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회 후기] 1월 회원 월례회 – 이석태 변호사(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신년 특강 후기

2024-02-15 62

[1월 회원 월례회 후기]

이석태 변호사(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신년 특강 후기

-작성: 천윤석 회원

 

민변 회원에게 헌법은 멀고도 가까운 존재다. 법 공부를 할 때에는 헌법이 민법이나 형법 못지않게 중요한 과목이지만, 막상 변호사가 되어 일을 할 때에는 헌법의 쟁점을 다룰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변호사들 중 상당수는 일을 하면서 헌법 책 한번 펼쳐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민변 활동을 할 때에는 다르다. 민변의 역할이 워낙 폭넓은 데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헌법과 마주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헌법 조문을 다시 찾아보거나 20년 전에 보았던 헌법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되고, 헌법이 우리나라 헌정질서의 뿌리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때로는 마지막 기댈 언덕처럼 든든하고, 때로는 좀 더 튼튼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운 구름다리 같은 헌법이다.

헌법재판소에 관해 내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다. 당시 나는 법학도였는데, 헌법 교과서 구석에서나 보았던 관습헌법이 결정문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것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그래도 헌법재판소는 중요한 고비에서 의미 있는 결정을 여럿 남겼고, 우리 사회가 후진 기어를 넣은 채 가속페달을 밟지 않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민변의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재판관으로 임명되는 사례가 생겼고,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간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적잖이 결정문에 담기기도 했다.

이석태 변호사님은 헌법재판관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이다. 교원의 정당 및 정치단체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소수의견(인용),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이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는 소수의견 등을 살펴보면, 이석태 변호사님이 헌법의 틀 안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구체화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런 분이 민변 월례회에 오신다니,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 월례회에 비해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서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든든한 민변의 선배를 만난다는 설렘, 헌법재판 실무에 대한 궁금함을 한가득 가지고 온 것이 느껴졌다. 많은 질문이 쏟아져서 예정된 2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재판연구관들이 얼마나 깊이 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는지 설명하신 부분이다. 변호사가 1장짜리 서면을 내더라도 재판연구관들은 온갖 자료들을 찾아가며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연구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석태 변호사님은 “재판연구관이 보고 ‘우리가 하는 연구에 버금갈 정도다’라고 할 정도로 서면을 써보라”라고 하셨다. 변호사가 사건에 치이다 보면 에너지를 나누어 써야 하고, 아무래도 불만족스러운 서면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가 설득을 하려면 적어도 판단을 하는 사람이 감탄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변 회원으로서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을 할 때에는 더욱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백하게 지는 사건은 헌법재판소로 가져가지 않는 게 좋다”라고 하신 것도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민변은 승산이 높지 않은 싸움을 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거기에서 승소한다면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지는 것이지만, 패소하는 경우에는 알게 모르게 무력감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석태 변호사님은 패배가 확실하다면 헌법재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기준을 말씀하신 것이다. 패배할 경우 오히려 원하지 않은 결정례가 남게 되는 데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앞으로 민변 활동을 할 때에 참고할 만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연 내용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석태 변호사님의 자세였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낼 정도면 자부심이 드러날 만도 한데, 이석태 변호사님은 권위적인 모습이 전혀 없이 겸손한 태도로 말씀하셨다. 꾸밈없는 태도로 후배들을 대하는 것이 진정 본받을 만한 어른의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민변의 역사는 30년을 훌쩍 넘어 40년을 향해 가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선배에서 후배로 활동이 이어져 왔고, 활동의 지평은 더욱 넓어졌다. 선배들의 경험과 연륜은 민변의 큰 자산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아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후배의 역할이다. 앞으로 민변 월례회에서 이석태 변호사님과 같은 분을 모실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