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한국현대사와 조선정판사 사건 강의를 듣고(과거사위원회 북토크 후기) / 임종인 회원

2024-10-29 287

[한국현대사와 조선정판사 사건 강의를 듣고(과거사위원회 북토크 후기)]

– 임종인 회원 –

 

1. 2024년 10(금) 7시, 민변회의실에서 민변 과거사위 주최로 임성욱 외대교수님의 한국현대사와 조선정판사사건 강의가 있었다. 참석자는 권태윤 과거사위 위원장과 선수지, 권정호, 정덕우, 장완익, 이석범, 박삼성, 류광옥, 양성우, 강솔지, 조상필, 이유진, 조인영, 조지훈, 허진선, 나 임종인, 16명이었다. 강의는 7시부터 8시 40분까지 임선생님 강의, 그 후 50분간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2. 강의는 먼저 1945년 해방후 1950년 한국전쟁까지 해방후 5년사를 1시간동안 개관하였다. 도표와 연표, 중요 인물 사진을 보여주어 실감이 났다. 그 다음에 정판사‘위폐’사건(이하 이 사건)의 진실, 영향, 의미를 소개했다. 강의가 끝난 후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11시까지 뒷풀이 토론이 이어졌다.

3. 임박사는 201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에서 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장학자이다. 임박사 논문은 이 사건이 발생한 1946년 5월 이후 70여년 만에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밝힌 획기적인 첫 논문이다. 이 논문은 201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았으며,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공부하는 학자가 학문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어 가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4.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이란 1946년 5월 미군정이 “조선공산당 간부 및 조선정판사 직원들이 공모하여 조선정판사 인쇄시설과 인쇄용 재료를 이용하여 1945년 10월 하순부터 1946년 2월 상순까지 총 6회에 걸쳐 매회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이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위조지폐를 찍어 내어 조선공산당의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사건”이다.(임성욱 책 25p)

재판부는 위조 지폐등 물적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의 고문에 의한 피고인들의 상호 자백만을 근거로 피고인 10명 중, 이관술 등 4명에게는 무기징역, 3명에게는 징역15년, 3명에게는 징역10년을 각각 선고하였다.

5. 임박사는 우리 역사를 근대와 현대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근대는 1864년 조선왕조 고종 즉위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1910년 – 1945년 일제 강점기까지라고 보았다. 그리고 현대는 1945년 해방후 1948년까지를 미소분할점령기, 1948년부터 현재까지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분단시기라고 말했다. 1945년 해방후 남과 북에 각각 미국, 소련의 입김 아래 남쪽에서는 미국 우호적인, 북은 소련 우호적인 정권이 세워져 분단국가가 되었는데 ,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한 나라인 독일, 오스트리아, 조선 중 우리만 전쟁을 하고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것은 미소의 외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6. 임박사는 1945년 해방후 한국전쟁까지 5년을, 1945-1948년을 미소점령기 3년, 1948-1950년 2년을 남북분단기 2년으로 나누었다. 이 시기 남북에서 새로운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수많은 정파와 사람들이 정치적 주장과 행동을 했는데, 한국전쟁을 거쳐 최후의 승자는 남에서는 이승만, 북에서는 김일성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권력 추구의 집요함등에서는 비슷한 면이 많다는 임박사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남쪽에서는 가장 진보적 좌파인 조선공산당부터 정치적으로 제거되고, 순차적으로 여운형을 비롯한 중도좌파, 김규식을 비롯한 중도 우파, 김구등 우파가 제거된 다음, 극우파인 이승만 세력과 친일파 지주 중심인 한국민주당 세력만이 살아남아 현대 한국의 주요 정당이 되었다는 임박사의 해설도 흥미로웠다.

 

 

7. 임박사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해방 이듬해인 1946년은 좌우대립이 격화되고 남북한 이질화가 심화됨으로써 사실상 분단을 결정지은 시기였다고 말했다. 특히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시점인 1946년 5월은 한반도의 정세가 변화되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고, 이 시기에 발생한 중요한 사건이 이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이라고 하였다(임성욱 책 25p)

8.임박사는 이 사건의 배경으로 미군정의 좌익세력, 특히 가장 강력한 조직 세력인 조선공산당 세력의 약화 방침을 들었다. 1945년 9월 한반도의 38도선 이남에 진주한 미군정의 목표는 공산주의 대한 방벽을 구축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친미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좌익을 탄압하고 우익을 지원하는 것은 미군정 점령정책의 기본 방향이었다. 그런데 미군정이 진주할 당시 남조선은 좌익세력은 활발하게 활동하여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었는데, 우익세력은 조직적으로나 대중적 기반으로나 미약했다. 미군정 진주 이후 미군정이 좌익세력에 대한 탄압을 계속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조선공산당이 위조지폐를 찍어 활동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이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조선공산당의 대중에 대한 신뢰를 떨어 뜨리려 했고,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45년 10월 건국지도자 여론조사에서 1위 여운형 32%, 2위 이승만 21%, 3위 김구 18%, 4위 (조선공산당 1인자) 박헌영 16%, 5위 (조선공산당 2인자격이자 이 사건 피고인) 이관술 12%, 6위 김일성 9%이었으나, 이 사건 발표후인 1946. 7월 실시한 초대 대통령 적합 인물 여론조사에서는 1위 이승만 29%, 2위 김구 11%, 3위 김규식 10%, 4위 여운형 10%, 박헌영 1%로 급변하였다. (임성욱 책 58, 509p)

9. 임박사 강의에서는 시간부족으로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으나, 사실 이 책의 백미는 잔인한 경찰의 고문 실태를 비롯한 수사 조작과정, 재판과정, 일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고 해방후 미군정의 후원으로 반공투사로 변신한 경찰관과 미군정의 입장을 대변한 검사, 판사와 억울한 피고인을 대변하여 싸운 변호인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다.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엄청나 30회에 걸친 공판에서 방청객들의 열의와 싸움, 언론 보도도 매우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 일류 탐정소설같은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따뜻한 의지의 민족주의자 이관술에 대해서는 나무위키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관술은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한국전쟁 일어난 직후 1950. 7.3 대전교도소에서 국군이 학살) 이 사건의 변호인들 중 상당수는 이사건 변론 후 1949년 법조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호된 곤욕을 치루게 된다.

 

 

10. 나는 작년 7월부터 몇 명의 전직 국회의원, 민변 소장 변호사와 함께 1949년 제헌 국회에서 국회의원 13명을 남로당 프락치라고 구속하여 실형선고한 세칭 국회프락치 사건을 공부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임성욱 박사의 이 책도 이 공부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이 강의도 듣게 되었다. 내가 강의를 들으면서 질문을 몇 개 했더니, 민변 실무자께서 당신이 이 사건을 좀 아는 듯하니 강의 요약문을 쓰라고 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문제 제기하면 “당신이 한 번 해보라”는 것은 30년 전 민변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11. 이 사건 관련, 참고 문헌

나무위키, 조선정판사위폐사건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1, 495p-508p

김기협, 해방일기 4권, 너머북스, 2012, 61p-137p

김두식, 법률가들, 창비, 2018

안재성, 이관술 1902-1950, 사회평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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