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위] 평화의 동지들(平和同志)과의 어색하고도 즐거운 만남 – 2023년 민변 미군위-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교류회 후기

2023-05-11 9

평화의 동지들(平和同志)과의 어색하고도 즐거운 만남

– 2023년 민변 미군위-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교류회 후기

 

차성욱 변호사

 

오키나와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군 기지가 있고 그로 인해 오키나와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작년만 해도 나 역시 오키나와는 하얀 백사장과 에메럴드 바다가 넘실대는 휴양지라는 이미지 밖에 없었으니 일반 국민과 다른 게 없었다.

교류회 일시가 다가올수록 과연 내가 있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오키나와를 교류회 참석하러 휴가까지 내서 가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하노이에서 오키나와 직항은 없었고 가는 건 후쿠오카 경유, 오는 건 타이페이를 경유해야 했다. 금액도 80만원대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걸 안 하면 후회할까?”라는 기준으로 생각해 봤다. 안 가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이에 바로 표를 끊고 교류회에 참가했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흥분되는 일인 동시에 처음의 어색한 순간을 견뎌야 한다. 교류회 첫 날 저녁,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오키나와 변호사분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역시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러나, 술이 한 잔, 두 잔 도니, 어색함도 잠시, 금세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했다. 특히 옆에 앉았던 아끼(아키후미) 변호사님과는 알고 보니 나이도 비슷하고 미국에서 유학도 해서 영어가 되다 보니 소통이 잘 되어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이번 교류회가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고 느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 가깝고도 먼 옆나라 사람들과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라는 점이다. 갈수록 극우화되는 일본의 정치 지형에서, 미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피해 주민들을 대리하는 오키나와 변호사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이 곳 말고 또 있을까?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 친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소위 말하는 동지(同志)가 생기니 정말로 기쁘지 아니한가? 그간 교류회가 거의 20년에 걸쳐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교류회에서 알게 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의 개인적 친분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소중한 인연의 끈이 생겼으니, 앞으로 더 그 끈을 소중히 여기고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일본어도 배워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두 번째는, 세미나 때 나온 얘기지만, 교류회가 지속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미군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더 의미있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교류회가 가지는 의미가 작지 않다는 점을 느꼈다. 1년에 한 번 서로 만나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단합을 도모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활동이 결국엔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들이 될 수 있도록 큰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교류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키나와가 각종 미군 무기로 뒤덮이고, 한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는 명분하에 일본 자위대가 한국 영토에 상륙할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교류회가 민변과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활동에 있어 더 많은 에너지와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공식 일정 후에 있었던 추가 일정을 통해, 공식 교류회에서 느끼지 못 했던 여러 오키나와 문제들의 민낯을 자세히 볼 수 있어, 그 문제들의 깊이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미군이 오키나와에 들어오는 것을 피해 들어갔다가 결국은 일본군에 의해 집단 자결로 내 몰려 130명이 넘게 사망한 치비치리 가마(동굴)을 봤을 때, 그리고 헤노코 기지 확장 반대를 위해 싸우는 주민들의 8년(3월 27일 방문 당시 6,904일로 적혀 있던)에 걸쳐 아직 끝나지 않은 농성장을 봤을 때, 그 가슴을 때리는 울림과 먹먹함은, 그 곳을 가 보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아직까지 우리가 아는 것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구나 라는 사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끈질기게 싸우는 이들이 전세계에 많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 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오키나와에서 하노이로 돌아오는 길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 아침 8시 비행기로 타이베이를 와서 하노이로 오는 경유편을 타야 하는데, 타이베이 공항에서 경유편을 놓쳐(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내 잘못이 더 크긴 했다), 결국 하루 종일 공항에서 대기하다 다른 편을 타고 하노이에 도착하니 밤 10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오키나와에서의 4박 5일 교류회는 보통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년에 한국에서 있을 15회차 교류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또 하노이에서 휴가를 내서라도 한국에 가서 참여할 것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앞에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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