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인공지능과 젠더’ 강연 후기 – 미래는 같은 무게로 오지 않는다 / 안희준 회원

2026-08-31 167

 회원기고  〈민변 2026년 8월 회원월례회〉 ‘인공지능과 젠더’ – 김애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초청강연 후기

미래는 같은 무게로 오지 않는다

안희준 회원 (디지털정보위원회)

 

김애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초청강연 모습. 민변 회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지난 8월 25일 저녁, 민변 대회의실에서 김애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인공지능과 젠더’ 강연을 들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차별이라는 주제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삶에 먼저, 어떻게 도착하는지는 구체적으로 그려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깨닫고 부끄러웠습니다.

 

강연은 2015년 아마존 자동 채용 시스템 사례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그 시스템은 누가 심어 주지 않아도 축적된 데이터로부터 남성 선호를 학습해, 이력서에 ‘여자대학교’ 같은 표현이 있으면 걸러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먼 미래의 불행을 미리 엿본 듯한 이야기였지만, 그사이 인공지능은 매달 11억 명이 쓰는 사회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문제가 얼마나 교정되었는지, 오히려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요즘은 변호사도 인공지능이 가져온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다만 그 변화가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챗봇이 가장 먼저 파고든 일자리는 은행 상담 창구와 같은 여성이 밀집한 곳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사람과 병행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지만, 쉬운 질문은 챗봇이 먼저 걸러내고 사람에게는 화가 날 대로 난 고객만, 그것도 줄어든 인원에게 연결됩니다. 변화된 것은 일자리의 수만이 아니라, 남은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의 조건이었습니다.

 

젠더폭력에서도 변화는 이미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0대는 젠더폭력을 일상화하는 AI 챗봇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과거 촬영 기반이던 디지털 성범죄는 AI를 이용한 합성/편집, 사이버 괴롭힘으로 양상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3분에 한 번씩 상대의 계정을 추적해 보고하도록 인공지능에게 시키는 스토킹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한데, 기업들은 이를 기술로서 선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소극적입니다. 폭력은 기술의 속도에 맞추어 빠르게 진화하는데, 제도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느리고, 그 사이의 빈자리는 결국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무겁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연구위원님은 변호사의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법적 공백이 넓은 지금은 새로운 피해와 차별의 국면마다, 나아가 정책연구와 입법 과정에서도 결국 법률 전문가에게 기대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를 규명하는 일과 그것을 규범의 언어로 옮기는 일은 별개의 작업이라는 지적에서, 지금껏 그 간극을 충분히 메우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그럼에도 이 자리가 결국 법률가의 몫으로 남는다는 책임감이 함께 들었습니다.

 

이어 이 일을 하다 보면 무력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계속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문제의 규모와 속도를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공백은 공백인 채로 굳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미래가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오지 않는다면 그 무게를 먼저 감당하는 이들의 곁에 서는 것이야말로 지금 법률가에게 남겨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신 김애라 연구위원님과 자리를 마련해 주신 민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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