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22. 선고 2019가합557476 판결에 대한 소고_철저히 사죄하고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언제고 되풀이될 수 있다 (월간변론 111호)

2023-10-04 18

법정, 특히 형사 법정에서 재판과정을 지켜볼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판사는 짧게는 3장, 길게는 20~30장 되는 판결문을 낭독하고 이에 근거하여 피고인에게 벌금·징역 등 형벌을 선고한다. 징역형이 선고되어 법정 구속이라도 되는 경우에는 신속하고 절차화된 강제력이 동원된다. 판사가 낭독한 판결문에 대한 불복은 정해진 기간 내에 항소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경이로우면서 섬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국가는 개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벌을 부여함에 있어 총·칼 등의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국가의 강제력을 합리화하는 것은 고작 몇 장짜리 판결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작 몇 장짜리 종이에 적힌 문구를 정당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국가가 공권력을 독점하는 정치결사체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물리력이 없기에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은 종종 재판이라는 절차를 통해 합리화되어 “법질서”로 교묘히 둔갑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군사정권 등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시기에 법원이 앞장서서 그러한 반헌법적 질서에 가담하지는 않았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만약 그러한 사실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물어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22. 선고 2019가합557476 판결은, 1972년의 반헌법적 계엄포고령을 위반하였다는 사실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원고에게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의미있는 판결이다.

해당 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 발령과 관련한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판결을 인용하면서, “이 사건 계엄포고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계엄포고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이 사건 계엄포고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계엄포고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즉 계엄령 선포, 체포와 수사, 재판과 유죄판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전체적인 기본권 침해 과정으로 보고, 이에 대해 공무원이 헌법 등 위반여부를 확인하는 등 객관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위 판결은 위와 같은 일련의 국가작용이 “당시 국가사태의 긴급성에 의하여 요구되는 한도를 초과하여 국민을 자의적으로 체포·억류하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비롯한 국제인권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에도 해당”한다고 판시하여, 국제법적 기준에 비추어 국가폭력을 판단하였다는 데에서도 주목할만 하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해의 해결은 이를 직시하고 통절히 반성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사법부가 ‘법치’의 탈을 빌려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던 과거사 사건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위 판결문 말미에 과거 국가폭력을 대하는 사법부의 반성이 녹아있어 이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날 사실심법원이 국가가 헌정질서 파괴행위를 통하여 한 인간의 삶을 훼손한 것에 대하여 그 무게와는 거리가 먼 위자료 액수를 배상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명목상의 피해 구제를 통하여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거듭 좌절을 안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국가가 수호하여야 할 법의 지배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공적 신뢰를 재건할 기회마저 상실시킨다. 철저히 사죄하고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언제고 되풀이될 수 있다.”

김범준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월간변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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