견 학교들의 문제를 다루게 됩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사분위의 인적구성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사학법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적인 인사들로 채워져왔고, 올해 새로 구성된 2기 사분위는 2010. 4. 28. 위 대법원판결의 취지를 왜곡하여 사학비리 등으로 퇴출된 구 재단의 종전이사들에게 과반수 이상의 정이사 추천권을 주어야 된다는 결정을 합니다. (정이사추천인원 옛재단 5명, 교과부2. 학교구성원 2명)

 
이 결정은 비리사학운영자들에게 학교운영권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잘못된 결정이며, 설령 구재단에게 대학을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비리 도덕성, 학교경영능력 등 사회상규와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추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때는 예외로 한다"는 내부지침에도 반하는 결정입니다. 사분위의 정상화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52개 학교에는 상지대는 물론 경기대, 광운대, 덕성여대, 탐라대, 대구대, 목원대, 서원대, 동덕여대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미 정상화된 8개의 대학 중 조선대와 세종대를 비롯한 5개 대학은 구재단에게 돌아가서 이대로 진행된다면 상지대를 비롯한 20개 대학 역시 비리를 저질렀던 구재단에게로 학교운영권이 다시 넘어갈 상황입니다.

 
지난 7월 6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국회 상임위 답변에서 김문기에게 상지대를 돌려준다는 사분위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사분위 결정은 존중한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는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은 부당하다고 스스로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법상 재심의의 청구는 않겠다는 것은 재량권을 남용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것입니다.

 
상지대 학생·교수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수업을 거부한 학생과 교수들은 원주 상지대 캠퍼스 내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이고 지난 5월부터는 정부청사 앞에서도 50여일째 농성 중입니다. 지난 7월 26일에는 상지대학교 교수, 학생,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30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최종 처분을 앞두고 집단삭발식, 철야단식농성 등 김문기 전 이사장 및 옛 비리 재단의 복귀를 막기 위한 저항운동에 돌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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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오전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별관 후문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집단삭발_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최인성기자

 이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과사회이론학회 소속 변호사와 교수들도 이에 앞서 '상지대 사태 해결을 위한 전국 법학교수 및 변호사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교과부 장관은 사분위에 즉각 재심을 청구하고, 대법원장은 김문기 전 이사장과 유착 의혹이 있는 사분위원을 해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김선수 민변 회장의 말처럼 “사학 비리 척결과 대학 민주화의 모범 사례였던 상지대에 다시 김 전 이사장을 보내겠다는 것은 사학비리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며 “상지대 사태는 한국 사회 문제의 앞날을 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상지대사태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 동참이 절실한 때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글 / 김영준 변호사  



2010/07/27 14:11 2010/07/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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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오프제 폐기 및 노조법 개정 촉구 법률가 공동선언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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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 20.(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공동주최로 ‘노사자율을 침해하는 타임오프제 폐기 및 전임자 관련 노조법 개정 촉구 법률가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기자회견에서 ‘타임오프의 법적 문제점’에 대하여 발언한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노동부는 타임오프 매뉴얼을 즉각 폐기하고, 노동3권 문제를 둘러싸고 불란의 소지가 있는 노조교육 활동시간을 없애려 훈수되는 해괴한 짓을 즉각 중단하라”고 하는 한편, ‘노조법은 불법적으로 날치기된 만큼 즉각 재개정작업에 들어가야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또한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 두산 계열사, S&T 그룹,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가스공사 등 타임오프 관련 구체적 노조탄압 사례를 설명하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법률가들은 ‘법률가 공동선언’ 기자회견문을 통하여 ▲ 국회와 정부는 노사자치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노조법상 전임자 관련 규정을 즉각 재개정할 것, ▲ 정부는 적법절차에 반하여 원천적으로 무효인 타임오프 고시를 즉각 철회할 것, ▲ 정부는 법률상 근거 없이 노동3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한편, 노사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타임오프 매뉴얼을 즉각 폐기할 것, ▲ 정부와 사용자는 타임오프제를 빌미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한편 이 날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던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도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최고의 인권이고 민주주의 가치인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입장을 법률가들이 표명해주는 것을 환영한다”고 하였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7. 23.(금) 12일간의 단식농성을 마치고 복귀하였다.  

이 날 공동선언에는 변호사 124명, 법학교수 74명, 노무사 121명 등 총 319명의 법률가들이 참여하였다.  



