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인권위][성명]
판결 속에 사라진 아동 인권, 교육 아래 사라진 아동 인권을 묻는다.
2025년 5월 13일, 특수교사의 장애아동 학대 사건을 다룬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해당 판결은 1) 이 사건 공소사실이 확인되는 녹음파일과 녹취록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이 금지하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여 취득한 내용으로서 같은 법 제4조에 따라 재판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2) 정당행위 등의 위법성조각사유는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검토되는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의 적용에 고려되지 않으며, 3) 특수교사는 녹음된 내용을 듣고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고, 여타 증거들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에서 획득한 2차적 증거이므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특수교사의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며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판단의 결정적인 이유는 “국민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전기통신의 감청과 우편물의 검열등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가 구현되는 자유로운 민주사회로 진전시키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을 적용한 결과로 거의 유일한 증거인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 녹음은 재판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법령의 규정에 근거해,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적 요구와 교원의 인격권 침해 가능성 등에 대한 법익형량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초·중등 교육은 국가의 공적 업무이며, 교사의 수업도 공무로서 수행된다. 교육적 목적과 학생 보호를 목적으로 수업의 공간과 내용을 보호해야 할 법익은 헌법 제17조가 명시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다르다. 또한, 공공의 책임으로서 아동의 인권 보장을 실현하기 위한 수업은 사적 대화와 차이가 있다. 오히려 통신비밀보호법이 적용되는 대화의 수준에서 수업을 바라보는 것은 수업의 권위와 가치를 낮추어 보는 시각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으로 수업의 불법녹음을 금지하라는 주장은 결코 교원의 인격권을 존중하는 논리일 수 없다.
한편으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만을 이유로 재판에서 아동학대가 판단될 여지조차 없다면, 앞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발생한 장애아동에 대한 학대는 어떻게 발굴하며, 특정하고, 대응할 수 있단 말인가? 목격자가 있더라도 다른 장애아동의 증언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적지 않다. 비단 특수학급만이 아니어도 교실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아동의 연령과 발달적 특성상 객관적 증거 확보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법부가 피해아동의 진술에 높은 증명력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훈련된 기관도 아니다. “공공 또는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또는 입법기관 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아동권리협약의 원칙은 전혀 실천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판결은 앞으로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일수록 오히려 더 보호받지 못하는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 스스로 피해를 밝히고, 진술조서 작성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녹음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이때 직접 녹음도 했다면 객관적인 증거가 하나 더 인정되는 반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취약한 이들을 위해 부모 등이 녹음한 경우에는 증거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사실상 장애아동에 대한 학대는 인지되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없게 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피해아동들의 몫이다.
즉, 이번 판결은 온전히 형식적인 법리적 판단에 그쳤고, 그 결과는 아동학대범죄의 불인정이다. 판결문 어디에도 특수교사의 행위를 평가하는 견해는 없었음에도, 아동학대범죄가 아님을 인정받았다는 취지로 회자되고 있다. 교권의 존중이고, 수업의 불법녹음을 근절하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도 한다. 그 와중에 아동의 인권, 장애아동의 인권은 사라졌다. 아동을 중심으로 환경을 조정하고, 모두의 인권 실현 방안을 모색하려는 국가의 책무도 찾아볼 수 없다. 이 판결에 동조하는 사회적 의견이 교원단체에서 비롯되는 점은 더욱 큰 우려를 낳는다.
교육과 생활지도의 명목으로 가려진 아동에 대한 시혜적 관념과 차별적 시선이 전환되어야 한다. 누구나 존재하는 그대로 존엄성과 인격권을 존중받아야 하고, 교육환경에서도 그 방식과 내용은 달라질 수 없다. 그 당연한 명제에 공감할 때, 비로소 아동을 위한 교육환경의 조성, 교원의 노동환경 개선도 촉진할 수 있다. 교육의 권위는 사생활로 포장된 장벽이 아니라 신뢰와 믿음에서 나온다. 수업의 비공개성이 아니라, 아동과 학교 관계자 모두 안전한지를 되묻는 담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사법부도 그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5년 5월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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