- 정리 / 민변 노동위원회 전명훈 간사





'노사자율을 침해하는 타임오프제 폐기 및
전임자 관련 노조법 개정 촉구를 위한 법률가 공동선언' 참가자 명단
                                                                                 (총 31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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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총 124명)
이석태 박용일 김선수 강기탁 강동우 강문대 강상현 강신관 강영구 강지현 강호민 고윤덕 고재환 고지환 권두섭 권성중 권숙권 권영국 권정순 권정호 김 린 김 진 김갑배 김경호 김기덕 김남준 김도형 김선영 김연수 김영기 김외숙 김장식 김진국 김칠준 김태욱 김한주 김행선 김화철 남상철 류신환 류제성 마상미 맹주천 문한성 민경한 박주민 박 훈 배영근 백주선 변영철 서보열 서상범 서선영 설창일 소라미 송기호 송상교 송영섭 신영훈 신인수 심재환 여연심 오세정 오윤식 오정민 우지연 윤인섭 윤지영 윤혜령 이 혁 이경우 이광철 이상희 이새나 이소아 이오영 이원재 이인호 이재정 이재호 이정근 이정택 이종호 이창현 이학준 이헌욱 이현웅 임성택 장경욱 장동환 장석대 장은혜 장홍록 전영식 전해철 정기호 정병욱 정연순 정재성 정정훈 정주석 정채웅 정판희 정현우 정혜선 조수진 조영보 조영선 조지훈 천낙붕 최봉태 최성주 최성호 최용석 최원식 최은순 최현오 탁경국 하주희 한경수 한택근 황민호 황필규 황희석

법학교수 (총 74명)
강경선(방송대) 강성태(한양대) 고영남(인제대) 김 욱(서남대) 김광수(서강대) 김도균(서울대) 김도현(동국대) 김명연(상지대) 김선광(원광대) 김엘림(방송대) 김은진(원광대) 김인재(인하대) 김제완(고려대) 김종서(배제대) 김홍영(성균관대) 김희성(강원대) 도재형(이화여대) 문병효(강원대) 문준영(부산대) 박병도(건국대) 박병섭(상지대) 박상식(경상대) 박수근(한양대) 박승룡(방송대) 박지현(인제대) 박태현(강원대) 박희호(한국외대) 백좌흠(경상대) 서경석(인하대) 석인선(이화여대) 선정원(명지대) 송강직(동아대) 송기춘(전북대) 송문호(전북대) 송석윤(서울대) 안 진(전남대) 엄순영(경상대) 오동석(아주대) 오병두(홍익대) 윤영철(한남대) 이경주(인하대) 이계수(건국대) 이동승(상지대) 이상명(순천향대) 이상수(서강대) 이원우(서울대) 이원희(아주대) 이은희(충북대) 이재승(건국대) 이준형(중앙대) 이창호(경상대) 이호중(서강대) 임재홍(영남대) 장덕조(서강대) 전윤구(경기대) 정경수(숙명여대) 정병덕(한림대) 정태욱(인하대) 조 국(서울대) 조경배(순천향대) 조상균(전남대) 조승현(방송대) 조시현(건국대) 조용만(건국대) 조우영(경상대) 조임영(영남대) 전형배(강원대) 차성민(한남대) 최정학(방송대) 최철영(대구대) 최홍엽(조선대) 한상희(건국대) 구미영(박사) 김기선(박사)

노무사 (총 121명)
강경모 강대훈 강두용 강민주 강재민 강정국 고경섭 고관홍 공성수 구동훈 권동희 권오훈 권태용 김기범 김남수 김미영 김 민 김민아 김민호 김성진 김세종 김세희 김수정 김승섭 김영미 김용주 김은복 김재광 김재민 김종진 김지혜 김철우 김철희 김학진 김현호 김혜선 남우근 문은영 박경수 박문순 박민정 박선희 박성우 박윤진 박재홍 박종근 박종남 박주영 박현희 배동산 배현의 서종식 성명애 손경미 신명근 신은정 신지심 양 현 양원표 엄진령 유명환 유상철 유성규 윤대원 윤선호 윤성봉 윤성환 윤여림 윤 훈 이경호 이동우 이민규 이병훈 이보경 이상미 이상철 이석진 이선이 이수정 이수현 이승현 이영록 이오표 이유민 이인찬 이장우 이종란 이종인 이지환 이태진 이현중 이혜수 장영석 장혜진 전선미 정명아 정상욱 정송도 정유진 정윤각 정해명 정혜자 조광복 조명심 조정미 조제희 조형래 주용종 최기일 최승현 최영연 최영주 최은실 최지복 최진수 최진협 하윤성 하태현 한태현 황규수 황철희





2010/07/26 16:05 2010/07/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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